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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NG/佳詞

[佳詞] (2) 보고 싶은 내 아들 外

by Captain Jack 2018. 10. 3.

 

佳詞 (2)





▶ 보고 싶은 내 아들


20년도 더 됐지만, 그 여운은 지금 이 순간에도 느껴지는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입니다.


1995년 10월 5일 오후 5시경 

한탄강에서 낚시를 하던 한 남자가

숨져있는 할머니를 발견했습니다.


숨진 할머니의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 손가방에는

유서 한 장이 발견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보고 싶은 내 아들 언제나 만나볼까?

87년도에 외국으로 떠나고,

8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소식 한 장 없소. 

전화 한 통이라도 해줄까 하여 기다리다 보니

어미는 70고개를 넘었구나.

살기도 많이 살았다.

어찌하여 생이별을 하게 되었는지...

모든 게 어미 탓이다. 

어디가 살든지 몸 건강 하여라.


편지지 뒷면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유서.

멀리 외국으로 떠난 아들을 8년간 그리워하며 살아온

할머니의 외롭고 고달픈 인생살이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내용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은 신문에 실릴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합니다. 

더욱 가슴 아픈 건, 그 이후의 사연입니다.


외국에 가서 연락을 끊은 줄만 알았던 비정한 아들은

8년간 소식을 끊은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노모를 잘 모시기 위해 리비아 건설 현장으로 갔다가

2달 만에 풍토병으로 세상을 떠나, 

연락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당시 27세... 

할머니의 외아들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아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할머니가

아들의 사망소식으로 큰 충격을 받으실까 걱정 되어 

사실을 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할머니는

죽음을 앞두고도 자식들에게 작은 피해라도 갈까봐

당신의 주민등록증, 경로우대증까지 모두 버린 채,

유서 한 장만을 남기고 강에 몸을 던진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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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큰 사랑... 

그리고 모든 것을 내어 주고도 더 주지 못해

마음 아파하는 것이 부모님의 사랑인 것 같습니다.




▶ 누구에게나 기회는 온다


저는 태어난 지 100일 무렵부터 

부모님의 이혼으로 고모네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 후, 새엄마네 집으로 보내졌고, 

9살 때까지 그 곳에서 살다 중 3때 쫓겨났습니다.


또 다시 갈 곳이 없어진 저는 친척집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친척들은 제가 나타나자 회의를 하시는 것 같았어요.

'누가 쟤를 맡을 거냐..'


아무도 나서지 않자 고아원 이야기까지 나왔는데,

아직도 그 말은 정말 큰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나서서 저를 맡으셨어요.

할머니는 노인연금만으로 생활하셨기 때문에

점심은 노인정에서 해결하곤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노인정 공사로 문을 닫은 날이었어요.

너무 배가 고파 불우이웃돕기 모금함에서 쌀을 가져왔는데,

집에 전기가 없어 밥을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가까운 은행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와 쌀을 불려 먹었어요.


그렇게 어렵게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는 

또 다시 생계를 위해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턱이 부러졌는데 수술비가 200만원이나 나왔어요. 

제 전 재산은 50만원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수술을 했어요. 

그 때, 수술비가 없는 것보다 더 서러운 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병실에 홀로 누워있는 것이었어요. 

정말 눈물이 나더라고요.


전 생각했습니다.

이러다가 할머니에게 끝까지 짐만 될 것 같다.

퇴원하면 당장 공부를 하자.

그렇게 다짐했습니다.


어느 날, 매일 오시던 노인정 할머니가 오지 않아 찾아가 보니

어깨가 퉁퉁 부어있더라고요.

병원에 모시고 가니까 뼈가 다 부러졌대요. 

왜 이렇게까지 참았냐고 하니까 병원비 때문이래요.

그 때 의대에 진학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그 후, 막노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생활을 시작했어요.

하루 12시간 막노동을 하고 나면 정말 10분도 앉아있기가 힘들었어요.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요.

정말 이렇게 살기는 싫었거든요.

처음에는 10분, 20분.. 이렇게 시간을 늘려갔더니

나중엔 하루 6시간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정말 힘들어 수백 번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 같은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

그럴 때마다 더 열심히 공부했어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하늘이 정말 존재한다면 도와줄 거라 굳게 믿었어요.


그렇게 3년, 드디어 의대에 합격했어요. 

할머니께 제일 먼저 말씀 드리니, 정말 기특해 하셨어요.

더 행복한 건 저와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에게도 

제 합격이 힘이 될 거란 생각이었어요.


물론 앞으로 힘든 일이 더 많이 생길지도 몰라요.

아마 그럴 거에요.

하지만 전 이런 경험들에 항상 감사해요.


한 겨울, 할머니를 모시고 노인정에 살았을 때,

쌀을 불려먹으며 끼니를 때울 때,

이런 모든 고생과 경험이 다 귀한 재산이 되어 지금의 절 있게 했거든요.

덕분에 앞으로 더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잘 살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생겼어요.


지금까지 어떤 힘든 일에도 지지 않고 버텨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겁니다.

저처럼 벼랑 끝에 서있을 누군가를 잡아줄 힘이 돼주고,

우리 할머니처럼 힘들고 어렵게 사시는 분들을 돕는

그런 멋진 의사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 KBS <강연100도씨> / 의대생 박진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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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과 마주하게 됩니다.

피해가는 사람도 있고, 맞서 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맞서 싸워 이긴다면 그 성취감과 행복은 억만 금을 줘도

사지 못할 값진 자산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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