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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NG/LOL

[LOL 단편소설] 야스오, 리븐 - 부러진 검날의 고백 [3]

by Captain Jack 2018. 11. 16.

 

[LOL 단편소설]

야스오, 리븐


부러진 검날의 고백 [3]


 



- III -

무덤 속처럼 고요하던 공회당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주민들은 머리 위를 덮친 위험한 마법의 힘을 피하려고 우왕좌왕했고, 요란한 소리에 놀란 전투 사제들이 무장을 갖추고 안으로 들어와 주민들을 마구 밀어젖혔다.


바닥에 쓰러졌던 매부리코 판사가 몸을 일으키고 나무 공을 탁자에 두들겼다.


“공회당은 스스로 균형을 회복하십시오.”


공회당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뒤집혔던 긴 의자들이 바로 놓였고, 주민들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망토를 눌러쓴 남자는 콧대의 흉터를 긁다가 공회당 벽 가슴 높이에 생긴 시커멓게 그을은 자국을 살펴보러 걸음을 옮겼다. 전투 사제 하나가 머뭇거리며 마법 검으로 다가갔다.


탁자는 다리가 부러져 주저앉았고, 검과 검집은 그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검날은 여전히 부러진 채였지만 초록빛이 감도는 에너지 불꽃이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주위를 감돌고 있었다. 전투 사제 하나가 허리를 숙이고 양손을 뻗어 칼자루 양쪽을 쥐더니 무게를 가늠해 보려는 듯 들어올렸다. 검날이 부러졌음에도, 검은 형체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 저주받을 물건을 당장 치워버려요!” 군중들 속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사제는 검을 검집에 꽂아넣었고, 다른 사제들이 다가와 검을 가져갔다.


“내가 그 사람을 죽였어요.” 리븐은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 목소리는 그녀의 것인 동시에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과거의 기억이 그녀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리븐은 공회당 안의 얼굴들을 돌아보았다. 기억이 되살아났다. 리븐은 다시 한 번 과거의 어두운 구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리븐.” 판사가 말했다.


리븐은 검에서 눈을 돌려 판사를 바라보았다.


“네가 무엇을 고백하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리븐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 짓을 했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리븐은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손이 묶여 있었기에 조용히 턱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수도 없었다.


판사는 준엄한 표정으로 리븐을 노려보며 그녀가 더 말하기를 기다렸으나, 리븐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집행관에게 손짓을 했다.


“리븐, 너는 새벽까지 쇠고랑을 찬 채로 여기 있어야 한다. 네가 처벌을 받기 전에 너와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자유롭게 와서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리븐은 손목에 채워진 쇠고랑을 내려다보았다.


“다른 치안판사들과 나는 서류를 검토할 것이고, 원로들이 너의 범죄에 적절한 처벌을 논할 것이다.”


주민들은 침묵 속에 공회당을 나갔다. 마지막으로 공회당을 나간 사람은 아사와 샤바 노부부였다. 리븐은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샤바가 남편의 귀에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감정이 북받친 목소리여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리븐은 노부부의 지친 발이 공회당 문턱을 넘는 소리를 들은 후에야 뒤를 돌아보았다. 공회당 안에 산 자는 아무도 없었다. 리븐 곁에 남은 것은 과거의 유령들뿐이었다.


한밤중의 공기는 차갑고 깨끗했다. 깜깜한 하늘 높이 솟은 보름달은 서늘한 빛을 내뿜었다. 달빛은 공회당의 열려 있는 문으로 흘러들어왔지만 공회당 뒤켠에서 리븐을 덮고 있는 그늘까지는 닿지 못했다. 낮에는 그렇게나 붐볐던 공회당인데 지금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전투 사제들이 검을 가져갔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벽을 빙 둘러 들이박힌 나무조각들과 그을린 자국에 겁을 먹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썩은 가지를 들고 열려 있는 문 앞까지 오기도 했지만, 얼마 안 가 리븐은 혼자서 생각에 젖어들게 되었다. 잠깐씩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지만, 다가오는 새벽이 마지막 새벽일 수도 있음을 아는 사람의 얕고도 금방 깨는 잠이었다. 해가 뜨기 몇 시간 전, 발을 질질 끌며 걷는 소리가 들렸다. 리븐은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오-파. 여긴 왜 오셨죠?”


늙은 농부는 리븐 옆에 느릿느릿 웅크려 앉더니 천으로 된 도구꽂이를 땅바닥에 펼쳤다. 리븐도 전에 보았던 이런저런 도구들이 주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아사가 기다란 쟁기날을 쟁기에 달거나 뗄 때 쓰는 금속 공구들이었다.


