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의 아버지,
존 로(John Law) -2
▽ 너무 너무 재미있다. 역사는 돌고 돌아 반복된다. 'WHY' 를 이해하자!
▽ 가상화폐의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한 역사공부
자, 프랑스 왕조에 드리워진 암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또 이야기 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전편 초두에 언급했던 네덜란드로 도망친 어느 탈주범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하자.
탈주범의 이름은 존 로. 범법 행위를 저지른 사람치고는 참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가진 그는 네덜란드로 넘어 와서는 새로운 기회에 눈을 뜬다.
존 로네 집안은 금 세공업을 토대로 부를 쌓았다. 당시 금 세공업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관한 금 보관증을 가지고 상거래에 활용토록 했는데, 그들이 융통한 보관증의 가액은 실제 보관한 금의 가액보다 더 큰게 보통이었다. 지불준비금 보다 더 큰 금액을 시중에 대출하는 은행의 영업은 이들 금세공업자의 행태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런 집안에서 큰 존 로에게 네덜란드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세계 최고의 해상 강국이자 무역 대국으로 부와 활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리고 선진화된 금융산업이 이를 뒷 받침 하는 곳이었다.
네덜란드는 불과 백만의 인구로 세계 넘버원의 지위에 올랐다. 자신보다 훨씬 더 체급이 큰 적들을 상대하면서 말이다.
그네들의 경쟁자들은 하나같이 그 면모가 쟁쟁했다. 지금은 한물 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무시 못할 옛 종주국인 스페인, 저지대와 라인란트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며 네덜란드의 안보를 위협하는 유럽 최강대국 프랑스, 바다의 왕자 자리를 두고 자웅을 겨루는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등등, 그 누구 하나 만만히 볼 상대는 없었다.
이네들과 군사적으로 충돌을 하면서 버텨내려면 결국 강력한 군대가 필요했다. 네덜란드는 소규모에 무역강국이었으므로, 정예병력과 해군 함대를 유지해야 했기에 자금 수요가 항상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동인도 교역을 통해 나오는 수입이 매무 짭짤했던건 사실이지만, 그를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했고, 투자지출이 필요한 시점과 교역 이익이 들어오는 시점은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즉, 큰 금액이 나가는 시기와 큰 금액이 들어오는 시기가 맞지 않으니 그 시간 동안 자금을 어떻게 관리하고 운용해야 하는지가 국가적 과제였다. 이를 해결해줄 금융산업의 발전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다.
네덜란드에서는 공채 시스템이 잘 운영되고 있었고, 최초의 주식회사도 있었으며, 이들의 거래를 활성화 시켜줄 증권거래소까지 갖추고 있었다. 막대한 자금이 몰려오며 규모의 효과를 누렸고, 다양한 사람들이 거래에 참여하면서 네트워크 효과도 누렸다. 존 로 역시 금융시장에 뛰어 들어 제법 괜찮은 수준의 부와 명성을 거머 쥐었다.
제버릇 남 못준다더니, 그는 네덜란드에서도 런던에서처럼 여자와 도박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도박장에서 사람들이 칩을 주고 받는 장면을 보다 그는 불현듯 떠오르는게 있었다.
"그러고보니 여기 사람들은 뭘 믿고 이런 칩 따위를 주고 받는걸까? 팔아봤자 푼돈도 안되는거 가지고"
"뭘 믿긴. 나중에 카운터로 칩 가지고 가면 다 돈으로 계산해 주잖아"
"흠... 그런가..."
도박장에서는 칩이 서로의 채권-채무 관계를 정산해 준다. 즉, 도박장이라는 사회에서는 칩이 화폐의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칩을 화폐처럼 쓰는 이유는 이 칩을 카운터에 가져다 주면 실생활에 쓸 수 있는 돈으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즉 카운터에 가면 실제 돈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칩을 도박장에서는 돈 처럼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셈이다.
그는 고향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의 고향에서 상인들은 금 세공업자들이 발행한 보관증을 주고 받으며 상거래를 벌였다. 그 보관증이 있으면 자신이 보관한 금도 찾을 수 있고, 다른 상인들에게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물건이나 징표가 다른 재화나 귀금속으로 바꾸는데 별 문제가 없다고 믿는다면, 그 물건 혹은 징표는 그 사회 내에서 돈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중요한건 믿음이다!"
존 로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심어 줄 수 있다면, 그 어떤 재화라도 화폐가 될 수 있다. 즉, 화폐는 반드시 귀금속일 필요는 없다. 금이나 은으로 바꾸는게 보장 된다고 사람들이 믿으면, 그는 바로 화폐가 될 수 있다.'
존 로의 생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틀을 한 번 깨고 나니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기 시작했다.
