화폐의 시작
▽ 흥미로운 이야기~ 이 아즈씨(?) 글 참 재미있게 잘 쓴단 말이지 크으
10년도 더 된 이야기이긴한데...
MBC에서 방영된 인기드라마 주몽.
주몽온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퐌타지를 심어주는 고구려에 대한 드라마인지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주인공 송일국을 비롯하여 전광렬, 이재용, 안정훈, 이계인, 한혜진, 송지효, 김승수 등등 화려한 캐스팅이 보여주는 열연 덕택에 드라마는 큰 인기를 끌었다.그러나 한정된 제작비로 광대한 스케일을 담아내기는 무리였을까. 주몽은 허술한 장면 묘사로 인해 많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겨주었는데..
여기서 인상 깊은 장면은 바로
식권 2만장을 수송하기 위한 눈물겨운 작전..
시청자들은 식권 2만장에 대해 많은 조소를 보였지만..
누가 아랴 우리가 비웃던 식권이 실제 역사에서 엄청난 혁신을 불러 일으켰을줄은...
이게 대체 뭔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라고 반문할 분들을 위해,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다.
로마제국의 붕괴 이후 유럽 서쪽에서 크고 작은 나라들이 (속된말로 조온만한 나라들이) 아웅다웅 거릴 때,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 동쪽 끝,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거대한 제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역사에 일획을 긋고 있었다.
물론 현재 중국 지역 역시 오랜 기간 동안 크고 작은 세력들이 나라의 존망을 두고 크게 다투었다. 춘추전국시대, 위진남북조 시대, 오대십국 시대 등등등.
이 모든 혼란을 잠재우고 대륙을 통일한 사람은 조광윤이라는 장수였다.
조광윤은 지방 세력들이 그대로 무력을 가지게 되면, 나중에 군벌이 되어 중앙 정부를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송 왕조를 개창한 뒤 공신들의 무력을 빼앗아 중앙에 집중 시켰다. 공신들은 황제에 반기를 들기 보다는 순순이 무기를 내놓고서 조정의 핵심관료로 편입되었다.
황제는 '사대부를 함부로 죽이지 말라' 라는 엄명을 내렸는데, 이는 관료들의 신변을 보호하여 언로를 확충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일부분은 지배층들을 안심시켜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황제의 고도의 술책이기도 했다.
송은 이전의 시대, 그리고 당대 다른 지역에 자리 잡은 정치 세력과는 사뭇 다른 특징을 지녔다.
이전 세대,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지배층들이 대부분 '핏줄'에 기반하고 있는데 반해 송의 지배층들은 '학식'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물론, 학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집안 수준과 경제력이 필요했기에 핏줄의 중요성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본인들이 지배적 지위에 오른 이유가 단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노오오오력을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지배층들에게 자신감을 불여 넣어줬다. 덕분에 서민에 대한 착취도 한층 완화될 여지가 있었다.
지배층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유학의 가르침도 큰 영향을 끼쳤다.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와는 달리 유학은 신이 존재한다 가정하지 않는 사상 체계이다. 유학은 기본적으로 개인적으로는 수양을, 사회적으로는 질서를, 국가적으로는 애민을 강조한다.
지배자의 시각으로 보면 그네들은 백성들의 삶을 돌보고 궁핍을 몰아내 평안한 생활을 누리게 만들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 학문을 통해 수련한 사대부들이 정권을 잡아 나라의 질서를 바로 하고 백성들의 삶을 안락하게 만드는 세상. 이것이 바로 당시 지배층들이 꿈꾸는 세상이었다.
그래서인지 송나라 사회는 정치적으로는 중앙집권이 확립되어 있으면서도, 서민적인 풍토 속에 민간 영역에서 경제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사회에서 많은 혁신이 일어났고, 생산력과 소득이 크게 상승했다. 앵구스 매디슨이나 이언 모리스 같은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송나라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나라였다. 그리고 송나라 사람들 생활 수준 역시 당대 세상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을 자랑했다.
경제 성장은 필연적으로 화폐 수요를 증가시킨다.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되고 창출되니 이를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며 구매를 위한 수단, 즉 돈에 대한 열망도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이를 제대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화폐의 공급이 수반되며 수요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
만일 공급이 수요를 제대로 맞춰주지 못하면 돈의 가치가 올라버리며 디플레이션에 처할 위험이 있다. 돈이 지나치게 많이 풀리는 것도 나쁘지만, 너무 빠듯하게 풀리는 것 역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따름이다.