“얘야, 내가 여기 왜 온 것 같니?” 달빛을 배경으로 검게 떠오른 아사의 얼굴에서 주름살이 도드라져 보였다. 하지만 두 사람을 감싸고 있는 그늘의 우울한 기분은 아사에게서 느껴지지 않았다.


“너는 죽고 싶다는 소망을 좀체 버리지 않는구나.” 노인은 부드럽게 꾸짖었다. “그건 균형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야.”


아사는 리븐의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쇠고랑을 풀기 시작했다. 그를 밀쳐내고 집으로 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리븐은 그러지 않았다.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었다. 이번 삶에서 곁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 이 노인뿐이라면, 되도록 오래 그 시간을 누리고 싶었다. 잠시 그렇게 앉아 있는데, 공회당 바깥에서 자갈 밟는 소리가 들렸다. 리븐은 아사를 보았다. 마치 장난감으로 어린아이를 달래듯, 노인은 풀어낸 쇠고랑을 들어올려 잘랑잘랑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오-파. 빨리 숨으세요. 누가 오고 있어요.” 리븐의 목소리는 날카로웠고 대꾸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아사는 발을 끌면서 구석진 그늘에 몸을 숨겼다. 리븐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잠이 든 척했다.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눈은 뜬 채였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 나무들을 흔들었고, 공회당의 커다란 문 기둥들이 휘어졌다. 다음 순간, 달빛 아래 남자의 윤곽이 문지방에 나타났다.


남자의 망토는 이제 얼굴 뒤로 완전히 젖혀져 어깨에 느슨히 매달려 있었다. 검과 금속 견갑의 외곽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까 가지를 들고 왔던 주민들처럼 남자 역시 문지방을 넘지 않고 우뚝 서 있다가, 잠시 후 주민들과는 달리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돌바닥을 밟는 남자의 발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남자는 리븐과 검 하나 정도의 사이를 두고 멈춰섰다.


남자는 등 뒤로 손을 뻗어 가죽 검집을 하나 꺼내들었다. 표면에 거친 솜씨로 룬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남자는 리븐의 발치에 풀썩 검집을 던졌다.


“어느 게 더 무거운 건가, 리븐?” 남자가 물었다. “너의 검인가, 아니면 너의 과거인가?”


낯선 남자는 리븐이 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게 분명했다. 리븐은 더 이상 자는 척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았다. 회색 그늘에 얼굴이 가려져 있음에도, 콧대의 흉터는 선명히 보였다.


“누구시죠?” 리븐이 물었다.


“또 하나의 부러진 검이지.” 남자가 대답했다. “넌 죄에 따르는 책임을 받아들일 각오는 되어 있구나. 그 점은 감탄했다.”


남자의 얼굴에 잠깐이나마 말한 대로의 표정이 스쳐갔다.


“네 검에는 더 많은 사연이 얽혀 있지.” 남자가 말을 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말로 알고 싶나?”


“내가 그 사람을 죽였어요. 나 때문에 그 사람이 죽은 거예요. 모두가 나 때문에 죽었어요.” 리븐은 이 이상 더 큰 슬픔을 짊어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무기를 들어라.”


리븐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남자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일어나서 자신의 과거를 직시하는 거다.” 반박 같은 것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어조였다.


바람 한 줄기가 세차게 불어와 공회당 안에서 소용돌이치더니 긴 의자를 넘어뜨렸다. 리븐은 바람에 떠밀려 일어섰다. 본능과 몸에 새겨진 기억 때문에 팔이 저절로 움직였다. 리븐은 검집에 담긴 검을 들고 이름 모를 남자를 마주보았다.


“내가 그 사람에게 이걸 부러뜨려 달라고 했어요.”


“네가?” 남자는 비웃는 투로 물었다.


남자의 질문은 신랄했고, 리븐의 기억을 뼛속까지 후벼팠다. 그때의 상황이 희미하게 떠오르기 시작하자, 리븐은 몸서리를 쳤다. 수마 원로 목소리는 고요하고 차분했다. 명상실 안의 공기에는 생각의 무게가 켜켜이 쌓여 있었고 향 냄새가 가득했다. 수마 원로는 리븐이나 리븐이 짊어진 짐을 섣불리 평가하지 않았다.


리븐은 지금 눈앞에 선 낯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비통한 감정이 가슴 속에 차올랐고, 이윽고 온몸에 넘쳐흘러 양손에까지 다다랐다. 리븐은 손가락으로 칼자루를 휘어잡고 검집에서 룬 검을 뽑아들었다.


