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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NG/LOL

[LOL 단편소설] 노틸러스 / 파이크 / 쓰레쉬

by Captain Jack 2018. 12. 4.

  

[LOL 단편소설]

 

  

º [뱀] - 노틸러스

º [그리고, 이빨] - 파이크 

º [수집품] - 쓰레쉬



   

[뱀] - 노틸러스



아냐, 아냐. 앉아도 된다구. 이리 와서 같이 술에 빠져 보는 게 어떤가, 친구... 참, 뱃사람이 빠진다는 말은 하면 안 되지. 헤헤.


그래, 난 난파선을 몇 척 봤지. 그중엔 내가 자네만큼 젊었을 때 타던 배도 있었다네. 뱀이라는 이름의 배였지. 지금은 갈지자 해협 아래에 잠들어 있지만. 나도 유일한 생존자였어. 한 잔 사면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겠네.


이거 말이야? 안 돼. 이건 쓸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친구. 이건 내 행운의 크라켄 주화야. 바다에 바치는 공물이지.


그래, 공물. "공물을 바치지 않으면 바다의 분노가 닥치리라."라는 말. 뱃사람이라면 다 알잖나.


수염 달린 여신이 내리는 벌 말이네... 그렇다면 자넨 노틸러스에 대해 들어 본 적 없겠구먼? 심해의 타이탄 말일세.


주인장! 여기 한 잔씩 따라 줘. 맘에 드는 아가씨군. 이건 맥주 한 잔이 들어가야 나오는 이야기라네... 여기 이 친구가 살 거야.


크, 죽이는군.


그러니까 30년 전쯤 됐나. 사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지. 그 당시 난 학살 함대에서 가장 뛰어난 솜씨를 가진 작살잡이였어. 우리는 도끼처럼 뾰족한 지느러미를 가진 레비아탄, 그중에서도 큰놈을 잡아 항구로 운반하던 중이었지. 동이 트기 직전이었어. 빌지워터의 불빛이 저 멀리서 깜빡이며 손짓하고 있었지. 칼날고기와 포악한 상어 떼가 놈의 지느러미에서 흐르는 피를 따라 우리 뒤를 바짝 쫓고 있었고 말이야.


그런데 선장이... 뭐, 사실 우리 중 누구도 선장을 좋아하지 않았어. 신뢰하기 힘든 부류였거든. 아무튼 그가 출항하기 전에 공물을 바쳤다고 당당히 얘기하더군. "크라켄 주화 한 닢이 내가 바칠 수 있는 전부라네"라면서.


하지만 우리 중 아무도 그가 바다로 금화를 던지는 모습을 직접 보진 못했지. 당연히 수상할 수밖에. 게다가 선장은 구두쇠인 데다가 부두의 건달이었단 말이지. 하지만 어쨌든 배는 출발했지.


그리고 타이탄이 우리를 공격했다네.


엄청나게 거대한 닻이 예고도 없이 물밑에서 '쾅' 하고 올라오더군. 용골을 완전히 박살내곤 주갑판까지 뚫고 올라왔지. 그리고 배를 붙들고는 물속으로 끌고 내려가기 시작한 거야... 세상에, 난리도 아니었지. 파도는 거세게 휘몰아치고, 선원들은 갑판에 내동댕이쳐지고, 바다의 포식자들에게 잡아 먹히기도 했다네. 난 선장을 붙들고 소리쳤어. "이 사기꾼! 네가 공물을 바치지 않아 여신이 벌을 내린 거다!"


배는 빠르게 침몰했어. 하지만 그때 선체의 판자가 떨어져 나가 틈이 생기면서 닻이 깊은 물 속으로 스르륵 빨려 들어갔지. 만약 거기까지였다면 더 많은 동료들이 탈출했을 거야.


하지만 노틸러스는 여전히 우리에게 볼일이 남아 있었지.


선체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기울더군. 타이탄이 갑판으로 올라오자 엄청난 무게 때문에 배가 한쪽으로 쏠린 거야. 한때는 인간이었을지 몰라도, 그날 밤 파도를 뚫고 나타난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네. 난 선장의 멱살을 잡고 고함을 질렀어. "네놈 탓이야!" 그러자 선장의 눈이 커지더군. 노틸러스가 다가오고 있던 거야...


그래서 난 그를 기울어진 갑판 쪽으로 밀쳐 버렸어. 그런데 말이야, 믿기 힘들겠지만 노틸러스가 한 손으로 선장을 낚아챘지 뭐야! 정말 엄청나게 크더군. 그자도 어디 가서 작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몸집은 아니었는데 노틸러스의 손가락이 선장의 몸을 완전히 움켜쥐었지.


"그자를 바치겠소!" 난 그렇게 외치고는 바다로 뛰어들었어.


