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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NG/LOL

[LOL 단편소설] 벨코즈&리산드라 - 심연의 눈

by Captain Jack 2018. 11. 23.

 

[LOL 단편소설]

  

 

벨코즈&리산드라

 

    


  

심연의 눈

 

 


 

▶ 화살 반 통 시그바르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였다. 전설에 나오는 얼음망령이 울부짖는 듯 관문 너머로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산 위의 도살자' 혹은 '겨울봉우리의 붉은 칼'이라고 불리는 시그바르는 선택받은 아이들의 부족장 헬름가 크레그하트를 쓰러뜨렸고 가시 계곡에서는 요새에서 보낸 증원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슬픈까마귀 부족에 홀로 맞서 싸웠다.


그는 '냉기의 화신'이었다.


리산드라의 눈과 함께 무수한 전공을 세운 그였다. 그러나 서리방패 요새의 열린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칼바람 나락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과 섬뜩한 밴시의 비명을 마주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생각하니 그런 그조차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그는 평소와는 달리 시커먼 중갑을 입지 않았다. 이번 여정에 무거운 갑옷은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등에 짊어진 방패와 허리춤에 매단 칼 덕분에 안정감을 느꼈다. 짜릿한 기대감이 몸을 휩쓸었다. 그는 무사히 임무를 마칠 수 있도록 기도를 올렸다.


"심연의 여정을 떠나는 오두막의 형제자매들이여." 수호자들의 서리 아버지인 뱀혓바닥 랄라카가 말했다. "너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 얼음 그림자의 아이들은 혼자가 아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광야에 있든, 저 깊은 나락에 있든 리산드라의 눈이 항상 우리를 굽어살필 것이다."


"얼음에서 태어났으니 얼음으로 돌아가리다." 시그바르와 그의 옆에 무릎을 꿇은 다른 두 명이 동시에 읊조렸다.


그의 왼편에 있는 자는 돌주먹 올라였다. 시그바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반세기 동안 서리방패 부족을 위해 싸운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회색 턱수염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올라는 늑대처럼 군살이 전혀 없는 호리호리한 체격이었다. 그의 피부는 여기저기 패이고 주름진 무두질한 가죽처럼 보였다. 어깨에 흰색 곰 가죽을 걸쳤지만 팔은 맨살이었고, 부족 간의 전쟁에서 얻어낸 빛바랜 문신과 여러 개의 철 고리가 팔을 감싸고 있었다. 그의 등에는 '천둥의 자식'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망치가 매달려 있었다. 머리 부분이 얼음 정수로 된 그의 망치는 그만큼이나 많은 전설을 낳았다.


시그바르의 오른편에는 얼음영혼 할라가 있었다. 그가 올라를 영웅으로서 동경했다면 할라는 그저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두려움을 몰랐고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겨울처럼 무자비하고 잔인한 여자였다. 그녀의 허리에는 두 개의 손도끼 '피송곳니'와 '피발톱'이 매달려 있었지만 평소와는 달리 시커먼 사슬 갑옷을 입지 않았고 뿔 달린 투구도 쓰지 않았다. 시그바르나 올라와 마찬가지로 임무를 위해 갑옷을 벗은 것이다. 그녀는 옆머리를 짧게 밀었고 빛바랜 남은 머리카락을 볏처럼 얼키설키 땋아 머리 뒤로 묶어 내렸다. 그녀의 왼쪽 눈 주위에는 세 갈래의 흉터가 있었고 이 흉터를 남긴 일격으로 왼쪽 눈이 실명되어 하얗게 변했다.


시그바르는 올라로부터 그녀의 흉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과거에 어사인 종족의 사냥꾼 무리와 싸운 적이 있었는데, 그중 셋을 죽였고 나머지는 도망쳤다고 했다. 시그바르는 그의 말을 믿었다. 어릴 적 서리방패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할라는 지금쯤 다른 부족의 족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 앞으로 걸어온 서리 사제는 먼저 올라에게 다가가 읊조렸다. "리산드라의 눈이 굽어살피리라."


시그바르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에 올라가 우렁차게 대답하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서리 사제가 자신의 앞에 서자 첫 전투에 나가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랫배가 당겼다.


"고개를 들어라, 서리방패여." 사제가 조용히 말하자 시그바르가 고개를 들고 늙은 사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제의 얼굴은 아주 앙상했고 볼은 홀쭉했으며 눈가가 거뭇했다. 그의 얼굴에는 자상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들의 종교는 원체 거칠고 가혹했기에 시그바르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사제의 목에는 치료와 제사에 사용되는 신성한 검은 얼음 조각이 걸려 있었고 그의 울퉁불퉁한 지팡이 끝에도 검은 얼음이 박혀 있었다. 서리 사제는 얕은 대야에 담긴 시커먼 크라켄 먹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시그바르의 이마에 눈을 그렸다.


"리산드라의 눈이 굽어살피리라." 사제는 말을 이었다.


"리산드라의 눈은 감기지 않는다." 시그바르가 고개를 숙이고 답례했다. 먹물이 피부에 스며들자 불에 덴 것 같은 통증이 몰려왔지만 시그바르는 냉기의 화신 특유의 인내심을 발휘했다. 고통은 곧 축복이었다.


사제가 할라에게 다가가 의식을 마치자 선택받은 세 명의 냉기의 화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른 체구에 잔 근육이 발달한 올라의 키가 가장 컸고 시그바르는 셋 중 가장 체중이 많이 나갔다. 할라는 시그바르보다 머리 반개는 더 작았지만 온몸에서 힘과 권위의 기운이 뿜어져 나와 더 커 보였다.


세 명의 서리방패 전사는 몸을 굽혀 배낭과 얼음도끼, 밧줄을 집어 어깨에 매고 허리띠에 묶었다.


시그바르는 고개를 돌려 등 뒤에서 자신들을 묵묵히 배웅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봤다. 의식을 마친 뱀혓바닥 랄라카가 등을 돌리자 전사 무리를 따르는 까마귀 떼처럼 다른 서리 사제들도 그를 따라갔고, 그들은 순식간에 요새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출발하지." 얼음영혼 할라가 말했다. "어둠이 우릴 부르는군."


시그바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할라와 올라에게 합류했다. 그들은 모여있는 서리방패 부족민을 뒤로하고 거대한 요새 문을 지나 칼바람 나락으로 가는 다리로 향했다.


바람에 실려오는 고대의 비명이 점점 커졌고 살을 베는 얼음 조각이 몰아쳤지만 그들은 의연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오히려 즐겼다. 얼음은 그들의 편이자, 진리였다.


뒤에서 요새 문이 닫히며 큰 소리가 났지만 곧 바람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시그바르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다시 심연으로 내려갈 때가 돌아온 것이다.



▶ 서리방패 부족은 매년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이 되면 이렇게 전사들을 심연으로 보냈다. 서리방패 부족 전사 세 명이 선택되었는데, 모두 심연으로 가는 길을 지키는 부족의 핵심 세력인 수호자 오두막의 일원이었다.


이 성스러운 임무에 선택되는 것은 이들에게 엄청난 영광이었다. 시그바르도 우렁찬 나팔소리와 함께 자신이 호명되었을 때 큰 자부심을 느꼈다.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그는 역대 최연소로 선택된 서리방패였다. 시그바르는 이 여정을 떠났던 수천 명의 전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오두막 벽을 수도 없이 보았다. 요새에 온 이후의 기억 중 하나는 벽에 새겨진 이름을 따라가며 그들의 위대한 업적을 마음속에 되새기는 것이었다. 벽에 새겨진 이름의 절반 이상에 죽음을 뜻하는 룬이 소박하게 새겨져 있었고, 이는 이들이 칼바람 나락으로 내려가는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다 전사했다는 것을 뜻했다. 제아무리 냉기의 화신 혈통이라도 이 여정은 그만큼 위험했다.