“당신은 왜 여기 있죠?” 리븐이 물었다.


부러진 검에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했다. 눈이 멀 듯한 밝은 빛이 나와 두 사람의 그림자를 벽에 비추었다.


“네가 죽기를 원한다고 들었다.”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리븐의 과거를 괴롭게 만든 유령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리븐은 그들을 향해 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남자의 검이 슬픔과 격노를 막아냈다. 그 바람에 리븐은 분노가 치솟았고, 현재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며 검투를 벌였다. 검과 검이 부딪힐 때마다 공기가 윙윙거리며 진동했고 따다닥 소리가 났다.


“난 스승님의 살인자를 처치하려고 여기 왔다.” 남자는 악문 잇사이로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래, 너를 처치하려고 온 거다.”


리븐은 웃음을 터뜨렸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럼 어디 해봐요.”


바람의 전사는 검을 내리고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는 공기의 흐름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마법의 힘이 극한까지 끌어올려지자, 남자는 룬 검에 에너지를 집중시켰다. 검에 깃든 녹서스의 주문이 요동을 쳤고, 부러진 검 조각들의 간격이 넓어지더니 맨 앞쪽의 조각이 떨어져나갔다.


에너지가 붕괴되자 조각은 아사가 숨어 있는 그늘진 구석을 향해 굉장한 속도로 날아갔다. 그 조그마한 죽음의 조각이 노인의 목에 꽂히려 했다. 짙디짙은 향냄새의 기억이 리븐의 콧속을 가득 채웠다. 리븐은 어느 새 수마 원로의 명상실로 돌아가 있었다.


“안 돼!” 리븐은 검을 떨어뜨렸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검날의 파편은 주름진 노인의 살갗을 파고들기 직전에 멈추더니 바람의 힘으로 공중에 그대로 떴다. 콧대에 흉터가 있는 남자가 긴장된 한숨을 내쉬자, 검날 조각은 힘없이 돌바닥으로 떨어졌다.


“콘테 영감님, 운이 좋군요. 콧바람이 그렇게 세다니.” 남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리븐은 노인에게 달려가 힘껏 껴안았다. 그러고 어깨 너머로 남자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검을 잡지 않은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미풍에 검은 머리카락이 날렸다.


“사실이구나.” 남자는 두 사람 쪽으로 다가와 검날 조각을 집어들었다. 조금 전까지도 분노가 가득하던 남자의 표정에 이해의 빛이 서렸다. “네가 수마 원로를 죽였어. 하지만 그분을 살해한 것은 아니야.”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리븐이 그렇게나 찾아헤맸던 순간이었다. 이제 그녀는 다시 삶을 살고 있었다. 입에서 연신 말이 쏟아져 나왔다. 리븐은 아사에게 매달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가 그분에게 갔어요. 내가 애원을 했어요…” 감정이 북받치는 바람에 한 단어 한 단어를 또박또박 발음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 지경이었다. “그분에게 나를 도와달라고 애원을 했어요. 이걸 부러뜨려 달라고요. 나를 부려뜨려 달라고요.”


“수마 원로님은 네 검을 부러뜨리려 하셨고.” 흉터가 난 남자가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씩 잠기고 있었다. “하지만 우린 우리의 과거를 부러뜨릴 순 없다, 리븐.”


리븐은 다시 살아갈 수 없는 기억을 마주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은 듯이 지내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제 리븐의 눈에, 이 남자도 자신의 과거에서 온 유령들을 끌고 다니는 것이 보였다. 남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자,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던 바람이 잠잠해졌다.


“수마 원로를 지키는 일은 내 책임이었다. 내가 만약… 그날 밤… 제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분을 보호할 수 있었겠지. 넌 그분을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었어.” 리븐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속사정을 알게 된 투사가 상대 투사에게 보내는 눈빛이었다. 남자는 자신만의 짐, 보이지 않는 악마들을 다시금 자기 어깨에 짊어졌다. 남자의 시선이 리븐의 시선과 마주쳤다. “결국 그분의 죽음이라는 책임은 나한테 있으니까.”


“야스오?” 노인이 남자에게 다가가 찬찬히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마디 진 손가락 하나를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넌 이 문제에서 진실을 인정한 것으로도 훌륭한 명예를 보여준 거다.”