물속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는 모르겠군. 고작 몇 초였겠지. 하지만 엄청난 시간이 흐른 듯했네. 그런데 바다의 포식자들이 날 잡아먹지 않더군. 자비로운 여왕 바다뱀이시여. 난 해협의 뾰족한 바위 위로 몸을 끌어올리고는 뱀이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봤다네.


노틸러스는 여전히 선장을 움켜쥐고 있더군. 꿈틀대는 모습이 꼭 낚싯바늘에 걸린 벌레 같았다니까. 하지만 그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어. 타이탄은 그저 동상처럼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그들은 그렇게 시커먼 바닷속으로 사라졌다네.


어째서 날 살려 뒀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공물을 바친 유일한 사람이라서? 아니면 이 이야기를 퍼뜨리기 위해 누군가를 남겨 둔 건가? 어쨌든 빌지워터에 칠흑 같은 밤이 찾아오고 죽음의 안개가 깔리면 그가 얕은 물가를 헤치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네. 천천히, 흔들림 없이, 그 저주받은 닻을 끌고 오는 소리가 말이지...


이봐, 조언 하나 해줄까? 항상 호주머니에 동전을 넣어 두게.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공물을 바치는 걸 잊지 말게. 선장이 공물을 바쳤다고 해도 믿지 말고. 자네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말이야.


아마 자넨 나만큼 운이 좋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리고, 이빨] - 파이크



메이지어는 팔다리를 제멋대로 벌린 채 썩은 판자 위에 누워 있었다. 아래에서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며 찰싹거렸다. 그녀의 심장이 느리게 뛸 때마다 바닷물이 붉게 물들었다. 메이지어는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멀리 있는 오두막집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그 너머의 별로 시선을 옮겼다.


파이크는 메이지어의 얼굴을 한 번 더 살펴봤다. 생기를 잃은 눈동자가 그의 마음을 후볐다.


자울치잡이 배는 누더기가 된 네 개의 돛을 달고 있었다. 파도는 집채만 했다.


긴 머리카락이 거친 바닷바람에 휘날렸다. 갑판 위 수십 개의 얼굴이 지켜보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 겁에 질린 메이지어의 푸른 눈동자가 있었다.


그리고, 이빨이었다.


메이지어의 새하얀 치아가 아닌, 칼날만 한 끈적한 이빨이 배를 난도질했다. 빛이 사라져갔다. 어둠. 자울치의 입 속이었다. 구명줄이 길게 늘어졌다 싹둑 잘렸다.


자울치의 혓바닥은 미끈거렸다. 땀이 눈으로 흘러 들어가서 쓰라렸다. 붙잡을 곳 없는 손가락은 허공을 몇 번 휘저었다. 물 위로 올라가야 해. 헤엄쳐, 헤엄쳐...


자울치의 이빨은 꾹 다물려 있었다. 그러자 고통이 느껴졌고, 암흑이 느껴졌다.


배가 사라졌다. 눈동자도 함께 사라졌다.


메이지어의 눈동자 말이다.


갑판원이야. 그래. 거기에 있었어. 내 밧줄을 잘랐지.


파이크는 아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부츠를 신은 발로 메이지어의 몸통을 툭 찼다. 부두 끝으로 굴러갈 때까지 파이크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차자 메이지어가 떨어져 물에 떠올랐다. 곧이어 상어 떼가 몰려 들었다. 빙글빙글 돌다 메이지어를 낚아 챘다. 바다는 결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바람결에 흘러오는 갈매기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들으며 파이크는 살생부에서 갑판원 메이지어를 찾았다. 양피지에 적힌 그녀의 이름에 붉은 줄이 그어졌다.


공포 호의 선원 명부에 적힌 마지막 이름이었다.


끝났다. 이제 살생부는 이름 대신 붉은 선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 잉크는 어디서 났더라...?


불안하고, 초조하고, 불만스러운 감정이 파이크를 갉아먹었다. 몸속에서 들끓는 증오가 요동쳤다. 끝난 게 아니다. 그날 갑판에는 선원들이 잔뜩 있었다. 아마 이 명부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었다.


수많은 동료들이 그를 죽게 내버려 두었다.


다른 소리가 들려 왔다. 갈매기도, 파도도,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도 아니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수없이 들려오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라는 고함도 아니었다. 그 옛날 물에 잠겼던 도시에서 흘러나오던 기억 속의 음악도 아니었다.


새로운 소리, 살아 있는 소리였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말이다.


파이크는 눈을 돌렸다. 나무 계단이 무거운 발걸음에 휘어지고 있었다. 건장한 몸집의 남자가 물 위에 매여 흔들거리는 선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방에 흩뿌려진 핏자국을 본 그는 멈춰 서더니 한 손을 품속에 넣어 화승총을 꺼내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언제든지 발사할 준비를 한 채로. 이렇게 멍청할 데가 있나.


