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L 단편소설]
케인
영겁의 무기
해리 케인 말고! ㅋㅋㅋㅋㅋ
요놈
▽▽▽▽▽▽▽▽▽▽▽▽▽
▶ 케인은 녹스토라가 드리우는 그림자 속, 병사들의 시체에 둘러싸인 채 우뚝 서 있었다. 짙은 색 바위를 쌓아 만든 녹스토라는 녹서스 제국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관문으로, 그 아래를 통과하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제국의 힘에 충성할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이제 녹스토라는 녹서스 병사들의 묘석, 꺾여버린 힘과 오만함을 드러내는 기념비, 상대에게 심어주려 했던 공포를 되려 자신들이 느끼며 죽어간 전사들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케인은 공포를 즐겼다. 두려움을 믿었다. 공포와 두려움은 그의 무기였다. 그림자단의 형제들이 곡도와 표창을 쓰는 법을 익힐 때, 그는 공포와 두려움을 숙련했다.
하지만 긴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녹서스 땅을 밟은 지금, 곧 잊혀지게 될 적 병사들의 시체더미 한가운데 선 지금, 케인은 묘한 불편감을 느꼈다. 마치 폭풍이 들이닥치기 직전의 공기에서 느껴지는 짓눌림 같았다. 빨리 해소해 줘야 할 것만 같은.
케인의 동료 수행사제인 나쿠리가 곡도를 고쳐 잡았다. 일대일의 전투를 대비하는 동작이었다. “이젠 어떻게 되는 거지, 형제?” 목소리에 채 감추지 못한 떨림이 묻어났다.
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기를 들지 않은 양손을 늘어뜨린 채로. 그는 감정을 잘 통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에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꿈 속에서였나? 그 느낌은 깜박이는 불꽃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문득 그 간격을 틈타기라도 한 듯, 증오를 가득 담은 음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전장에서 일었던 성난 함성과 더불어 울려 퍼지며, 그 각각의 함성을 부추기는 목소리.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자 누구냐?”
▶ 제드는 가장 뛰어난 제자를 호출했다.
그림자단이 파견했던 첩자들에게서 달갑지 않은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증오스러운 녹서스가 다르킨의 고대 무기인 낫을 발견했다는 소문이었다. 아이오니아의 그 어떤 마법 못지않은 강력한 힘이 담겨 있는 무기. 날이 휘어지는 부분에 진홍빛 증오가 타오르는 외눈이 박혀 있고, 가장 강한 자에게 자신을 들고 전투에서 휘둘러 보라고 부추기는 무기. 분명한 것은 그 누구도 그럴 만한 능력을 입증해 보이지 못했다. 그 낫을 건드린 사람은 하나같이 눈 깜빡할 사이에 그것이 품은 적의에 휩싸여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래서 녹서스 인들은 낫을 사슬갑옷과 삼베 천으로 둘둘 감고 기마대에 맡겨 불멸의 요새로 운반하는 중이었다.
시이다 케인은 자신이 어떤 임무를 맡을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또한 그 일은 자신의 마지막 시험이 될 터였다.
해안 도시 빈도르 외곽의 녹스토라에 도착한 케인은 이번 여정이 얼마나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지 새삼 생각해 보았다. 적의 땅에서 전투를 벌인다는 것은 대담하다 못해 무모한 일이었다. 하지만 대담하다 못해 무모하기로는 케인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재능에 대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드가 아이오니아의 운명을 맡길 이는 케인 외에는 없었다. 그러니 의혹은 있을 수 없었다. 케인이야말로 위대한 일을 할 운명을 타고난 자였다.
케인은 해가 떨어지기 직전에 행동을 개시했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마대의 모습이 멀리 보일 듯 말 듯했고, 그들이 일으키는 먼지가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로 피어올랐다. 저 거리라면 기마대가 녹스트라에 도착하기 전에 경비대원 셋을 해치우고도 남았다.
첫 번째 경비대원이 순찰을 위해 자리를 떴다. 케인은 석양을 받아 길게 드리워진 녹스트라의 그림자를 따라 소리도 없이 움직였다. 그림자 마법을 소환한 다음, 마치 자신만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인 양 거무스름한 바위 속으로 쑥 들어갔다. 바위를 통과하는 와중에도 케인은 긴 창을 양손으로 틀어쥔 경비대원들의 모습을 윤곽으로 볼 수 있었다.
거리를 좁힌 케인은 그림자를 망토처럼 두르고 바위 속에서 뛰쳐나와, 두 번째 경비대원을 맨손으로 처치했다. 세 번째 경비대원이 미처 반응을 하기도 전에, 케인은 순수한 암흑의 기운으로 형상을 바꾸어 자갈을 깐 길을 단번에 돌진했다. 경비대원 앞에 도착하자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온 케인은 순식간에 그자를 해치워버렸다.
첫 번째 경비대원은 동료들의 생명 잃은 몸뚱이가 쓰러지는 소리에 놀라 몸을 돌렸다.
케인은 암살의 짜릿한 희열을 음미하며 미소를 지었다. “온몸을 마비시켜 버리지…” 그는 속삭이듯 말하고는 다시 한 번 녹스토라의 시커먼 바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두려움이란 건 말이야.”