시그바르는 검은 얼음으로 만든 아바로사, 세릴다, 리산드라의 동상 앞에 무릎을 꿇고 언젠가는 자신도 자질을 인정받아 부족의 영웅들과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있길 기도하곤 했다. 결국 그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다. 그는 평생 이 순간을 위해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수호자 오두막의 명예를 지킬 것이리라.


그들은 다리를 따라 걸었다. 다리 위에 세워진 거대한 수호상이 말없이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이 동상을 때리자 쇳소리가 소용돌이쳤다.



▶ 이들이 건너고 있는 다리에는 '증명의 전장' '피의 다리' 등 많은 이름이 붙여졌지만 사람들은 그저 '요새 다리' 또는 '울부짖는 다리'라고 불렀다. 세릴다와 아바로사가 살아 있던 시절에 있던 이름은 잊혀졌다. 서리방패 부족민들은 '통곡의 다리'라고 불렀는데, 이 다리에서 수천 명의 냉기의 화신들이 전사했기 때문이었다.


먼 옛날, 고대 신들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 만큼 오래된 다리였다. 이교도 부족 중 일부는 고대 신들을 숭배했는데, 결국 그들은 자발적으로든 무력에 굴복해서든 참된 신앙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없이 얼음은 그들을 심판했다.


석조 다리는 여기저기 부서진 흔적이 있었다. 서리 사제들은 고대의 아름다움도 세월을 피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은 찰나일 뿐이었다. 세월이 흐르면 거대한 산맥도 바람과 얼음에 깎여 사라졌다. 영원한 것은 오직 믿음뿐이었다.


돌주먹 올라, 얼음영혼 할라와 함께 돌다리를 건너는 화살 반 통 시그바르의 마음은 경외심으로 가득했다. 수천 년 전 세상에서 가장 격렬했던 전투가 이 다리에서 벌어졌다. 냉기의 화신들과 냉기 수호자들이 세상의 운명을 놓고 싸운 곳이었다.


냉기의 화신들이 승리하긴 했지만 많은 희생이 따랐고, 냉기 수호자들은 어둠 속으로 던져졌다.


시그바르는 영광스러웠던 옛 시절을 떠올리며 묵묵히 걸었다. 바람 소리가 심해서였는지, 고대 전설에 잠겨 있어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머지 둘도 입을 열지 않고 걸었다.


리산드라가 그 대전투에서 냉기의 화신들을 지휘했던 통곡의 다리 반대편에 이르자 얼음영혼 할라가 손을 들어 일행을 멈춰 세웠다.


"여기서 내려간다." 그녀가 거센 바람 소리에도 들릴 정도로 외쳤다. 그리고는 오래전에 무너져 내린 다리 한편을 가리켰다.


시그바르와 올라가 경의를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올라는 할라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았다. 할라는 오두막 벽에 이름을 세 번 남겼지만 올라는 아홉 번이나 남겼다. 하지만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 프렐요드 여성들은 세 자매의 피를 더 진하게 물려받았다.


"내가 앞장서지." 할라가 외쳤다. "돌주먹이 가운데를 맡고 화살 반 통이 뒤를 따른다."


그들은 밧줄 두 무더기를 풀어 할라는 올라의 허리띠에, 올라는 시그바르의 허리띠에 연결했고 신발에 부착한 쇠발톱의 끈을 동여맨 뒤 가죽끈으로 얼음도끼를 손목에 단단히 묶었다.


할라가 얼음도끼를 몇 번 휘두르며 근육을 풀었다. 그러더니 다리에서 뛰어내려 골짜기의 돌출된 얼음 위에 착지했다. 그녀가 얼음도끼를 찍어 몸을 고정하자 올라와 시그바르가 차례로 뛰어내렸다.


"우리가 바로 세 자매의 뜻이다." 할라가 말했다.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라, 겨울의 자식들이여."


그녀는 벼랑 끝에 얼음도끼를 찍고 발끝에 달린 쇠발톱을 빙벽에 박으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올라는 사악한 눈빛으로 시그바르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칼바람 나락에 다녀오면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물론 돌아올 수 있다면 말이지." 그가 눈을 찡긋하더니 벼랑 아래로 사라졌다. 시그바르는 홀로 남겨졌다.


'혼자가 아니야.' 시그바르가 스스로에게 말했다. 리산드라의 눈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리산드라는 언제나 그와 함께라는 듯 이마에 그려진 눈에서 여전히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잠시 뜸을 들인 그는 마지막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지만, 얼음영혼 할라는 엄청난 속도로 내려가며 시그바르를 몰아붙였다. 그들은 할라, 올라, 마지막으로 시그바르 순으로 이동했고 한 번에 밧줄 길이만큼 내려갔다. 이렇게 하면 이동 중에 떨어지더라도 다른 두 사람에게 의지할 수 있었고 일행이 내려가는 동안 체력을 비축할 수 있어 따로 쉴 필요 없이 계속해서 내려갈 수 있었다.


통곡의 다리는 심연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이 아니었다. 골짜기의 빙벽에는 수십 개의 다리가 있었지만, 장막처럼 펼쳐진 안개와 어둠 때문에 눈에 보이는 다리는 몇 개뿐이었다. 가장 상부에 있는 다리를 제외하면 모두 오래전에 버려졌거나 사용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으며, 다리와 연결된 무수히 많은 터널과 관문은 눈사태나 서리방패 부족에 의해 폐쇄되었다. 이는 요새로 통하는 길을 줄이려는 의도였다.


그 외 가장 가까운 다리라고 해도 수백 걸음은 떨어져 있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다리와 다리 사이가 더 멀어졌다. 일부는 완전히 파괴되어 빙벽에 뼈대만이 툭 튀어나와 있을 뿐이었다.


사방이 캄캄했지만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한겨울 밤의 칠흑 같은 어둠은 아니었다. 해가 떨어지고 노을이 끝날 무렵 정도의 어스름이었다.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렸음에도 얼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탁하고 희미한 빛 덕분에 횃불이 필요하지 않았다.


골짜기를 따라 부는 강풍이 간신히 매달려 있는 그들을 떼어내려는 듯 지치지 않고 불어댔다.


이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었다. 순간순간이 하나의 긴 시간에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 이들은 그저 빙벽을 타고 내려가다 쉬고를 반복할 뿐이었다. 시그바르는 얼음도끼를 찍고 신발 끝으로 얼음을 찍고 다시 얼음도끼를 빼는 반복적인 동작에 몰두하며 시간을 잊었다. 할라나 올라가 내려갈 때까지 기다릴 때는 정신을 집중해서 조그만 소리로 진리의 기도문을 외우기도 했다.


'냉기를 거역하지 말지어다. 이는 그 안에 진리가 있기 때문이니라. 얼음과 하나가 되면 깨달음을 얻게 될지니.'


일행은 꾸준한 속도로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하늘을 볼 수 없었으니 몇 시간, 아니면 하루가 꼬박 지났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오직 참고 불평하지 말지어다. 얼음은 자비를 구하지 않고 베풀지도 않으니 나 역시 마땅히 그리해야 할 것이니라.'


이들은 평범한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경이로운 속도로 빙벽을 타고 내려갔다. 이들은 신의 자식인 냉기의 화신이었고 인간과는 다른 존재였다. 며칠 동안이나 잠도 자지 않고 제자리에서 적과 싸울 수 있었다. 이들은 온기가 필요한 자들이 버틸 수 없는 일을 묵묵히 인내하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냉기의 화신이라도 팔뚝이 저리고 옷과 털가죽 밑이 땀에 젖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순간 시그바르가 매달려 있던 얼음이 깨져 밑으로 떨어졌고 그는 재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서둘러 반대쪽 손으로 얼음도끼를 찍긴 했지만 얼음 깊숙이 박히지 않아 얼음 덩어리만 떨어져 나갈 뿐이었다.


시그바르는 그대로 추락했다.


'고통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하지 말지어다. 이는 고통이 없으면 삶도 없기 때문이니라.'