파이크는 달빛 아래로 한 발자국 걸어 나갔다. 남자는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었다. 그의 입은 부두 은행원의 동전 지갑보다 굳게 다물려 있었다. 남자의 눈이 커지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해파리 같기도, 바람에 출렁이는 물결 같기도 했다.


“누구냐?” 남자가 고함을 질렀다.


와서 확인해봐.


화승총은 파이크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섬광과 함께 탕 소리가 났다. 분명히 발사되었지만 나무판자가 박살났다. 파이크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파이크는 안개로 변했다.


소금기와 물방울로 이루어진 안개 말이다. 그에게 어울리는 안개였다. 파이크는 사람들이 자신을 유령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적 있었다. 그러니 절반은 맞는 말이다.


남자는 다시 총을 장전했다. 찡그린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에 파이크는 공기 중에서 그를 둘러싼 채 관찰했다. 탁한 갈색 눈동자는 겁에 질려 있었고, 허연 수염이 거칠게 자라나 있었다. 축 처진 턱살에 비뚤어진 코, 부르튼 입술에 뭉개진 귓불을 보니 선술집에서 무수히 지저분한 싸움을 벌여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선장 같군.


달콤하면서도 거친 두려움의 냄새를 풍긴다. 잔뜩 겁을 먹은 채 떨고 있는 익숙한 공포다.


선장의 냄새가 나는군.


파이크는 직접 확인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 거구였던 데다가 바다가 준 사악하게 빛나는 눈동자 때문에 더 거대해진 기분이 들었다. 이름을 말하라, 파이크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남자는 누군가가 등 뒤에서 불쑥 나타날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물론 지금까지 그걸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술집에서 떠들어대는 공상이나 악몽, 소설이라면 모를까 현실에서는 바지를 적시거나 앞으로 나동그라지는 게 전부였다. 이 건장한 선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꼴사납게 자신의 부츠에 발이 걸려 넘어져서는 통조림통처럼 계단을 데굴데굴 굴러 내려갔다.


파이크는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디뎠다. 녹서스의 갤리온선이 부두에 정박해 있었다. 무역선인가, 아니면 배역자의 배인가? 그에게 차이점은 없었다.


내가 이 계단을 다 내려갈 때까지 질문에 답하도록 해라.


남자는 돛이 흔들릴 정도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뭍 위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헐떡거렸다. 그는 투실투실한 손을 뻗으며 말했다.


기억이 나는군...


저벅.


하얗게 질린 손이 갑판의 난간을 붙잡았다...


저벅.


남자는 일어서려고 했지만 무릎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저벅.


넌 지켜보고 있었어.


저벅. 선창의 시궁쥐 한 마리가 종종거리며 다가왔다. 곧 저녁 식사 시간이다.


게다가 웃고 있었지.


남자는 더듬거렸다. 눈물까지 흘러나왔다. “제... 제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저벅.


이름.


“베케! 베케 니드!”


파이크는 계단을 한 칸 남겨둔 채 멈춰 서서는 살생부를 훑어보았다. 온통 붉은색이었다. 모든 이름에 줄이 그어져 있었다.


여기 있군. 베케 니드, 일등 선원.


그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은 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종이가 잘못 접혀 있었던 것이다.


베케 니드. 그래, 기억나는군. 그 배에 타고 있었지.


“난 당신을 만난 적 없소! 오늘이 내 빌지워터에서의 첫...”


사람들은 작살잡이의 갈고리가 박히면 거짓말을 못 하지. 모르는 사실을 가지고 애원하거나 거래할 순 없으니까 말이야.


상어 뼈를 연마해서 만든 날은 쓸만한 도구였다. 강철보다 예리하여 살과 뼈를 부드럽게 분리했다. 베케는 버둥대면 버둥댈수록 고통이 커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두 눈은 진심으로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그 눈동자가 파이크의 마음을 후볐다.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파이크는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도록 문을 열었고, 베크의 애원은 꾸르륵대며 물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자울치잡이 배는 누더기가 된 네 개의 돛을 달고 있었다. 파도는 집채만 했다.


제멋대로 자란 수염이 거친 바닷바람에 휘날렸다. 갑판 위 수십 개의 얼굴이 지켜보고 있었다. 탁한 갈색 눈동자였다. 겁에 질린 베케 니드의 탁한 갈색 눈동자가 있었다.


그리고, 이빨이었다.