송나라에서는 동전과 철전을 더욱 많이 주조하는 방식으로 늘어나는 화폐 수요에 대응했다. 하지만 이는 이내 한계에 부딪힌다. 동전이나 철전을 많이 다니는건 불편하다. 무겁기 때문이다.
혁신이란 언제나 조금 더 편해지고자 용쓰는 사람들이 더 쉬운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에 일어나는 법.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이 돈을 많이 다루는 상인들은 동전과 철전을 따로 들고 다니지 않고 서로 매매대금을 결제할 수 있는 기법을 개발해낸다. 동전이나 철전을 직접 주고 받는 대신, 그네들과 교환할 수 있는 증서를 서로 주고 받으면 될게 아닌가!
상인들에게는 이미 참고할 만한 사례를 알고 있었다. 당 왕조 시절, 군은 병사들에게 봉급을 지불하면서, 처음에는 현물을 주다가 나중에는 편의를 위해 복무지에서 음식과 교환 가능한 식권을 지급했다. 군에서 발행하는 식권이었던 만큼 상인들이 식권 수령을 거부할 힘이 없었고, 덕분에 이네들은 환금성 높은 유가증권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실제로 병사들은 식권을 주고 다른 재화를 받아 올 수도 있었고, 식권을 받은 업자들은 다른 업자들과의 거래에서 식권을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즉 식권이 상거래의 결제 수단으로 대두했다.
당 왕조가 쇠락하면서 식권의 가치를 담보할 군대의 힘도 약화됨에 따라 식권을 통한 거래는 점점 사그라 들었다. 노병은 사라질 뿐이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남았다.
상인들은 이를 이용하여 어음을 만들어 거래에 활용했다. 어음은 동전이나 철전으로 교환 가능했다. 그리고 타인에게 양도도 가능했다. 신용도 높은 상인들이 발행한 어음은 돈과 같은 힘을 지녔다. 아니 휴대가 간편하다는 점에서 돈 보다 더 큰 쓸모를 지녔다.
하지만 철전이나 동전이 부족하게 되면 나중에 어음이 제시되었을 때 이를 교환해 줄 재원이 없게 된다. 또한 이런 요구가 연쇄반응을 일으켜 교환 청구가 일거에 일어나면서 어음거래를 크게 위축시킬 위험 역시 있었다.
송나라 조정은 어음 거래의 유용성, 그리고 위험성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인종이 즉위하고서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이제부터 오직 조정이 발행한 어음만 쓰삼'
즉 기존에 통용되던 어음 유통을 규제하고, 조정에서 발행한 검붉은 잉크가 찍힌 어음만을 유통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래도 나라에서 가장 돈이 많은 세력이 바로 우리 조정 아니겠음?'
조정에서 발행한 어음은 교자라는 이름으로 퍼져나갔다. 교자에는 계라고 하여 교환 기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그 기간 내에 철전이나 동전으로 교환하지 않으면 그 어음은 기한 만료로 인해 종잇조각으로 전락했다. 그 부분이 아니라면 교자는 지금의 지폐와 거의 비슷한 역할을 하며 사회에 유통되었다.
조정이 발행한다는 점에서 교자는 상인들 사이에서도 신용도가 아주 높았다. 하지만 정부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앞서 중세 유럽 군주들은 자신이 발행하는 화폐 가치를 줄여 주조차익을 누리고 싶어한다는 점을 언급한 적이 있다. 대송 황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송의 황제에게는 유럽 군주들에게 없는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니되옵니다. 폐하~~' 라고 말할 신하들이었다.
송의 신료들은 기본적으로 사대부들이다. 그들이 보기에 황제는 지엄한 존재이자 타의 모범이 되는 인물이어야 했다. 모름지기 신하라면 세속적인 이익이나 권세를 탐하는 군왕에게 직언을 올리는게 의무라 생각했다.
황제는 신하들을 '내가 하려는 일을 반대하기 위해 저 자리에 있는 인간들'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네들을 상콤히 무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신하들 말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그들의 견제를 피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이문을 절제하라는 유교적 가르침에 충실한 신하들의 견제는 주조차익을 마음껏 누리고픈 황제의 바램을 수시로 억제했다.
히자만 황제든 신하든 역시 급박하게 돈이 필요해지면 현실과 타협할 수 밖에 없다.
