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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NG/태도

인생의 퍼즐

by Captain Jack 2018. 6. 28.


인생의 퍼즐



▽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인생의 퍼즐은 언젠가는.....언젠가는 맞춰져 있을 것이다.



 상담학을 공부하다보면 처음에는 너무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아서 신이 난다.


 "맞아맞아 저건 내 이야기야 바로 저거야!"


 그래서..상담을 조금 공부하신 분들은 약간 조증상태가 되기도 한다. 들떠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심리검사 같은 거 몇 개 배운 후 아는 사람에게 적용해보고


 결과를 소개하면 "맞네요" 이 소리를 들으면 순간 자신이 무슨 전문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온다.



 그래서 상담학을 처음 배우는 분들 중에는 나에게 "이 상담학을 전국민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사명감에 충만하여 말하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이상하다.


 분명 처음에는 좋았던 상담학이 갈수록 힘이 들어진다.


 분명 맞는 소리고 새로운 소리고 그런데..왠지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낀다. 왜 이럴까..



 이건 마치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너무 아픈 환자가 의사를 통해 자신이 왜 아픈지 상세히 아픈 이유를 듣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병에 대해서 의학서적을 구입해 읽는다.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발전되며 치료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드디어 그 병에 대해서만큼은 의사만큼의 지식을 습득한다.


 그런데 여전히 몸은 낫지 않는다. 여전히 아프다.




 이제부터 환자는 병에 대해 아는 일을 접고 병과 동행하며 병과 싸우며 병과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기나긴 과정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죽기보다 더 싫다. 또 원망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돌아가신 혹은 아직도 살아계신 늙은 부모에게 원망이 생겨난다.


 그것은 결국 다시 늘 되풀이하는 운명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아..내 운명은 왜 이렇게 지랄같은 거야..왜..왜.." 자존심이 상하고 자존감은 바닥을 긴다.


 언제까지 이래 살아야 하나..상담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에게 늘 그런 권면을 하곤한다.



 상담학이 여러분들을 구원해줄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치유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나의 노력이 절실해진다.


 그 노력의 주체가 바로 정신분석에서 강조하는 주체성이다.


 치유의 시작은 언제나 내가 문제라는 사실을 직시하는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더욱 더 깊은 성찰을 통해 내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총체적인 진단이 필요하다.


 심지어 먹는 음식까지 진단해야 한다.


 너무 달거나 짜거나 맛있거나 맵거나 고소하거나 그런 걸 너무 좋아하는 것도


 심리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우울증이 많은 사람일수록 단 것과 짠 것에 중독된 분들이 많다.


 그래서 음식도 철저히 조절해야 한다.


 몸도 근력과 근육이 없다. 그저 지방덩어리들을 붙이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울증에 운동이 특효지만 절대 혼자 운동을 하러가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다. 누가 도와주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헬스클럽에서 매니저를 두고 운동을 하는 편이 낫다.


 3개월 거금이 들어가지만 3개월만 열심히 하면 습관이 붙어 매니저없이도 할 수 있다.


 남자라면 섹스나 자위도 조절해야 한다.


 40이후의 정액은 그야말로 몸의 건강을 지켜주는 보약인데 정기를 마구 배출하면 지치고 늘어진다.


 심리의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이렇게 몸의 문제, 먹거리 문제, 성적인 문제까지 조절되어야 한다.


 그리고 심리적인 문제를 진단해야 한다. 심리만 해서는 절대 안된다.



 사람이 몸이 있는데, 몸을 멀리하고 심리를 논할 수 없다. 자기 직면, 자기 진단, 자기 성찰


 그리고 다시 자기 직면이 들어간다. 여기서의 직면은 처음에 말한 그런 직면이 아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들어가는 진단이다. 현미경을 들이대서 내 문제가 무엇이었나를 여실히 살피는


진단이다. 그리고 진정한 자기객관화의 단계에 들어간다. 그 때는 철저히 원망과 탓의 문제를 없앤다.



 자기객관화가 제대로 된 사람은 자기 운명의 아득함에 현기증을 느낀다.



 그리고 또다시 발악하듯 다시 원망이 나온다. 



 그러나, 그 때는 애도가 동반된 원망이 나와야 정상이다.




 그리고나서야 진정한 홀로서기가 조금씩 가능해진다.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이 있다.