  


 

[수집품] - 쓰레쉬



쇠사슬이 덜그럭대는 끔찍한 소리가 들판에 울렸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안개 때문에 달빛도 별빛도 보이지 않고, 늘 들리던 벌레들의 노랫소리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허물어져 가는 오두막집에 쓰레쉬가 다가섰다. 랜턴을 들어 올린 것은 주위를 살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랜턴의 내부는 자그마한 구체들이 수없이 빛나는, 마치 별이 가득한 밤하늘 같았다. 구체들이 쓰레쉬의 눈빛을 피하려는 듯 분주하게 흔들렸다. 쓰레쉬는 기괴한 미소를 지었고, 드러난 이가 구체들의 녹색 빛을 반사해 반짝였다. 이 빛 하나하나가 소중한 수집품이었다.


오두막 문 너머에서 남자의 앓는 소리가 들렸다. 쓰레쉬는 그 아픔을 감지하고 이끌려온 것이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쓰레쉬는 남자의 고통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쓰레쉬가 남자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수십 년 전 단 한 번뿐이었다. 하지만 그 후 쓰레쉬는 남자의 소중한 존재들을 모조리 빼앗아버렸다. 가장 아끼던 말부터 시작해, 어머니, 형제, 그리고 가까운 말벗이었던 하인까지. 쓰레쉬는 그들의 죽음을 자연사로 위장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누가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안기는지 분명히 알게 하려는 뜻이었다.


육체에 얽매이지 않는 쓰레쉬는 문을 그대로 통과했다. 그러면서 뒤로 질질 끌리는 쇠사슬을 추슬러 들었다. 오두막 벽은 습기에 절어 몇 년 동안 쌓인 찌든 때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지만, 남자의 몰골은 그보다 심했다. 머리털은 제멋대로 자라 뭉쳐 있었고, 피부에는 온통 딱지가 앉아 있었다. 고통과 분노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할퀸 흔적이었다. 처음엔 고급품이었을 벨벳 옷조차도 지금은 너덜너덜한 넝마조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갑작스런 녹색 빛에 움츠러들어 눈을 가리더니, 곧 격렬하게 몸을 떨며 구석으로 피했다.


“제발, 너만은 보고 싶지 않았는데.” 남자가 우물거렸다.


“오래전에 널 점찍었지.” 거칠게 갈라진 쓰레쉬의 목소리가 울렸다. 몇 년 동안이나 말해본 적이 없는 듯한 목소리였다. “이제 널 가질 시간이다.”


“난 이미 죽어가고 있어.” 남자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내 목숨이 목적이라면 서두르는 게 좋을걸.” 쓰레쉬를 똑바로 쳐다보려고 억지로 애쓰는 모습이 처량했다.


쓰레쉬의 입이 크게 웃었다. “네가 죽는 걸 원하진 않아.”


그리고 쓰레쉬는 랜턴의 유리 뚜껑을 살짝 열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혼들의 비명이 이루는 불협화음이었다.


처음에 남자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많은 목소리가 한데 뒤섞인 유리파편처럼 겹쳐 들렸기 때문에, 쉬이 구별해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랜턴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남자의 눈은 공포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목소리, 형제의 목소리, 친구의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끔찍하게 귓가를 울린 남자의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 산 채로 불타고 있는 것처럼 끔찍한 비명이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남자는 울부짖었다. 그는 모든 힘을 쥐어짜내 망가진 의자를 집어 들고 쓰레쉬에게 던졌다. 의자는 아무 해도 끼치지 못한 채 쓰레쉬를 통과해 바닥에 떨어졌고, 쓰레쉬는 음산하게 웃었다.


분노로 눈이 뒤집힌 남자가 달려들었지만, 쓰레쉬는 갈고리 달린 사슬을 먹이를 낚아채는 뱀처럼 휘둘렀다. 날카로운 갈고리가 남자의 흉곽을 찢고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남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제자리에 무너져 무릎을 꿇었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하려고 떠나온 거였는데…” 남자가 울부짖었다.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쓰레쉬가 사슬을 우악스럽게 잡아당겼다. 처음엔 아무 움직임도 없었지만, 곧 몸에서 혼이 뜯겨 나오기 시작했다. 성기게 짠 천이 서서히 찢기는 것처럼, 남자의 존재는 둘로 쪼개졌다. 육체는 영혼을 잃으며 어지럽게 요동쳤고 사방의 벽에 피가 흩뿌려졌다.


“자, 이제 가볼까.” 쓰레쉬가 말했다. 붙잡힌 영혼은 사슬 끝에 달려 빛을 내며 떨고 있었다. 쓰레쉬는 그것을 집어 랜턴 안에 가두고, 오두막을 떠났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 빈 껍데기가 된 시신이 나뒹굴었다.


쓰레쉬는 랜턴의 빛을 높이 쳐들고 오두막을 떠나 검은 안개를 뒤따랐다. 쓰레쉬가 물러난 뒤에야 안개가 걷혔고, 벌레들의 노랫소리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출처 : 리그 오브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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