'아니, 따지고보면 굳이 금이나 은일 필요도 없다. 화폐의 가치를 담보해 줄 무언가가 있다면, 그리고 그 가치를 사람들이 인정한다면, 화폐는 꼭 금이나 은에 기반할 필요도 없다. 예를 들면... 땅도 화폐 가치를 담보해 줄 수만 있다면, 부동산에 기반해서 화폐를 발행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돈은 금속 보유량에 의거하여서만 발행할 필요도 없겠지. 하긴 금 세공업자도 보유한 금보다 더 많은 양의 보관증을 발행하니까. 다양한 자산을 기반으로 화폐 발행을 충분히 한다면, 사회에 돈이 더 많이 돌테니 경제도 더욱 활성화 될거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는 은행들을 아예 정부가 관리하면? 은행의 발권력을 통해 정부가 나름대로 재정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겠지...'
유레카!!
아르키메데스나 뉴턴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받은 느낌이 이런 것일까?
존 로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들을 모아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해 냈다.
"정부가 화폐 발행권을 가진다. 그 화폐는 지폐 형태로 발행한다. 화폐 발행 총량은 귀금속 보유량에 국한하지 않는다. 토지를 담보로 발행할 수도 있고, 그 총량에 별도로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렇게 화폐를 충분히 발행하면 경제는 활성화 된다."
그가 보기에 세상이 더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돈이 부족해서였다. 돈이 귀금속 발행량에 묶여 있으니, 세상에 제대로 돌지 못하고, 돈이 제대로 돌지 않으니, 거래가 막혀 발전이 더디게 된다는 생각이었다. 만일 돈을 충분히 발행할 수 있다면, 돈이 돌아 경제가 활성화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화폐 발행을 정부가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정부는 주조차익과 경제 활성화를 통한 세수증대로 재정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을것이라 보았다. 그렇다면 연일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유럽 각 국 군주들도 한 시름 놓을 수 있을것이라 전망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잘만 이용하면 군주들은 자금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고, 나라 경제는 활성화 될 수 있어 좋으며, 자기는 부와 명성을 누릴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풍운의 꿈을 안은채, 존 로는 고향 스코틀랜드로 돌아갔다.
스코틀랜드로 돌아간 그는
'금융선진국 네덜란드에서 대박을 터뜨린 금융전문가 존 로 님의 강연!'
식의 타이틀을 내세우며 자신의 논리를 설파했다. 지금이라면 사람들에게 월스트리트 경력을 내세우며 금융상품을 소개하는 식이다. 월스트리트 경력이 현대인들을 혹 하게 만들듯, 네덜란드 경력 역시 당시 사람들에게는 꽤나 매력적인 타이틀이었나보다.
그럴듯한 경력 덕에 그는 의회 의원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파 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건 별개의 문제다. 의회 사람들은 신중한 검토 끝에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의원들이나 그들의 자문역들이 보기에 존 로의 제안은 너무 급진적이었다. 그네들에게는 귀금속 보유량 이상으로 화폐를 발행한다는 개념이 좀처럼 와닿지 않았다.
얼마 안 가 1707년, 스코틀랜드 의회는 잉글랜드와 합병을 결의했다. 이렇게 영국이라는 나라가 탄생했다. 잉글랜드에서 살인과 탈옥 경력이 있는 존 로는 합병으로 인해 자신의 신변이 위태로워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따라서 그는 재빨리 몸을 피해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네덜란드로 돌아간 그는 제노바, 베네치아, 프랑스 등지를 오가며 사업도 벌이고, 도박도 즐기며 사교의 장에도 참석했다. 여기서 끝났다면, 존 로는 금융시장에서 이름 좀 날렸던 한량으로만 기억되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그를 필요로 했다.
어느 날 그에게 한 저명 인사가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예전에 프랑스에서 그는 프랑스 고위층들을 상대로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 중 하나가 사람을 보내 그를 찾은 것이다.
저명인사의 이름은 필리프 샤를 드 오를레앙, 세간에는 오를레앙 공이라는 작위명으로 더 유명한 인물이었다.
태양왕이라 불리던 루이 14세는 자식 복이 없었다. 그의 아들 손자 며느리는 죄다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인생 말년데 자신보다 먼저 떠난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쳤다. 그래서 아이들이 모두 살아있었다면... 이라는 생각으로 가족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이 그림엔 슬픈 사연이 담겨 있어"
"뭔데?"
"저 까맣고 긴 머리 남자 있지? 저 사람은 루이 14세이거든? 그 옆에 흰 머리 남자는 루이 14세의 아들 루이, 그리고 반대편의 저 빨간 옷 입은 남자는 루이 14세 아들 루이 아들 루이, 그리고 저 꼬마는 루이 14세 아들 루이 아들 루이 아들 루이야"
"아, 지금 아재 개그하는거라 슬픈거야?"