그러고는 온몸을 벌벌 떠는 경비대원의 그림자를 통해 스르륵 빠져나왔다.
“네게 도망칠 기회를 주겠다, 녹서스 인. 어서 가서 네가 목격한 장면을 알려라.”
병사는 장창을 내던지고 빈도르를 구해보겠다는 일념하에 미친 듯이 뛰었다. 하지만 멀리 가지는 못했다.
케인의 망토만큼이나 어두컴컴한 망토로 온몸을 감싼 나쿠리가 녹스토라 뒤편에서 불쑥 나타나더니, 도망치는 병사의 복부를 공격했다. 나쿠리의 눈이 케인을 빤히 응시했다. “이게 다들 두려워한다는 녹서스의 힘인가? 망상도 정도껏이지.”
“네가 앞뒤 가릴 줄 모른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 형제.” 케인이 내뱉었다. “하지만 이건 뭐지? 날 졸졸 따라와서 내 공로를 나눠먹겠다는 건가?”
하지만 더 이상 날이 선 말을 주고받을 시간이 없었다. 녹서스 기마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날 방해하지 마라, 나쿠리. 넌 나중에 손봐 주지. 네가 살아남는다면 말이야.”
▶ 석양이 만들어내는 긴 그림자가 시체들을 가렸기에, 기마대 병사들은 녹스트라의 거대한 아치 거의 아래까지 와서야 사태를 알아차렸다.
“정지!” 선두에 섰던 병사가 검을 뽑아들며 외쳤다. “진형을 갖춰라! 당장!”
혼란과 동요가 퍼져나가는 가운데 병사들은 허둥지둥 말에서 내렸다. 그때서야 케인은 그들이 운반하는 화물에 눈길을 주었다. 제드가 말한 그대로였다. 사슬갑옷과 삼베 천에 둘둘 감겨 억센 빈도란 준마의 등에 끈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인내심이라는 덕목은 나쿠리가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가장 가까운 병사에게 달려들었다. 반면 케인은 항상 목표물을 신중하게 골랐기에, 선두에 섰던 병사에게 정확한 공격을 날려 그가 뽑아들었던 검과 함께 쓰러뜨려 버렸다.
케인은 다시 빈도란 준마 쪽으로 돌아섰지만, 말등에 실렸던 낫은 사라지고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실패할 순 없었다.
“케인!” 나쿠리가 병사 두 명을 연속으로 처치하며 외쳤다. “뒤쪽!”
다급했던 녹서스 병사 하나가 말등에서 낫을 풀어 거머쥐었던 것이었다. 날에 박힌 붉은 외눈이 번쩍 뜨인 채 잔혹한 분노를 내뿜고 있었다. 병사 역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고, 손에 들린 낫을 마구 휘두르며 동료 병사들을 베어넘겼다. 병사는 낫을 손에서 놓아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제멋대로 날뛰는 낫을 통제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케인은 그림자 마법을 끌어올리고는 다르킨에 물들어 버린 병사의 몸 속으로 곧장 파고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 케인은 오랜 세월을 겪어온 낫의 눈을 통해 고통과 괴로움, 비명과 한탄으로 점철된 영겁의 시간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다르킨 낫은 다시 태어나고 또 태어나는 죽음 그 자체였다. 오로지 악으로만 뭉쳐진 존재였고, 누군가가 막아내야 했다.
케인은 녹서스 병사의 몸뚱이에서 뛰쳐나왔다. 병사의 온몸은 딱딱한 비늘 같은 것으로 덮였다가, 시커먼 조각과 매캐한 먼지구름으로 화하여 흩어졌다. 그 자리에 남은 건 낫뿐이었다. 날에 박힌 눈은 굳게 감겨 있었다. 케인이 손을 뻗어 낫을 집으려는 순간, 나쿠리가 마지막 병사를 해치웠다.
“손 대지 마, 형제!” 나쿠리가 곡도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외쳤다. “뭐 하는 거야? 그게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봤잖아! 그런 건 없애버려야 한다고!”
케인은 동료를 똑바로 응시했다. “아니. 이건 이제 내 거야.”
둘은 마주 보며 싸울 태세를 취했다. 어느 쪽도 물러설 기미는 없었다. 도시 경계선 너머에서 위급상황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길게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나쿠리는 곡도를 고쳐 잡았다. “이젠 어떻게 되는 거지, 형제?”
바로 그때 낫이 케인에게 말을 걸었다. 마치 케인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았으나, 나쿠리의 눈이 커지는 것으로 보아 그에게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자 누구냐?”
케인은 암흑의 손가락을 펼쳐 낫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밤공기 속으로 들어올려 자신의 손 안에 안착시켰다. 낫이 마치 몸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아니, 처음부터 몸의 일부였던 것만 같았고, 자신은 오직 이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았다. 케인은 가뿐한 동작으로 낫을 한 번 휘두른 다음 나쿠리의 목을 향해 날을 겨누었다.
“네가 할 일을 해라.”
출처 : 리그 오브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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