 의존이나 집착에서 나온 사랑이 아닌, "연민"으로서의 사랑이다. 연민을 갖는다는 것


 나 자신에게도 연민의 마음, 가족에게도 연민의 마음 말이다.



 그리고 연민을 마음을 갖고 홀로서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드디어 내 리비도.


 내 욕망의 리비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라는 문제가 나온다. 이 부분이 참 중요하다고 본다.


 마이너스 상태에서 제로의 평온상태를 지나 이제 플러스 성장의 단계가 비로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 욕망, 내 건강, 내 한계, 내 실력, 내 수준을 갖고 어떤 성장을 할 수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장이 인류의 대의에 맞는가?



 마하트마 간디처럼 톨스토이처럼은 아니더라도 박애와 인류애를 갖고


 내가 이 짧은 삶 속에서 무엇을 세상에 남기고 갈까를 고민하는 단계에 이른다. 


..지금까지의 순서는 솔직히 내가 겪은 심리적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무조건 잘 성장하고 성숙하다는 말은 아니다.


 어느 면은 여전히 유치원 단계다. 자라지 않는 미숙함과 그 미숙함을 알면서도 즐기고 싶은


 하위적이고 형이하학적 욕망이 내 욕망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그래도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래도 성숙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융이 말하는 개성화의 단계이겠지만 그건 내게 너무 먼 산처럼 보이는


 높은 주제이다..그보다 나 나름의 방법을 말하자면 답답함 인생이 담담하게 되는 것이다.


 희로애락의 요사스런 요술에 속지 않고 희로애락을 견딜 수 있는 내적 능력을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 감정에 좀 더 솔직해지고 표현할 수 있을만큼 표현해보는 것이다.


 안해본 것을 시도해보는 만용과 용기도 갖게 된다.



 이로써 나는 내 삶을 수용하고 내 운명을 긍정하며 내 자신을 받아들이는 마지막 단계에 이른다.


 그런데 그 단계는 언어가 없는 단계다. 무념무상의 단계다. 나는 없고 진리만 빛나는 단계다.


 사실 이건 내게 지향성이며 바라봄의 목표이기도 하다.



 한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구도자의 마음자세가 되는 것이다.



 사실 말은 이렇게 멋있게 하지만 나는 안다. 어느 부분은 좀 위선이 있을 수 있음을.


 그래도 그런 나를 꾸짖지 않고 농담을 한다. 농담을 건네본다. 그렇게 내 내면의 자아를 강화시킨다.


 반복하고 미워하고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이해하고 수용하면서 아닌 건 아닌 것이라고 용기있게


 인정하면서 나를 설득해 나아가는 과정.그 과정이 모든 우울증 환자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삶은 정신과 의사 스캇 펙의 책 이름처럼 아직도 가야할 길이다. 


 그게 융의 개성화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의 바다라 했다.


 우리는 모두 선원이며 그 바다를 싫든 좋든 건너야 한다.


 폭풍우도 견디고 비바람도 견디고 오늘처럼 무서울 정도로 내리쬐는 햇빛의 폭력적 뜨거움도


 견뎌야 한다. 그러면 어느 날은 너무 시원하고 너무 푸르른 하늘로 인해 온 우주에 나만 있는 것 같은


 대양의 감정 Ocean feeling -을 체험한다.



 나는 어릴 적 그 무더위가 지나고 어느 날 길가에 할머니가 고추를 널어놓으셨는데


 그 고추가 가을햇볕에 말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 때의 햇볕은 고문하듯 뜨거운 햇볕이 아니라 먹거리를 만들어주는 햇볕이었다.


 삶은 그런 것 같다..분명 이 놈의 삶은 힘들고 외롭고 더렵게 재미없는데..


 그런 삶이 언젠가는 너무 아름답고 내 존재를 전률할만큼 그렇게 멋지게 다가온다.


 나의 내면을 재구조화, 재구성하는 것이 치료다. 흩어진 퍼즐을 제자리에 돌려놔야 한다..


 그래야 내 얼굴, 내 삶이 더 이상 괴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코는 코의 자리에, 눈은 눈의 자리에..그렇게 하나 둘 모든 걸 제자리로 돌리는 것


 그것이 삶의 과제요 상담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퍼즐은 언젠가는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완성되어 있을 것인가의 문제만 내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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