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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NG/LOL

[LOL 단편소설] 그림자 그리고 운명

by Captain Jack 2018. 12. 10.

  

[LOL 단편소설]

  

  



날 도살자단이 잭도의 턱을 녹슨 작살 못에 꿰어 부둣가 짐승들의 먹잇감으로 매달아 두었다.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오늘 밤에만 열일곱 번째로 마주친 폭력단원 살해 현장이었다.


빌지워터치곤 많다고 할 수 없는 수였다.


적어도 해적왕이 쓰러진 뒤론 말이다.


붉은 송곳니를 드러낸 부두 쥐가 매달린 잭도의 옆에 쌓인 바닷가재 통발에 올라앉아 연한 종아리 살을 물어뜯고 있었다.


후드 쓴 남자는 걸음을 재촉했다.


“도와… 줘…”


피로 막힌 목구멍에서 쥐어짜 낸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후드 쓴 남자가 홱 돌아서며 두꺼운 벨트에 매달린 무기로 손을 가져갔다.


놀랍게도 잭도는 뼈 손잡이가 달린 작살 못에 꿰인 채로도 아직 살아 있었다. 못은 크레인의 나무 기둥에 깊숙이도 박혀 있었다. 

어떻게 해도 잭도를 죽이는 것 말고는 구할 길이 없어 보였다.


“도와… 줘…” 잭도가 다시 간청했다.


후드 쓴 남자는 멈춰 서서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무슨 소용이지? 지금 구해줘도 내일 아침이면 시체가 될 텐데.”


잭도는 조심스럽게 한 손을 들어 누덕누덕 기워 입은 조끼에 숨겨 놓은 크라켄 금화를 꺼냈다. 어두침침한 부둣가 조명 아래서도 진짜 금화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남자가 다가가자 부두 쥐가 날카롭게 쉬익 소리를 내며 목 털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몸집은 그다지 큰 놈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신선한 고기를 두고 쉽게 물러서진 않으리라. 바늘같이 길고 가는 송곳니 사이로 역겨운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남자는 쥐 한 마리를 바다로 걷어찼다. 또 한 놈은 발로 짓뭉갰다. 이어 나머지 녀석들이 달려들었지만, 남자의 재빠른 발놀림에 부두 쥐는 그에게 이빨 끝조차 대지 못했다. 남자의 움직임은 부드럽고 정확했다. 세 놈을 더 처치하자 나머지는 우수수 흩어졌다. 붉은 눈들이 어둠 속에서 그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잭도 옆에 섰다. 남자의 이목구비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달빛 아래 드러난 얼굴 윤곽에서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죽음의 순간이 왔다. 받아들여. 내가 반드시 완전한 안식에 들게 해주지.”


그는 외투 안쪽에서 반짝이는 은제 스파이크를 꺼냈다. 두 뼘 길이의 스파이크에는 굽이치는 문양이 휘감듯이 새겨져 있었다. 가죽 세공인이나 쓸 법한 화려한 물건이었다. 그는 그 끄트머리를 죽어가는 남자에게 가져다 댔다.


잭도의 눈이 커지더니 한 손을 허우적거리며 후드 쓴 남자의 소매를 움켜쥐려 했다. 그의 눈은 저 멀리 대양으로 향했다. 무수한 촛불과 부둣가의 화톳불, 낭떠러지에 폐선박 자재로 지은 수많은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이 검은 거울 같은 바다에 비쳐 흔들렸다.


“저 수평선 너머에 뭐가 도사리고 있는지 모두 알고 있지. 어떤 공포가 찾아올지 알고 있지 않나. 그런데도 미친 짐승처럼 서로를 물어뜯고 있군. 멍청하기 짝이 없어.”


그는 몸을 돌려 잭도에게 스파이크를 푹 꽂았다. 이윽고 시체의 마지막 떨림이 잦아들며 잭도는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됐다. 금화가 시체의 손에서 굴러떨어지더니 퐁당 바다에 빠졌다.


후드 쓴 남자는 스파이크를 빼내 잭도의 누더기 셔츠에 닦았다. 그리곤 스파이크를 외투 속 쌈지에 집어넣고, 황금 바늘과 아이오니아의 샘물을 머금은 은 실을 꺼내 들었다.


수없이 해 온 일이란 걸 증명이라도 하듯 능숙한 손놀림으로 그는 죽은 자의 눈과 입술을 꿰맸다. 손을 놀리며 입으로는 아주 오래전에 익힌 주문을 

읊었다. 오래전, 어느 왕이 잘못 사용했다는 그 주문이었다.