시그바르는 공중에서 몸을 돌려 얼음도끼를 빙벽에 힘껏 찍었지만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얼음도끼를 손목에 묶지 않았다면 잃어버렸을 것이다.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움츠러들지 말지어다.'


한참을 떨어져 올라를 지나치자 그의 무심한 눈이 커졌다.


'얼음에서 태어났으니 얼음으로 돌아가리다.'


"버텨!" 올라가 충격에 대비해 얼음도끼를 꽉 쥐고 다리를 바짝 접은 채 외쳤다.


할라는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시그바르를 보며 욕을 내뱉고는 빠르고 침착하게 얼음도끼를 찍어 옆으로 휙 피했고, 다행히 그와 부딪히지 않았다.


밧줄이 다 풀리자 추락하던 시그바르가 멈췄고 빙벽에 강하게 부딪혔다. 그 충격으로 기침을 토해냈다.


시그바르의 무게가 전해지자 올라는 고함을 질렀다. 그는 빙벽에 매달린 채 팔 근육에 힘을 꽉 주어 버텼다.


재빨리 정신을 차린 시그바르는 얼음도끼와 쇠발톱을 빙벽 깊이 박았다. 고개를 들자 얼음영혼 할라가 파랗고 하얀 눈을 날카롭게 뜨고는 그녀의 이마에 그려진 리산드라의 눈처럼 또렷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며 상황을 판단했다.


"그림자 다리에서 잠시 쉬도록 하지." 마침내 말을 내뱉은 그녀는 황혼의 어둠 속으로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시그바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욕을 내뱉으며 자책했다.


올라가 시그바르를 지나쳐 내려가며 이가 드러날 정도로 크게 미소를 지었다.


"화살 반 통, 정말 더럽게 무겁더군. 하마터면 셋 다 저승갈 뻔했어."


"얼음이 깨졌습니다. 풀이 죽은 시그바르가 나직이 말했다. "조심하겠습니다."


"그래야 될 거야. 다음번엔 밧줄을 잘라버릴 거니까."


시그바르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올라를 쳐다보았다. 그것이 그가 지난 세 번의 원정에서 홀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였을까?


그림자 다리에 도착한 일행은 등짐을 내려놓고 밧줄과 얼음도끼를 풀었다. 그곳은 해가 떨어지지 않는 한여름에도 항상 그늘이 졌기 때문에 그림자 다리라고 불렸다.


올라가 과장된 신음을 내며 판석에 주저앉아 다리 가장자리에 있는 난간에 등을 기댔다. 할라는 올라와 시그바르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목에 걸려 있던 리산드라 부적을 벗어 내려놓고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시그바르는 동상처럼 서서 자신도 그녀처럼 기도를 드려야 하나 고민했지만 올라가 자기 옆으로 와 앉으라고 손짓했다.


시그바르는 작은 가죽 부대를 꺼내 마개를 열고 술을 벌컥벌컥 마시는 올라를 바라봤다. 시그바르는 올라의 정확한 나이를 몰랐지만 예순은 넘었을 것이라 확신했다. 다 마신 올라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부대를 시그바르에게 넘겼다. 시그바르는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살짝 숙인 다음 잔뜩 들이켰다.


"신들의 눈물이야." 올라가 말했다. "이쪽 리지백 산맥에선 이만한 술도 없지."


엄청나게 독한 술이 목구멍으로 내려가자 시그바르의 눈에서 눈물이 나와 뺨을 타고 흐르다 얼어버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음미하고 가죽 부대를 올라에게 돌려주었다. 올라는 술을 다시 한 모금 마시고는 가죽 부대를 털가죽 옷에 넣었다.


물을 담았더라면 요새 밖을 나가자마자 얼어버렸을 것이다. 그들은 물 없이 버틸 수 있긴 하지만 목구멍을 적셔주는 독주는 생명수와 같았다.


문신이 잔뜩 그려진 올라의 팔은 여전히 맨살이었다. 시그바르는 고개를 저으며 털옷을 여몄다.


"춥지 않으십니까?" 시그바르가 물었다.


"내려가면 훨씬 더 추워질 거다." 올라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기에 비하면 이건 한여름 산들바람이나 마찬가지야."


시그바르는 그가 한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등짐을 옆에 끌어와 초를 칠한 가죽으로 감싼 절인 고기 조각을 꺼냈다. 그리고는 얼어붙은 부분을 떼어 올라에게 건넨 후 자신의 몫을 떼어냈다. 올라는 고기가 녹을 때까지 입에 물고 있다가 질겅질겅 씹기 시작했다. 고기는 힘줄처럼 질겼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다.


시그바르는 올라 옆에 앉아 낮은 난간에 등을 기대어 바람을 피했다. 바람은 굉음을 내며 얼음과 눈 조각을 날려댔다. 어떤 이들은 이 바람이 오래전 이곳에서 일어난 대전투에서 죽은 수천의 냉기의 화신들이 골짜기에 영원히 갇힌 채 울부짖는 소리라고 했다.


"정말 끔찍한 소리야. 안 그래?" 올라가 말했다. "이 바람을 맞다 보면 정신까지 혼미해지지."


"아래로 내려가도 똑같습니까?"


올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다행이지. 저 아래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단다."


"지금보다 훨씬 낫겠네요..."


"그럴 것 같지? 여기가 그리워질 거다. 저 아래에선 전신 갑옷을 입은 것처럼 적막이 온몸을 짓누른단다. 그래, 차라리 이런 바람이 더 낫지."


기도를 마친 할라가 올라 반대편에 앉아 올라의 가죽 부대를 열고 술을 마신 뒤 장갑을 낀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어떻게 된 게 좋은 물건은 죄다 노인네가 가지고 있네." 그녀가 말하자 올라가 콧방귀를 끼었다.


"그게 내 매력이지." 올라가 대꾸했다.


"택도 없는 소리." 할라가 단호하게 말하자 올라가 또 콧방귀를 끼었다.


시그바르가 몸을 기울여 할라에게 절인 고기를 내밀었다. 빙벽에서 떨어진 일로 얼굴의 화끈거림이 가시지 않았다. 할라는 잠시 시그바르를 쳐다보았다. 순간 시그바르는 받지 않을 줄 알았지만 결국 그녀는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고기를 받았다.


"화살 반 통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얻었지?" 그녀가 고기를 씹으며 물어보았다.


"신병 때 요새로 보급품을 실어오던 수송대를 호위하러 갔다가 광야에서 습격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눈보라가 심해서 놈들이 접근하는 걸 몰랐죠. 송곳까마귀 부족 전사들이었습니다."


"머리를 가져가는 잔인한 놈들이지." 할라가 툴툴거렸다.


시그바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투에서 화살 몇 대를 맞고도 계속 싸웠고 결국 놈들은 전우들의 시체를 남겨둔 채 달아났습니다. 그 후 올라가 그 이름을 지어주었죠."


"넌 이야기꾼이 되기는 글렀다, 이놈아." 올라가 말했다. "겸손하긴. 살도 붙이고 과장도 좀 해야지."


"이야기할 때마다 허풍이 심해지는 어떤 노친네랑은 다르네." 할라가 말했다.


"내가 곰 이야기를 했던가?" 올라가 시그바르를 향해 눈을 찡긋하며 물었다.


"관둬." 할라가 늙은 전사에게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 이야기라면 진절머리가 나."


"그럼 다음에 하지." 올라가 졌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쨌든, 저 녀석, 송곳까마귀 놈들에게 화살 반 통이나 맞았단 말이야. 그때가 열네 살이었던가? 나이에 맞지 않게 몸집이 큰 녀석이었어. 지금보다야 작았지만 말이야. 방패에 네 발, 한쪽 발에 두 발, 한 발은 팔뚝을 관통했고, 가슴에 두 발, 어깨에 한 발, 등에 몇 발을 맞았지. 그런데도 궁지에 몰린 엘누크처럼 괴성을 지르며 싸우더군. 셋을 더 해치우고는 화살을 맞고 칼을 떨궜지. 그런데도 몸에 박힌 화살 하나를 뽑더니 그걸로 둘을 더 해치우더라니까! 정말 재밌는 싸움이었어. 저놈은 냉기의 화신 중에서도 진짜배기야. 세릴다 님도 자랑스러워하셨을 거야."