“내 명예는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어요, 오-파.” 리븐이 그랬듯, 야스오도 희망을 받아들이기를, 용서하는 마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죄를 덜어주는 아사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한 번의 실수가 너무나 많은 실수를 낳았어요. 그건 내가 견뎌야 할 형벌입니다.”


야스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갈 밟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매부리코 치안판사가 공회당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신중한 태도로 걸어다니며 두 부러진 검사가 벌인 전투로 부서지거나 망가진 곳이 없는지 살폈다. 그녀가 한 걸음 뗄 때마다 금속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박자를 맞추듯 울렸다. 이윽고 판사는 리븐과 아사 쪽으로 걸어오며 속도를 늦추었다. 그제서야 판사가 한 손에 쇠고랑을 열고 잠그는 열쇠꾸러미를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판사는 콧대에 흉터가 있는 남자를 마주보게 되자 걸음을 멈추었다.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야말로 속죄의 첫 단계지, 야스오.” 판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두 번째는요?” 그렇게 묻는 야스오의 목소리에는 약간이나마 간절함이 엿보였다.


야스오가 판사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공회당조차도 숨을 죽이고 대답을 기다리는 듯했다.


판사의 차분한 목소리가 텅 빈 공회당 안에서 크게 울렸다. “스스로를 용서하는 거다.”


리븐은 야스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어 보였다. 리븐은 오랫동안 죽음을 원했다. 하지만 야스오의 분투를 목격한 지금은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일이야말로 살아가는 것임을.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짓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임을. 야스오도 이제 리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남자도 꿋꿋하게 자신의 과거를 직시하게 될까?


바람의 무게를 짊어진 남자는 등을 돌리고 공회당을 나가 밤의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리븐은 늙은 농부의 주름투성이 마디 진 손을 꼭 붙들었다.


해가 뜰 무렵의 날씨는 서늘했다. 하지만 두터운 구름의 상태를 보면 오늘 하루는 따뜻하고도 습한 날이 될 듯했다. 열쇠꾸러미를 든 매부리코 판사와 전투 사제가 리븐을 데려가기 위해 공회당을 찾았다. 바닥에 얌전히 놓인 쇠고랑을 보자 판사는 가느다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리븐은 자신의 미래와 마주하기 위해 공회당 밖으로 걸어나갔다.


다른 판사 두 명은 공회당 밖 광장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있었다. 아마도 리븐이나 리븐의 룬 검과 함께 공회당 안에 있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인 듯했다. 서늘한 미풍 한 줄기가 매부리코 판사의 땋은 머리칼을 휘날렸다.


“증거를 검토하고 원로들과 상의한 결과, 이 녹서스 여성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판사가 입을 열었다.


리븐은 자신이 태어난 땅의 이름이 나오자 울컥 화가 솟았다. 샤바와 아사가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죽음으로는 이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다.” 판사는 말을 이었다. “그것으로는 마을을 찢고 파괴하는 범죄의 피해에서 회복할 수 없다.”


주민들은 진지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븐은 그들의 얼굴을 돌아보며 그들이 누구를 잃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젊은이들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아들과 딸들.


“사실 본 공판에서는 더 길고 더 힘든 형벌을 선고하려 한다. 추방자 리븐은 이제부터 자신이 부순 것들을 수리하게 될 것이다.”


판사는 매부리코 너머로 리븐을 내려다보았다.


“힘든 노동을 요구하는 형벌이다. 먼저 콘테 부부의 밭을 가는 것부터 시작하도록.”


낮은 웅성거림이 주민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본 공판에서는 또한 리븐에게 공회당을 수리할 것을 명한다. 그리고 녹서스의 침공으로 피해를 입은 집과 가족들에게도 보상하도록.”


판사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리븐을 보았다. “이 판결을 따르겠느냐?”


모두의 눈길이 리븐에게 집중되었다. 낯선 감정이 목구멍 아래에서부터 차올랐다. 리븐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과거의 유령들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산 사람들 사이에 마구잡이로 섞여 있었다. 하지만 리븐은 그 광경이 오히려 반가웠다. 그 유령들에게 자신이 이런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네.” 사람들의 함성 때문에 리븐은 자기 목소리를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노부부가 달려와 양쪽에서 리븐을 찌그러뜨릴 기세로 껴안았다. 리븐은 두 사람의 품 안에서 긴장을 풀고, 그들이 자신에게 기대듯 자신도 그들에게 기댔다.


“디에다.” 샤바가 리븐의 하얀 머리칼에 얼굴을 묻은 채 속삭였다.


“딸.” 리븐도 마주 속삭였다.



출처 : 리그 오브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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