“이제 죽은 자들이 널 붙잡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일을 마치고 바늘을 집어넣었다.


“그럴지도. 그런데 우린 빈손으로 돌아갈 생각 없는데 어쩌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가 뒤로 돌며 후드를 내리자 잘 길들인 마호가니 같은 갈색 피부가 드러났다. 각진 광대뼈가 귀족적인 인상을 더했다. 검은 머리는 길게 땋아 늘어져 있었고, 가늠할 수도 없는 공포를 마주했던 두 눈은 낯선 자들을 훑었다.


피로 딱딱하게 굳은 가죽 앞치마를 두른 사내 여섯이 가시넝쿨 문신으로 뒤덮인 근육을 과시하며 서 있었다. 하나같이 톱니 갈고리를 들고 푸줏간 칼을 가지가지 벨트에 매달고 있었다. 빌지워터를 손에 쥐고 흔들던 폭군이 몰락하자 하찮은 건달 무리가 기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해적왕이 사라지자 여러 갱단이 새 구역을 접수하려 싸우면서 도시 전역이 혼란에 빠진 탓이었다.


놈들이 다가오는 건 벌써 눈치챘었다. 징 박은 부츠 소리와 썩는 내,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는 소리 덕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훨씬 전에 알고 있었다.


“금화가 여왕 바다뱀한테 가는 건 상관없지만 말이지.” 가장 덩치 큰 칼날 도살자단 놈이 지껄였다. 놈의 배는 너무 거대해서 대체 저 몸뚱이로 죽은 동물에 다가가 내장을 발라낼 수나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우리가 죽인 해적은 엄연히 우리 거란 말이지. 그러니 그 바다뱀 금화도 당연히 우리 거였다고.”


“여기서 죽고 싶나?” 남자가 물었다.


뚱뚱한 사내가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누군 줄은 아나?”


“아니. 그런 넌?”


“그럼 말해 보시지. 수장할 때 이름이라도 새겨줄 테니.”


“내 이름은 루시안이다.” 대답과 동시에 남자는 긴 외투를 뒤로 젖히며 한 쌍의 총을 뽑아들었다. 정과 끌로 세공한 돌과 자운의 미치광이 연금술사조차 알지 못하는 번쩍이는 금속으로 정교하게 제작한 총이었다. 번뜩이는 빛줄기가 뚱뚱한 사내의 발치를 치더니 놈의 기괴하게 부풀어 오른 가슴팍에 까맣게 탄 구멍을 내어놨다.


그리고 좀 더 작고 정교하게 세공된 두 번째 총에서 노란 불줄기가 뿜어나와 또 한 놈의 몸뚱어리를 갈랐다.


부두 쥐들처럼 남은 놈들이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루시안은 냉정하게 총을 겨눴다. 빛줄기가 한 번 터질 때마다 적이 하나씩 쓰러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칼날 도살자단 여섯의 시체만 남았다.


루시안은 총집에 총을 집어넣고는 외투를 끌어당겨 몸을 감쌌다. 싸우는 소리를 듣고 다른 놈들이 몰려올지도 모른다. 때문에 다가오는 재앙으로부터 이들의 영혼을 구할 시간은 없었다.


루시안은 한숨을 쉬었다. 잭도를 도와주는 게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옛날의 약해 빠진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갑자기 기억이 되살아나려 해서,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어.” 루시안이 중얼거렸다.


예전의 자신은 지옥의 간수를 쓰러뜨릴 수 없었으니까.


올라프의 서리비늘 사슬 갑옷은 피와 내장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도끼를 휘두르며 툴툴거렸다. 도끼에 닿을 때마다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끊어져 나갔다. 프렐요드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서 구한 얼음 정수로 벼려낸 도끼날이었다.


지글대는 횃불을 한 손에 들고 올라프는 크라켄웜의 축축한 내장을 헤쳐나갔다.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쩍쩍 길이 생겼다. 바다 괴물의 거대하고 번들번들한 내장과 단단한 뼈를 쪼개며 여기까지 오는 데 세 시간이나 걸렸다.


그렇다. 이 괴물은 이미 죽었다. 한 달 동안 북쪽에서부터 추격한 끝에 일주일 전에야 잡을 수 있었다. 겨울의 입맞춤호 장정들이 굵은 팔로 던져댄 작살이 서른 개도 넘게 녀석의 비늘 덮인 거죽에 꽂혔지만, 결국 그 기나긴 싸움을 끝낸 건 올라프의 창이었다.