"두려움을 모르는 어머니시여." 할라가 그 순간 입을 열며 아바로사와 리산드라 부적과 함께 자신의 목에 걸린 세릴다 부적을 손에 쥐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어머니시여." 올라의 칭찬에 부끄러워진 시그바르가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돌주먹은 별게 다 재밌나 보군." 할라가 일어서며 말했다. "이제 슬슬 출발하지."


"떨어져서 죄송합니다." 시그바르가 일어서서 장비를 챙기며 말했다.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맹세합니다."


"네가 떨어지면 그건 세 자매의 뜻일 것이다." 할라가 말했다. "네가 떨어져 우리가 함께 죽는다면 그건 우리의 운명이지, 네 맹세와는 상관없다."


그녀는 시그바르를 지나쳐 내려갈 만한 곳을 물색했다. 올라가 씨익 웃으며 시그바르의 어깨를 손으로 툭 쳤다.


"괜찮다." 올라가 말했다.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만약 그게 우리에게 일어날 최악의 일이라면 세 자매님께 감사해야 할 거다."


일행은 살을 에는 바람을 맞으며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 저 아래에서 무언가 안개를 뚫고 유령처럼 나타났다. 조금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곳이었다.


그것은 바로 남겨진 자들의 다리였다.


멀리서 보면 다리 위에 검은 풀이나 가시덤불 따위가 덮여있는 듯 보였는데 그건 물론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깊은 곳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듯한 극심한 추위와 바람 때문에 식물이 살 수 없었다.


다리를 덮은 물질은 평범한 식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과 '대립'하는 물질이었다. 불안감에 속이 뒤틀린 시그바르는 힘겹게 침을 삼켰다. 시그바르는 난롯가에서 이곳에 내려왔던 이들의 무용담이나 전설을 듣긴 했지만 그래도 끔찍한 기분이었다.


그는 열 걸음 정도 되는 높이에서 뛰어내려 웅크린 자세로 착지했다. 힘을 잔뜩 준 근육에서 통증이 느껴졌고 얼음도끼를 잡고 있던 손을 살짝 접질렸다. 조금 지치긴 했지만 그는 숨을 죽인 채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 할라가 경고했다.


"내가 뭔가 만지면 그것도 세 자매님들의 뜻인가?" 올라가 농담을 던졌지만, 시그바르는 그의 말에 웃을 정신이 없었다.


할라가 고개를 저으며 등을 돌렸다. "숨 좀 돌려. 이게 마지막 다리야. 쉬고 나면 가장 긴 다음 구간을 지나 바닥까지 한 번에 내려간다. 세 자매시여, 저희를 굽어살피소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시그바르는 다리 중앙으로 걸어가며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눈초리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위쪽보다 바람이 거세지 않았지만, 다리 여기저기에 서로 얽혀 있는 돌 같은 구조물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자 쉭쉭 거리는 소리가 났다.


시그바르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뭔지는 몰랐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화산암처럼 생긴 거대한 아치들이 다리를 감싸고 있었는데, 다리를 따라 솟아오른 용암이 공중에서 그대로 굳은 것 같은 모양이었다.


그는 물론 이 다리에 얽힌 역사를 알고 있었다. 먼 옛날, 세 자매에 의해 이곳에 갇힌 존재가 탈출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서리방패 부족은 이곳에서 어둠의 존재들과 싸우다 죽었다. 서리방패 부족의 전사가 죽을 때마다 바닥에 사는 것들은 강해졌고 그들은 시체의 양분을 흡수하여 폭발적으로 자라났다. 그것이 그들의 본능이었다. 그들은 수천 년 동안이나 죽은 것처럼 잠들어 있다가도 피 한 방울에 벌떡 깨어나 난동을 부릴 수 있었다.


시그바르가 바라보고 있는 흉측한 아치와 기괴하게 생긴 퇴적물은 바닥에 사는 것들이 이곳저곳에서 서리방패 전사들을 흡수하고 자란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흡수한 것에서 어떤 '존재들'이 태어났다.


바로 그때, 무언가 불쾌하고 기분 나쁜 압력이 시그바르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 압력은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는 지끈거림을 떨쳐 내고자 손가락 관절을 관자놀이에 대고 문질렀다.


갑자기 잊고 있었던 옛 기억이 동굴에서 튀어나오는 박쥐 무리처럼 시그바르를 집어삼켰다. 시그바르는 자신이 서리방패 부족의 일원이 되기 전 그의 유년 시절을 떠올렸다. 옛 부족의 썰매배가 생각났다. 돛대가 세 개 달린, 날카로운 용골로 얼어붙은 황야를 횡단하는 날렵한 배였다. 어느 날 밤, 부족의 썰매배는 '대정점' 앞에 멈춰 섰다. 그곳에선 검은 투구를 쓴 서리방패 전사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시그바르와 여섯 명의 다른 아이들은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족의 선택을 받았다. 이것은 대단한 영광이었다. 시그바르와 아이들은 백야의 태양 아래에서 자신의 부족이 배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후로는 가족을 볼 수 없었다.


요새로 끌려간 시그바르는 가혹하고 무자비한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같이 끌려온 아이들이 하나둘 죽어 나갔고 마침내 시그바르만 남게 되었다.


그 무렵 시그바르는 옛 부족의 기억을 모두 잊은 상태였다. 그는 새로운 가족과 신앙을 얻었다.


그렇게 그는 서리방패 부족의 일원이 된 것이다.


시그바르는 누군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기저기 손상된 고대 수호신 석상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올라는 그 앞에서 허리를 굽혀 시그바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들면 안 돼." 올라가 말했다. "여기서 잠들면 악몽을 꾸게 된다."


시그바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몇 년 동안이나 자신의 옛 부족을 잊고 살았다. 머릿속에서 꿈의 잔상이 사라지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안한 감정이 일었다.


"출발하지." 할라가 말했다.


일행은 그렇게 바닥으로 가는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다. 그 아래에는 광기와 추위, 어둠, 공포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바닥에 사는 것들은 수천 년 동안이나 그곳에 잠들어 있었다.



▶ 아래로 내려갈수록 얼음이 검게 변했다. 얼음 안에는 시커먼 줄기가 위로 솟아 있었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탁탁거리는 소리가 시그바르의 신경을 긁었다. 주변에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그 소리는 얼음 속의 불길한 검은 줄기에서 나는 것 같았다. 마치 그 지긋지긋한 곳을 빠져나가려는 것처럼…

시그바르는 그 소리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진리의 기도문을 외우며 얼음도끼와 발끝으로 빙벽을 찍는 것에만 집중했다.


이곳 얼음은 위쪽과 달리 고르지 않아서 중간중간 심하게 튀어나온 곳이 많았다. 세 명의 서리방패 전사들은 때때로 얼음도끼에만 매달린 채 끝없는 심연 위에서 발버둥 치며 이동하기도 했다. 길이 막혀 두 번 멈추었는데, 그때마다 할라가 새로운 길을 찾아 우회했다.


숨 막힐 듯 짙은 서리 안개가 그들을 에워싸자 시그바르는 앞서 내려가는 일행을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다. 안개 때문에 얼음 속에서 쉴새 없이 울려 퍼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안개 사이로 단단한 얼음 바닥이 나타났다. 그곳에 먼저 도착한 할라와 올라는 짐과 밧줄, 얼음도끼를 바닥에 내려놓고 시그바르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닥의 정적은 이들의 숨소리마저 집어삼켰다. 이곳에서는 얼음 속에서 나던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여기가 끝입니까?" 시그바르가 바닥에 짐을 내려놓고 입김을 내쉬며 속삭였다.


"우리가 내려올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올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랜 훨씬 깊지."