"아니, 저 하얀 머리랑 빨간 옷 루이, 그러니까 루이 14세의 아들과 손자는 저 그림을 당시 이미 죽었거든. 그러니까 루이 14세의 먼저 떠난 아들과 손자를 같이 그려서, 아마 다 같이 모였으면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았을까? 라고 상상하며 그린 작품이란거지, 즉 단란한 가족을 상상하며 그린 작품이래"
그가 죽고 남은 그의 남자 자손은 딱 둘. 스페인 국왕으로 간 손자 필리프와 프랑스에 남은 증손자 루이. 필리프가 프랑스의 왕관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스페인 국왕이 되었기 때문에, 왕위는 증손자 루이에게 돌아갔다. 문제는 루이의 나이가 불과 다섯 살이었다는 점.
결국 루이 14세는 조카 오를레앙 공 필리프 2세에게 섭정을 맡겼다.
오를레앙 공 필리프2세는 야심가였기에 루이 14세는 항상 그를 경계했다. 하지만 후계자가 나이가 워낙 나이가 어리다보니, 그래도 밑을건 핏줄인지 섭정을 그에게 맡길 수 밖에 없었다.
다만 루이 14세는, 자기 직계는 아닌 섭정에게 권한이 지나치게 집중되지 않도록 서자인 멘 공과, 믿음직한 가신 툴루즈 백작게 권력을 일부 나누어줬다. 그의 야심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오를레앙공 필리프 2세는 영악한 인물이었다. 그는 고등법원의 재판에 관한 권한을 강화시켜주면서 댓가로 멘 공과 툴루즈 백작에게 부여된 권한을 무효화 시켰다. 그리고 귀족들의 권한을 강화시켜주는 댓가로 지지 기반을 확고히 하여 정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프랑스의 국왕은 루이 15세였지만, 실권은 그가 장악하고 있었다.
섭정 자리에 오른 그는 루이 14세가 남겨 놓은 부채 규모에 경악했다. 당 해에 국왕이 갚아야 할 채무는 8억 리브르. 그리고 그 중 약 1억 4천만 리브르가 그야말로 '지체 없이' 갚아야 할 금액이었다. 반면에 수입은 1천만 리브르가 채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그네들의 재정은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선왕 루이 14세가 유럽의 패권을 거머쥐겠다고 여기 저기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특히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이 문제였다. 이 전쟁은 국제전으로 발전하면서 지출 규모가 막대하게 커진데 반해, 프랑스의 안보보다는 국왕의 욕심에 의해 불거진 면이 커서 전쟁으로 얻은것은 별로 없었다.
돈은 천문학적으로 써대지만, 버는 돈이 없으니 빚이 늘어가는건 당연지사, 오를레앙공은 섭정이 된 이후에는 적자 규모를 줄이고 수입을 창출하는데 골몰해야 했다.
루이 14세 치세 동안 프랑스는 전쟁을 치르느라 많은 자금을 소모했다. 특히나 잉글랜드, 네덜란드, 오스트리아가 가장 강력한 상대방이었다. 따라서 이들과의 전쟁을 마무리 짓는다면, 재정압박은 나름 덜어낼 수 있다는게 섭정의 생각이었다. 오스트리아와의 화평은 그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하지만 막대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입을 늘리는 것도 중요했다. 섭정이 선택한 방법은 역시나 '배째라'. 선대 다른 유럽 군주들처럼 완전히 '못 갚아!'라며 떼를 쓰진 않았지만, 채무조정을 통해 강제로 금리를 4%로 내려 부담을 완화했다. 그리고 왕실과 거래하는 납품업자들의 수표를 회수하여 그 일부를 무효화 시키며 억지를 부렸다.
또 한편으로는 강탈이다. 섭정이 법원의 권한을 보장해준 덕에 법원은 섭정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법원의 독립을 확보했더나 되려 유착이 더 강화된 아이러니한 상황. 섭정은 각종 죄목을 붙여 유산자들을 잡아들였고 법원이 이들에게 유죄를 선언하면서, 유산자들은 재산의 일정 부분을 정부에 상납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고민에 빠진 섭정은 섭정에 오르기 전에 만난 적 있는 한 한량을 떠올렸다.
"혹시 그 친구라면?..."
금융시장에서 제법 이름을 날린 (사실은 도박으로 돈을 벌어 유명해졌지만) 존 로라는 사람.
그가 사교장에서 자신에게 제안했던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섭정은 존 로를 부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궁정에서 온 사람이 존 로를 찾았다.
"각하께서 찾으십니다."
한 때 치정 살인극을 벌인 한량이 프랑스 궁정에 진출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armada1588/221306071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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