빌지워터 근처까지 와서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괴물을 사냥하는 건 정말 짜릿했다. 한 번은 배가 한쪽으로 기울더니 올라프의 몸이 녀석의 입속으로 튕겨 들어갈 뻔했다. 순간 그는 지금이야말로 저주를 깨고 영광스런 죽음을 맞이할 기회라며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조타수 스바펠이 그 망할 탄탄한 어깨로 방향타를 돌려 배를 바로 세워버렸다.


실망스럽게도 올라프는 살아남았다. 이러다가 정말로 흰 수염 텁수룩한 노인네가 되어 평화롭게 숨을 거두는 끔찍한 말로를 맞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배를 빌지워터에 정박시켰다. 크라켄웜의 몸뚱이는 팔고 어마어마한 이빨이나 기름처럼 잘 타는 검은 피는 기념물로 챙길 셈이었다. 거대한 갈비뼈는 어머니 응접실 지붕으로 쓰면 딱일 듯했다.


부족 사람들은 사냥에 지쳐 배에서 잠들었지만, 지친다는 개념 자체를 모르는 올라프는 쉴 수가 없었다. 그는 번쩍이는 도끼를 쥐고 거대한 괴물을 해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야 겨우 녀석의 안턱에 도달했다. 갈빗대로 둘러싸인 식도 같은 공간이었다. 사냥꾼 한 무리를 한꺼번에 삼키고 노가 서른 개나 달린 큰 약탈선도 한입에 우그러뜨릴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놈이었다. 흑요석 바위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눈에 들어왔다.


올라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술사나 점성술사네 불 제단 주변에 두르면 딱이겠군.”


그는 횃불의 뾰족한 끝을 크라켄웜의 살점에 박아 넣고 도끼로 턱뼈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이빨이 빠져나오자 그는 도끼를 벨트에 꽂고 이빨을 손으로 

들어 올려 어깨에 들쳐 맸다. 이빨이 제법 무거워 입에서 불평이 새어 나왔다.


“서리 트롤이 집을 만들려고 얼음을 모으는 꼴이군.” 올라프는 무릎까지 찬 피와 부식성 소화액을 헤치며 괴물의 내장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크라켄웜의 뒷구멍 쪽에 난 상처를 비집고 나와 바깥 공기를 폐 깊숙이 들이쉬었다. 연기와 땀, 시체의 악취로 가득한 빌지워터의 공기는 괴물 내장 속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오물더미를 끼고 살아가는 돼지들처럼 빽빽하게 모여 살아서 공기조차 무거웠다.


올라프는 악취가 스며든 침을 한껏 뱉어냈다. “빨리 집에 가는 게 낫겠구먼.”


프렐요드의 공기는 뼈까지 시릴 정도로 차갑고 맑았다. 하지만 여기는 숨을 들이켤 때마다 썩은 우유와 고기 냄새가 진동한다.


“이보쇼!” 바다 너머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올라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 속을 살폈다. 어부 하나가 죽은 새와 종이 기이하게 매달려 있는 부표를 지나 노를 젓고 있었다.


“지금 그 괴물 똥구멍에서 나온 거요?” 어부가 외쳤다.


올라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 탈 돈이 없어서 프렐요드에서 이 녀석 뱃속으로 들어가서 여기 남쪽까지 왔지 않겠소.”


어부는 씩 웃더니 금이 간 푸른 술병을 기울여 한 모금 마셨다. “그 정신 나간 이야기, 한 번 제대로 듣고 싶구려!”


“겨울의 입맞춤호로 와서 올라프를 찾으시오. 그라뵐 한 통 나눠 마시고 죽음의 노래로 이 괴물의 명복을 빌어줍시다.” 올라프가 외쳤다.


흰 선착장은 늘 갈매기 똥과 썩은 생선 냄새가 나는 곳이었지만, 오늘은 살점과 나무 탄내가 진동했다. 그 냄새를 맡으니 갱플랭크의 부하들이 죽어가는 

모습이 더 생생히 떠올랐다. 재가 하늘을 검게 뒤덮었고 해적이 잔뜩 탄 채로 불타오른 배에서 뿜은 독한 연기가 학살의 부두에서 이 서쪽까지 흘러들었다. 입안이 미끈거렸다. 미스 포츈은 선착장에 쌓인 뒤틀린 목재에 한껏 침을 뱉었다. 바다는 오랫동안 이곳에 수장된 수많은 시체에서 떨어져 나온 찌꺼기로 뒤덮여 있었다.


“다들 어젯밤에 고생했어.” 미스 포츈이 서쪽 절벽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며 끄덕였다.