올라는 시그바르를 벼랑 끄트머리로 데려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고, 시그바르는 그들 아래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을 바라봤다.


"얼마나 깊은 겁니까?" 시그바르가 물었다.


"그건 아무도 몰라. 세상의 중심보다 깊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바닥에 사는 자들의 땅까지 이어질지도."


시그바르는 한쪽 발에 달린 쇠발톱을 바닥에 툭툭 찍으며 말했다. "저쪽으로 스무 걸음은 떨어져 내려왔는데, 하마터면 죽을 때까지 내려갈 뻔했네요."


"얼음영혼의 길눈은 틀리는 법이 없어." 올라가 시그바르의 등에 손을 대 그의 몸을 할라 쪽으로 틀며 말했다.


시그바르는 무릎을 꿇고 장갑을 낀 손으로 바닥을 만졌다. 지독한 냉기가 두꺼운 장갑을 뚫고 들어 오자 통증이 느껴졌다. 얼음은 단순한 냉기가 아닌 '힘'을 방출하고 있었다.


"이게 다... 얼음 정수입니까?" 경외심에 눈이 커진 시그바르가 속삭였다.


"그래, 선택받은 소수만이 볼 수 있지. 리산드라의 눈이 널 굽어살핀 덕이다. 우리 모두를 말이지. 축복을 받은 거야."


얼음 정수는 서리방패 부족 신앙의 일부였다. 그들은 얼음 정수를 세 자매의 성물로 여겼다. 고대 원소의 힘을 머금은 얼음은 강철보다 단단했고 뜨거운 용광로에서도 녹지 않았다. 올라의 망치인 '천둥의 자식'이나 할라의 쌍도끼인 '피송곳니'와 '피발톱'처럼 얼음 정수가 조금이라도 담긴 무기를 지닌다는 것은 종교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명예였다. 이런 무기를 만드는 기술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남아 있는 무기들은 전설적인 고대 냉기의 화신들이 남긴 성스러운 유물이었다. 시그바르는 언젠간 자신도 자격을 인정받아 고대 유물을 손에 쥐길 바랐지만, 당장은 그에게 황야 너머 땅에서 벼린 롱소드가 있었다. 그의 롱소드는 모든 면에서 훌륭한 무기였고 단 한번도 시그바르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거의 다 왔다. 세 자매시여, 찬미 받으소서." 할라가 말했다. "계속 가지."


그녀가 앞장섰고, 그들은 골짜기를 따라 내달렸다.


시그바르는 평생을 얼어붙은 황야에서 살았지만 그런 추위는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옷과 털가죽을 여러 겹 걸치고 있었지만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들었고 숨을 쉴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노출된 얼굴은 순식간에 얇은 얼음으로 뒤덮였고 그가 눈을 깜박일 때마다 부서져 떨어졌다. 수염도 꽁꽁 얼어 살짝만 건드려도 부러질 정도였다. 신발이 빙판에 달라붙어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힘들었다.


이곳은 냉기의 화신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시그바르조차도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한 시간? 두 시간? 그 이상은 힘 들 것 같았다.


할라는 계속해서 일행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멈추면 얼어 죽을 터였다.


그들은 마침내 골짜기가 좁아지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은 한 번엔 한 명씩만 통과할 수 있었다.


할라가 골짜기 틈으로 들어가자 올라가 먼저 가라며 시그바르에게 고갯짓했다.


"절대 쳐다보지 말거라." 올라가 경고했다. "쳐다볼 생각도 하지마."


"뭘 보지 말란 겁니까?" 시그바르가 물었다.


하지만 올라는 고개를 저을 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시그바르는 좁은 골짜기 틈새로 들어가며 그 말의 뜻을 곰곰이 생각했다.


할라보다 훨씬 몸집이 큰 시그바르에게 골짜기 틈새는 비좁았다. 사방에 있는 얼음 정수가 몸에 닿을 때마다 따끔따끔했다. 너무 추워서 망치로 한 대만 맞아도 온몸이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지만 시그바르는 조금씩, 조금씩 몸을 밀어 넣으며 그곳을 통과했다.


골짜기를 빠져나오자 그릇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큰 동굴이 나왔다. 이곳의 얼음 바닥은 더 투명했다. 동굴 중앙은 마치 검은 거울처럼 아주 매끄러웠고, 중앙의 넓은 공간은 얼음 정수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대강 원 모양으로 솟아난 기둥은 마치 고대 신을 숭상하는 제단 같아 보였다. 기둥은 모두 아홉 개였는데, 시그바르는 곧 그 숫자의 의미를 깨달았다.


"아홉 기둥의 방이군요." 그가 경외심을 담아 말했다.


시그바르는 물론 아홉 기둥에 대해 알고 있었다. 바닥에 사는 것들을 봉인하는, 지금은 잊혀진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혹자는 아홉 기둥을 설인이 만들었다고 했지만 시그바르는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을 나이가 아니었다.


어쨌든 그는 목적지에 다다랐음을 깨달았다.


"원 밖을 따라 돈다." 올라가 좁은 골짜기에서 나와 합류하자 할라가 말했다. "얼음 중앙에는 얼씬도 하지 마. 그 밑을 쳐다보지도 말고."


시그바르는 자신을 생각해서 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둥을 하나씩 살펴봐. 난 여기에서 이쪽으로 돌게." 할라가 앞에 있는 기둥에서 오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돌주먹은 저기에서 저쪽으로 돌아. 애 잘 챙기고."


평소라면 누군가 자신을 애 취급하고 보살핀다는 사실에 기분이 매우 불쾌했을 것이다. 과거에 그는 칠흑같이 어두운 겨울밤,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트롤 광전사들과 맞서 싸우며 전율을 느낀 야만전사였지만, 지금은 올라가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이곳에는 마치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기 전에 느껴지는 진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세 명은 가장 가까운 기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시그바르는 의식적으로 시선이 내려가지 않도록 애썼다. 한때 동굴에는 천장이 있었지만, 오래전에 무너져버렸다. 시그바르는 위쪽에서 뭔가 엄청나게 거대한 존재가 떨어져 천장이 무너진 것 같다고 느꼈다.


시그바르는 감히 아래를 쳐다볼 수 없었지만 시선이 닿지 않은 빙판 밑으로 검은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그림자는 마치 그의 관심를 끌려는 것 같았다...


"보지마." 올라가 쏘아붙이듯 말했다. 마치 자신도 유혹을 떨쳐내려는 듯했다.


첫 번째 기둥에 다다른 할라가 기둥 주위를 천천히 돌며 뚫어지게 살폈다. 올라와 시그바르는 두 번째 기둥으로 갔다.


"뭘 살펴봐야 하는 거죠?" 시그바르가 행여라도 바닥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신경 쓰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뭔가 달라진 게 없는지 확인해봐." 올라가 말했다.


가까이에서 보자 얼음 정수 기둥 안에 박힌 검은 띠가 보였다. "뭐가 달라졌는지 어떻게 알죠?" 그가 중얼거렸다.


올라는 눈을 찡그린 채 얼음 기둥의 모서리를 유심히 살피느라 대답하지 않았다. 마침내 올라가 신음과 함께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켰다. "오래전에 바닥에 사는 것들을 봉인했을 때 얼음에 룬을 새겨 넣었다. 이게 보이느냐?"


시그바르가 기둥에 바짝 다가가자 표면에 새겨진 일련의 작은 룬 문자들이 보였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그가 물어봤다.


"얼음이 아직 녹지 않았다는 뜻이지. 자, 다음 기둥을 확인하자."


그들은 중앙의 넓은 공간을 피해 동굴의 왼쪽 벽을 타고 돌았다.


그 순간 시그바르는 정확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올라 뒤에 바짝 붙어 다음 기둥으로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중압감이 머릿속에 휘몰아쳤고 시야 밖에서 뭔가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를 짓누르는 무거운 정적이 흐르자 모든 것이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갑자기 나타난 안개에 둘러싸여 모든 감각을 잃은 것처럼.