나라에 돈이 많이 필요할 때는 대공사를 벌일 때나, 전쟁에 직면했을 때이다. 특히나 강력한 적에 맞서 수비 포지션에 취한 나라라면 더더욱 그렇다. 거란의 요 왕조, 여진의 금 왕조, 그리고 몽골 제국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강력한 적들이 송을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송은 평화시에도 이들에게 많은 세폐를 지불했는데, 전쟁에 직면하게 그 비용이 더더욱 크게 늘어났다. 인종이 교자를 발행한 지 50년이 지난 신종대에 이르러서 교자 발행량이 두 배로 늘더니, 또 그보다 30년이 지난 휘종 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스무배 가까이 늘었다.
송왕조가 높은 수준의 경제 성장을 누렸다 한들 화폐 발행 증가 속도가 그 보다 더 크니, 화폐 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피할 수 없었다. 결국 금이 화북을 장악하고 송이 남쪽으로 쫓겨난 시점에서 교자는 더 이상 화폐로서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이후 회수 남쪽에 자리 잡은 송 정부는 (이름하야 남송이라 불리는) 회자라는 이름의 새로운 지폐를 유통시켰고, 정국이 안정되고 경제가 다시 살아남에 따라 남송의 회자 역시 새로운 화폐로 대두되어 활용된다. 하지만 이 역시 각종 정치적 위기와 몽골의 침입에 직면하면서 정부 지출이 급증함에 따라 발행량이 폭증하고 그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몽골이 중국을 완전히 장악한 뒤 세운 원 왕조의 황제 쿠빌라이 치세 아래 다시금 지폐가 중국 땅에서 유통되었다. 몽골은 강력한 행정력을 가졌고, 원 역시 몽골 제국의 종가로서 몽골이 세운 글로벌 경제의 주축이었기에 쿠빌라이가 확립한 화폐는 원 제국 전역에 널리 유통되었다.
대륙 서쪽에서 금융의 본산이라 자부할만한, 이탈리아 지역 출신인 마르코 폴로도 원에 와서는 '와 우린 여기에 비하면 강아지 조밥이군' 이라며 감탄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역시 끝내 한계를 맺고 마니, 원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한족 반란이 거세지며 이를 진압하기 위한 지출이 늘어나게 되자, 지폐가 남발되어 결국 그 힘을 잃고 현물과 은에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이후에도 지폐의 이점을 알고 있는 조정에서는 지폐를 만들어 유통시려는 시도를 계속한다. 명대에 이르러서도 영락제가 직접 보초라는 이름으로 지폐를 발행해 유통하고자 했다. 하지만 영락제 대에서는 정복활동과 수도이전, 정화의 대항해 같은 굵직굵직한 사업들이 이어졌고, 이를 위한 정부 지출 급증으로 인해 지폐의 가치가 제대로 유지될 턱이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지폐는 오래지 않아 힘을 잃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리고, 16세기 이후 일본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 온 은이 명에 유입되면서, 명조와 청조 시절 중국 경제는 은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한편 중국 옆에서 그네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고려와 조선 역시 국가적 차원에서 화폐를 만들어 보급하여 애썼다. 하지만 고려와 조선은 중국에 비해서도 화폐 경제가 더 지지부진하여, 지폐는 커녕 동전 조차 제대로 유통되지 못했다.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하지 않으면서도, 신하들의 '아니되옵니다' 합창에 시달릴 정도로 군주의 권력이 자의적이지 않았으며, 전쟁이나 대공사가 적었다는 점은 긍정적이었지만, 상업이 활성화 되지 않아 화폐가 유통할 틈이 별로 없었다.
덕분에 정부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17세기 숙종대 상평통보때 부터 화폐 유통이 본격화 된다.
송,원,명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중국은 민간 상업 부문의 발달을 기반삼아 지폐를 발행하여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데 성공한다. 발행주체가 정부였기에 개별 민간인들보다 보증력은 더 강했고, 유교적 가르침이 군주의 권한을 제약하며 화폐 가치의 신용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외부 환경까지 이겨낼 정도는 아니었다. 전쟁이나 환란이 발생하면 어쩔 수 없이 화폐발행이 증가하며 가치 하락으로 인해 결국 지폐의 유통은 실패로 귀결 되었다. 지폐는 금속주주화에 비해 '교환의 매개체' 라는 면에서 훨씬 유리했고, 실질가치에서 분리된 명목가치를 지닌 징표 라는 점에서 혁신적이었으나, 현실적 제약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계에 직면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금융과 경제가 훨씬 더 성숙되고, 정부 권력 및 그를 통제하는 힘이 더 세련되게 강해진 지금에 있어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암튼간에 우리는 여기서 식권이 지폐의 모태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회사에서 아직 식권을 받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식권 덕에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금융 생활을 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armada1588/22127047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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