그리고 그는 얼음 한복판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속에서 거대한 눈이 일말의 깜빡임 없이 그를 응시했다.


시그바르가 기겁하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눈꺼풀이 없는 거대한 눈에 완전히 사로잡혀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거대한 눈과 시그바르 사이를 엄청난 두께의 얼음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전혀 안심되지 않았다. 뚜렷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그 그림자는 똬리를 틀고 있었으며 눈 주위에 많은 촉수가 달린 것 같았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빙해의 심연을 헤엄치는 거대한 리바이어던도 이 괴물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현실에 이렇게 큰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살아 있었다. 그 눈에는 생명이 있었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지성이 있었다.


그것이 뚫어질 듯 쳐다보자 시그바르는 하늘에 던져진 실타래처럼 이성의 끈이 조금씩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무언가가 아랫배를 강하게 옥죄였고 시야 주변에 휘감겨 있는 검은 그림자는 구불구불 꿈틀대며 그를 위협했다.


손 하나가 그의 목덜미를 잡아 뒤로 당겼다.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지만 그를 당기는 손은 인정사정없이 그를 빙판 위에 내동댕이쳤다. 허둥지둥 일어선 시그바르의 마음속에는 뱀처럼 똬리를 튼 검은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시그바르의 눈앞엔 올라가 그의 털가죽 외투를 붙든 채 서 있었다. 할라는 근처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미친 듯이 기도하고 있었다.


시그바르의 눈가에는 여전히 그림자가 꿈틀대고 있었다. 머리는 무거웠고 정신이 혼미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앙으로 고개를 돌렸고, 다시 그 밑을—


올라가 주먹으로 시그바르의 턱을 세게 치자 고개가 홱 돌아갔다. "쳐다보지 말.라.니.까."


시그바르가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이 조금 맑아진 느낌이었다.


"할라, 이 녀석은 안 되겠어." 올라가 주먹을 내지를 기세로 말했다. 그의 눈에 있던 장난기는 싹 사라졌고 지금은 시그바르를 냉정하고 강렬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돌려보내야 돼."


"안 됩니다!" 시그바르가 말했다. "저... 전 괜찮습니다."


"돌려보내야 돼." 올라가 할라를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할라는 급하게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시그바르를 살펴보았다.


"전 괜찮아요.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둘을 안심시키듯 말했다.


"또 저러면 녀석을 죽여." 할라가 말했다. "가서 다른 기둥을 살펴봐."


그녀는 다음 기둥을 향해 빙판 위를 걸어갔다.


"내가 널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해라." 올라가 으르렁대며 말했다. "널 들쳐메고 빙벽을 올라가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이곳에 시체를 남길 수는 없었다. 자칫하면 바닥에 사는 것들이 힘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혼자서도 빙벽을 기어오르는 것도 벅찬데 사람 한 명을 메고 오른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올라는 지난 두 번의 원정에서 시체 '두' 구를 메고 빙벽을 올라와야 했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그가 더 위대해 보였다.


"보지 않겠습니다." 시그바르가 올라의 눈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가시죠."


올라가 으르렁대며 시그바르에게 앞장서라고 손짓했다.


그들은 다음 기둥에서 동시에 룬을 찾아냈다. "여기 있군." 올라가 룬을 가리키며 말했다.


룬의 테두리는 마치 한 시간 전에 새겨진 것처럼 선명했다. 수천 년 전에 새긴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어쨌든 좋은 의미였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얼음이 녹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이 기둥은 네가 살펴봐." 올라가 살짝 기울어진 다음 기둥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날 실망시키지 마라, 애송이."


시그바르는 다음 기둥을 확인하기 위해 홀로 걸어가는 올라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기둥은 시커먼 색이었는데, 기둥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눈가에서 검은 그림자가 다시 꿈틀대는 것 같았다. 마치 기둥 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듯했다.


그는 고개를 흔들고는 기둥 주위를 돌며 위아래로 룬을 찾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각이 진 기둥 표면은 아주 매끄러웠다. 시그바르는 눈살을 찡그린 채 천천히 한 바퀴를 더 돌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올라와 할라를 흘끗 보니 둘의 거리가 좁혀졌다. 기둥 두 개만 더 살피면 끝날 듯 보였다.


"이러면 안 돼." 시그바르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집중하자."


시그바르는 한 번 더 기둥 주위를 돌며 살폈지만 룬을 찾을 수 없었다.


할라와 올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마지막 남은 두 개의 기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그바르가 기둥을 다시 살펴봤을 때 물방울 하나가 기둥 표면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지만... 이 추위에 물방울이 흐를 수는 없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기둥 쪽으로 몸을 숙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얼음 기둥 표면이 축축했다. 원래 각진 부분이 아주 날카로워야 했지만 이 기둥은 다른 기둥과는 달리 둥글둥글했다. 그는 이를 그제야 알아챘다는 사실에 놀랐다. 검은 얼음에서 뭔가 살짝 움직였다고 느꼈을 때도 경계심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묘한 정적이 그를 감쌌다.


어렴풋이 누군가 뒤쪽에서 소리를 지른 것 같았지만 거의 들리지 않았다. 마치 아주 먼 곳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시그바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 있는 얼음 속의 검은 형체였다. 그것은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에게 속삭였다.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그 순간 눈가에 있던 그림자가 그의 눈 전체로 퍼졌고, 그는 손을 내밀었다.


무언가가 그의 손을 잡아챘다. 할라의 손이었다. 할라는 그를 거의 열 걸음이나 뒤로 내팽개쳤다.


얼음 기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림자를 본 시그바르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림자는 무언가로 얼음 표면을 마구 찔러댔다. 시그바르는 그림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려고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라는 눈을 감은 채 한 손을 그림자가 공격해 약해진 표면에 대고, 다른 한 손으로 리산드라의 부적을 움켜쥐고 있었다. 할라가 교리문답을 외치자 뻗은 손이 차갑게 빛나면서 기둥 표면에 새로운 얼음 결정이 맺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역부족이었을 터였다. 할라가 만들어 낸 것은 얼음 정수가 아니었다. 얼음 정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얼음 속의 그림자가 한층 더 격렬하게 얼음을 찔러대자 기둥 표면에 거미줄 같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할라는 눈을 감고 있어 그것을 보지 못했다. 시그바르가 비틀대며 칼을 뽑아 들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 순간 양손으로 '천둥의 자식'을 든 올라가 할라 옆에 나타났다. 그림자가 얼음 기둥을 뚫고 나와 엄청난 속도로 할라를 공격하려는 찰나에 올라가 어깨로 할라를 밀어냈다.


올라가 전투망치로 그림자의 촉수를 내려치자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촉수는 하나가 아니었다. 얼음이 깨진 부분에서 촉수 세 개가 더 튀어 나왔다.


"올라!" 시그바르가 소리를 질렀다. 그가 달려들었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올라가 뒤로 물러서며 '천둥의 자식'을 휘둘러 촉수 하나를 쳐냈지만 나머지 두 촉수는 막지 못했고, 촉수 하나가 올라의 왼쪽 어깨를, 다른 촉수가 그의 목 옆을 공격했다.


돌주먹 올라의 몸에 기괴한 촉수가 접촉하자 근육에 잔물결이 일었고, 창백한 피부 아래 검게 물든 혈관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올라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시그바르가 그에게 다가가려 하자 할라가 제지했다.


"안 돼!" 그녀가 소리쳤다. "너도 당하고 말 거야!"


올라는 죽을힘을 다해 '천둥의 자식'을 그들 쪽으로 밀었다. 망치가 뱅글뱅글 돌며 얼음 위를 미끄러져 갔다. "가!" 그가 헐떡이며 외쳤다. "가서... 요새에… 보고해!"


"망치를 잡아!" 할라가 시그바르에게 소리쳤다.


"그를 두고 떠날 수는—"


"너무 늦었어. 이미 죽은 목숨이다…"


시그바르는 올라가 그림자에 흡수되는 끔찍한 광경을 공포에 사로잡혀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올라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피부는 멍이 든 것처럼 검은색과 보라색으로 변했다. 수십 개의 촉수가 올라의 몸과 얼음 속에 있는 그림자를 연결했다.


"망치를 잡아, 시그바르!" 할라가 다시 외쳤다.


롱소드를 칼집에 넣은 시그바르는 '천둥의 자식'을 들고 고통에 대비했다. 격렬한 한기가 순식간에 팔을 타고 심장에 전해졌다. 심장이 멎을뻔했지만 시그바르는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는 냉기와 하나가 된 것이다.


절지동물처럼 생긴 형체가 꿀렁대며 기어와 올라를 휘감더니 식어가는 화산암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렸다. 마치 심장이 뛰듯, 역겨운 보라색 빛이 그의 몸 안에서 고동치며 밖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그바르는 올라의 몸속에서 뭔가가 '자라나는' 것을 보고 구역질이 나왔다.


할라가 고뇌에 찬 비명을 지르며 '피발톱'을 던졌다. 도끼는 뱅글뱅글 돌며 날아가다 올라의 이마 정 가운데 명중했고, 올라는 그 즉시 숨을 거뒀다. 올라에겐 자비로운 최후였지만, 서리방패 부족의 영웅에게 어울리지 않는 비참한 최후였다. 그 모습을 바라본 시그바르는 비통함을 느꼈다.


'피발톱'에서 서리꽃이 피어나 곧 그의 머리와 가슴, 팔을 향해 퍼져 나갔다. 얼음 정수의 힘이 그림자의 잠식을 막았는지 촉수가 느릿하게 움직였고 몸 안에서 고동치던 보라색 빛도 옅어졌다.


"멈춘 겁니까?" 시그바르가 씩씩대며 물었다.


"아마도, 일단은."


"도끼는요?"


"그냥 두고 떠난다." 할라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세 자매의 은총으로 바닥에 사는 것들을 막을 수 있겠지만 얼마나 오래 버틸지는 모른다. 지금 당장 가야 돼."


시그바르는 따지지 않았다. 그가 빙판 가장자리를 따라가려고 하자 할라가 그를 세웠다.


"안 되겠다." 그녀가 외쳤다. "중앙으로 질러가!"


시그바르는 잠시 주춤했지만 할라가 달려나가자 마지못해 얼음 중앙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는 억지로 시선을 올린 채 그녀를 따라갔다. 처음에는 엉거주춤 움직이다 곧 달리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얼음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거대하고 끔찍한 그것이 잠에서 깰 것 같았다.


그는 자신에게 작용하는 사악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힘은 그의 의식을 옥죄었다. 거대하고 눈꺼풀이 없는 눈이 얼음 밑에서 시그바르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천둥의 자식'을 꽉 움켜쥔 시그바르는 이를 악물고 냉기가 주는 고통을 받아들였다.


시그바르는 할라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기도문을 내뱉었다. "고통을 외면하지 말지어다. 고통은 생명이고, 고통의 부재는 죽음을 의미할지니, 고통을 즐기고 받아들라." 그는 발이 걸려 휘청거리면서도 밑을 보지 않았다. 시그바르는 눈밭을 헤쳐 나가는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발을 내디뎠다. 그 눈은 여전히 자신을 주시하고 속삭이며 손짓했다. 그는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기도문을 쉰 소리로 크게 외쳤다.


그곳을 지나자 그를 괴롭히던 기운이 사그라들었고,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먼저 도착한 할라가 서두르라며 재촉했다. 할라는 좁은 골짜기 틈새로 그를 떠밀었다.


시그바르는 들어가기 전에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가 굳어버린 올라의 몸에서 나오는 보라색 빛을 봤을까? 할라가 그를 떠밀며 재촉한 탓에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어서 가!" 할라가 외쳤다.


조심조심 느긋하게 지나갈 여유가 없었다. 시그바르는 얼음에 몸을 쓸리며 다치든 말든 미친 듯이 틈새를 헤쳐나갔다. 바깥으로 나온 할라와 시그바르는 골짜기를 따라 빙벽을 향해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요새에... 꼭... 알려야 해!" 달리는 도중 할라가 헐떡이며 말했다. "아홉 기둥...그중 하나가 깨졌다. 바닥에 사는 것들을 잡아두던... 힘이 약해졌어. 다른 곳들도... 확인하고… 얼음 기둥을... 다시 보수해야 해!"


이들은 숨을 헐떡이며 장비를 벗어 놓은 빙벽 아래에 도착했다.


"그냥 남아서 싸우면 안 됩니까?" 시그바르가 헐떡이며 물었다.


"기둥이 모두 깨져야… 냉기 수호자가 깨어난다." 할라가 말했다. "그때까지 작은 것들은 '피발톱'이 막을 수 있어."


"막지 못하면요?"


"그땐 우리가 나서야지." 할라가 말했다. "하지만 반드시 요새에 알려야 해. 우리 중 한 명이라도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필요 없는 건 다 버려."


시그바르는 마지못해 어깨에 멘 방패를 빙벽에 기대어 놓고 그 위에 칼집을 세워 놓았다. 할라가 그의 등에 '천둥의 자식'을 메도록 도와주었다. 그들은 서로 밧줄을 묶고 얼음도끼를 손목에 묶은 다음 빙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그바르는 아래쪽 얼음에서 위를 바라보는 거대한 눈을 느꼈다.


돌주먹 올라의 시체에서 진득한 소리와 함께 허여멀건 생명체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단검만 한 발톱으로 얼음을 할퀴며 몸의 중심을 잡았다. 그 뒤로는 채찍 같은 꼬리가 달려 있었고 고개를 들자 뼈처럼 단단한 엄니와 날카로운 가시가 튀어 나왔다. 스폰지 같이 부드럽고 유연한 물질이 보라색 빛을 뿜어대는 심장을 뒤덮자 단단하게 굳어져 외골격이 생겨났다.


그 생명체는 어떠한 빛깔도 섞이지 않은 역겨운 흰색이었는데, 외피가 마치 공기에 반응하듯 빠르게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생명체는 눈을 떠 자신이 태어난 세상을 바라보았다. 열두 개나 되는 작은 눈은 세 군데에 나뉘어 있었고, 하나같이 강렬한 보라색으로 빛났다.


생명체는 고개를 높이 쳐들고 갓 태어난 아기처럼 소리 높여 울부짖었다.



▶ 할라와 시그바르가 남겨진 자들의 다리를 향해 반쯤 올라갔을 때 그 생명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주변 안개를 뚫고 울려 퍼졌다. 하지만 안개 때문에 소리의 근원지나 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다.


"더 빨리." 할라가 재촉하자 둘은 위험을 감수하고 속도를 올렸다. 그들은 허겁지겁 얼음도끼와 쇠발톱을 찍으면서 빙벽을 올랐다. 시그바르는 언제 무시무시한 괴물이 안개를 뚫고 올라올지 몰라 수시로 아래를 쳐다보았다.


남겨진 자들의 다리가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인 바로 그때, 괴물이 나타났다.


"할라!" 시그바르가 소리 지르자 할라가 아래를 쳐다보았다.


할라가 인상을 쓰고 외쳤다. "서둘러!"


그들은 미친 듯이 빙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리에 도착하기 전에 괴물에게 따라잡히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시그바르가 다시 한번 아래를 쳐다보자 괴물이 칼날 같은 다리를 미친 듯이 찍어대며 갈지자로 기어 올라왔다. 괴물은 눈을 번쩍거리고 아래턱을 연신 움직이며 쇠와 쇠가 부딪히는 듯한 날카로운 괴성을 질렀다.


다리에 먼저 도착한 할라가 시그바르의 손을 꽉 잡고 다리 위로 힘껏 끌어당겼다. 시그바르가 다리에 올라오자 할라는 이미 밧줄을 푼 채 한 손에는 '피송곳니'를, 다른 한 손에는 얼음도끼를 쥐고 있었다. 얼음도끼는 '피발톱'에 비하면 보잘것없었지만 무기로 쓸 정도는 되었다.


시그바르가 얼음도끼를 내던지고 등에 멘 '천둥의 자식'을 풀려고 하자 할라가 그를 말렸다. "아니, 넌 계속 올라가."


"저도 함께—" 시그바르가 말을 꺼내자 할라가 눈을 부라리며 말을 끊었다.


"올라가." 할라가 '피송곳니'로 시그바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명령이다."


"하지만—"


"닥치고 올라가!" 그녀가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가서 요새에 전해."


"차라리 제가 남겠—"


"가라니까!" 격분한 그녀의 말에 시그바르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것이 세 자매의 뜻이라면 곧 널 따라갈 것이다."


시그바르는 마지못해 얼음도끼를 줍고 다시 빙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할라는 눈을 감은 채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가 서른 걸음 정도 올라갔을 때 괴물이 다리 위로 올라왔다. 괴물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그의 뒤를 쫓아 빙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다, 이 괴물 놈아!" 할라가 괴물을 향해 소리쳤다. "세 자매의 뜻으로, 지옥으로 돌려 보내주마!"


시그바르는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할라에게 주의를 돌린 괴물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괴물이 발톱을 휘두르자 할라가 바닥을 굴러 가까스로 피했다. 그녀는 '피송곳니'로 괴물의 옆구리를 공격했고 괴물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할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들고 있던 얼음도끼를 내려찍었지만 단단한 껍질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괴물이 다시 발톱을 휘두르자 할라는 빙글빙글 돌며 거리를 벌렸다.


할라가 괴물의 다리 하나와 머리 옆 부분에 깊은 상처를 냈지만 괴물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할라가 괴물을 재차 공격하기 위해 '피송곳니'를 들어 올린 순간 괴물이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들어 발톱으로 그녀의 팔뚝을 공격했고, 그녀는 '피송곳니'를 떨어뜨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얼음도끼를 필사적으로 휘둘러 괴물의 머리를 공격했지만 고작 눈 몇 개에 상처를 입혔을 뿐이었다. 팔을 다쳐 도망칠 수는 없었다.


시그바르가 괴성을 지르며 얼음도끼를 뽑고는 빙벽에서 뛰어내렸다. 서른 걸음 높이에서 무릎을 굽히고 팔을 양쪽으로 뻗어 균형을 잡으며 할라 바로 옆에 착지했다. 그 충격으로 얼어있던 판석이 갈라졌고 그는 바닥을 구르며 기침을 토해냈다.


괴물이 시그바르를 향해 몸을 돌렸을 때 그의 손에는 '천둥의 자식'이 들려 있었다. 괴물이 그를 향해 달려들려고 했지만 할라가 발을 꽉 잡고 놔주지 않았다.


"후려쳐!"


괴물의 주둥이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게 벌어지자 톱날 같은 이빨과 엄니가 드러났다. 시그바르가 '천둥의 자식'을 휘두르자 괴물이 비명을 질렀다.


거대한 전투망치에 정통으로 맞은 괴물은 얼굴 반이 곤죽이 되어 멀리 날아갔다. 괴물은 다리 난간에 부딪혔고,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서려고 했다. 괴물의 심장에서 나오는 보라색 빛은 희미해지고 있었다.


시그바르는 악을 쓰며 괴물에게 돌진했다. 쉭쉭 거리던 괴물은 시그바르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천둥의 자식'이 괴물의 가슴을 강타했다. 망치는 괴물의 외골격을 뚫고 심장을 감싸는 갈비뼈까지 파고들었다. 괴물은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다리 밖으로 날아갔고 보라색 빛은 어두워지다 결국 꺼졌다.


다리에서 떨어진 괴물은 곧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건... 무모한 행동이었다." 주저앉은 할라가 말했다. 다친 팔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평소보다 더 창백했고 눈은 퀭했다.


"세 자매님의 뜻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시그바르가 그녀 옆에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그럴지도." 그녀가 힘겹게 웃으며 인정했다.


그가 칼로 할라의 다친 팔을 덮고 있던 털가죽을 잘라냈다. 상처 주위가 검게 변해 김이 나고 있었다. 이미 시커먼 물질이 혈관을 타고 퍼진 뒤였다. 그들은 더 퍼져 나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


"피송곳니를 써." 할라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두려운 기색은 전혀 없었다. "떨지 말고." 그녀가 남은 한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시그바르가 '피송곳니'를 들고 무게를 가늠했다. 도낏자루를 타고 냉기가 전해졌지만 고통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아직까진 팔에만 퍼졌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러니 아마..."


할라가 고개를 들어 시그바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또렷한 눈빛에 두려움은 비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그녀가 말했다.


시그바르는 사흘 동안 빙벽을 올라갔다.


빙벽을 오르는 내내 그는 커다란 눈이 저 아래 아득한 심연에서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지독한 허기가 느껴지는 괴물의 시선이 그의 의지를 조금씩 갉아먹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빙벽을 올라갔다.


'오직 참고 불평하지 말지어다. 얼음은 자비를 구하지 않고 베풀지도 않으니 나 역시 마땅히 그리해야 할 것이니라.'


그 고대 존재의 눈에서 허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시그바르는 그 외 다른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의 처지를 향한 분노도, 증오도, 후회도 없었다. 눈은 결연했고, 무정했으며, 그 속을 알 수 없었고… '인내'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래서 더 끔찍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시그바르는 빙벽을 오르며 다른 냉기 수호자들까지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칼바람 나락 바닥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냉기 수호자가 갇혀있는지 알 수 없었다.


시그바르는 통곡의 다리까지 올라오고서야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얼음영혼 할라는 시그바르의 등에 메인 채 눈을 감고 얕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녀는 어깨 아래로 왼쪽 팔을 잃었지만 소매에 피가 묻어있지 않았다. '피송곳니'의 얼음 정수가 상처 부위를 얼렸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메고 빙벽을 오르는 건 무척이나 고된 일이었지만, 그것이 시그바르의 의무였으므로 그는 묵묵히 해냈다.


시그바르는 잠시 멈춰 숨을 고른 뒤 다시 다리 너머 요새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몇 년 만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요새로 가는 길은 거세게 불어 닥치는 눈보라 때문에 몇십 보 앞밖에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 눈보라 사이로 성벽의 윤곽이 나타나자 그를 기다리는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수호자들의 서리 아버지, 뱀혓바닥 랄라카가 자신의 사제 지팡이에 힘겹게 기댄 채 서 있었다. 문 앞에 멈춘 시그바르는 지팡이 끝에 박힌 검은 얼음과 목에 걸린 얼음 조각에 눈길을 보냈다.


사제는 그 둘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들이 다녀온 곳은 다름 아닌 지옥이었기 때문이리라.


"오직 소수의 형제자매만이 심연에서 돌아왔다." 늙은 사제가 말했다. "이제 네 믿음은 더 깊어졌겠지만, 아직 배울 것이 많다."


시그바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뱀혓바닥 랄라카의 시선이 그의 등에 묶여 의식을 잃은 채 잠들어 있는 할라에게 향했다.


"돌주먹은 어디에 있느냐?" 서리 사제가 묻자 시그바르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말할 힘도 없었다. "얼음에서 태어났으니 얼음으로 돌아가리다." 사제가 그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이마 한가운데를 만지며 말했다.


"녹고 있습니다." 시그바르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홉 기둥 중 하나가... 뭔가가 나타났습니다."


"냉기 수호자들이 움직이는군..."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인 사제가 눈을 크게 뜬 채 숨을 내쉬었다.


시그바르가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괴력의 소유자였지만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얼음과 어둠의 여주인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사제가 말했다. 거대한 문이 열리자 요새의 어둠이 그를 맞이했다. "들어오너라, 냉기의 화신이여. 앞으로 닥칠 재앙에 대비해야 한다."

 


출처 : 리그 오브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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