“그렇죠, 뭐.” 레이픈이 대답했다. “오늘도 갱플랭크 밑에 있던 녀석들을 수도 없이 쓸어버릴 겁니다.”


“얼마나 잡았지?”


“크랙사이드 쪽을 열 명 더 잡았고 뼈무덤 불한당 녀석들은 이제 귀찮게 안 할 겁니다.”


미스 포츈은 고개를 끄덕이곤 선창가에 놓인 화려한 황동 대포를 바라보았다.


그 속엔 영면에 든 잭나이프 번이 누워 있었다. 빌지워터 모두의 눈앞에서 데드 풀 호가 폭발한, 모든 것이 바뀐 그 날 밤. 잭나이프 번은 총을 대신 맞고 

끝내 눈을 감았다.


미스 포츈을 노리고 발사됐던 그 총알을…


이제 번이 바닷속 망자들의 세계로 떠날 시간이었고 미스 포츈은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가 가는 길을 배웅하려고 족히 이백 명은 모인 듯 보였다. 

미스 포츈의 부하나 번의 오랜 해적단 친구들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은 번의 예전 선원이거나 갱플랭크를 무너뜨린 여자의 얼굴을 보러 온 호기심 많은 구경꾼인 듯했다.


번은 한때 자기 배가 있었다고 했다. 한때 쌍돛대 범선을 몰고 녹서스 해안을 공포로 몰아넣었다고. 미스 포츈은 그저 허풍이려니 했다. 그게 진짜이건 

아니건, 빌지워터는 뱃놈들의 무용담보다 더 믿기 어려운 일들이 흔하게 일어나는 곳이긴 했다.


“학살의 부두에서도 놈들끼리 싸우게 한 걸 봤어.” 미스 포츈은 옷깃에 쌓인 재를 털어냈다. 길고 붉은 머리카락이 삼각모자 아래로 흘러내리더니 긴 예복 외투 어깨에 내려앉았다.


“네, 쥐구멍의 개들이 부두 지배자단이랑 싸우게 만드는 건 별로 어렵진 않았습니다. 밴 갤러 녀석, 항상 그 구역을 노리고 있었으니까요. 10년 전에 자기 아버지한테서 트레이빈네 부하들이 뺏어 갔다고 이를 갈고 있었죠.”


“그게 정말이야?”


“아무도 모르죠. 그게 중요한가요? 갤러라면 그 구역을 손에 넣으려고 무슨 거짓말이라도 만들어 냈겠죠. 전 그냥 약간 도와준 것뿐입니다.”


“거긴 지금은 별로 손에 넣을 것도 없겠지.”


“그렇습니다.” 레이픈이 씩 웃었다. “서로 아주 몰살시켜 버려서 양쪽 모두 한동안은 조용할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한 주만 더 지나면 갱플랭크의 부하는 하나도 남지 않겠지.”


레이픈은 그녀를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지만 미스 포츈은 모른 척했다.


“자, 이제 번을 보내주자고.”


두 사람은 대포를 바닷속으로 굴려 넣으려 다가갔다. 오물이 떠다니는 수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나무 표식들이 점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평범한 나무 원반에서 정교한 바다 괴수 조각까지 각양각색이었다.


“누구 할 말 있는 사람 있어?” 미스 포츈이 물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자 그녀는 레이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포를 바닷속으로 밀어 넣으려는 찰나, 갑자기 선착장에 고압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할 말이 있네.”


미스 포츈이 고개를 돌리자 색색의 예복과 기다란 천을 걸친 거구의 한 여인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신을 새긴 사내 무리가 여인을 뒤따랐다. 열 명 남짓의 사내들은 톱니 창과 총구가 넓은 권총, 구부러진 몽둥이로 무장한 채였다. 그들은 마치 선착장이 자기네 구역인 양, 그 여 사제 

옆에 거들먹거리며 섰다.


“젠장, 저 여자 여기는 왜 온 거야?”


“일라오이가 번이랑 아는 사인가요?”


“아냐. 나를 알지. 갱플랭크랑 한 때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고 들었어.”


“정말입니까?”


“소문이 그래.”


“오카오네 애들이 요 몇 주간 왜 그렇게 걸리적거렸는지 알 것 같네요.”


일라오이가 손에 든 돌로 된 둥근 성상은 사이렌호의 닻만큼 무거워 보였다. 하늘을 찌를 듯 큰 키를 자랑하는 이 여 사제는 어딜 가든 그 성상을 지니고 다녔다. 토착 신앙의 상징쯤 되는가 보다 하고 미스 포츈은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여왕 바다뱀이라고 부르는 존재를 그들은 발음하기 어려운 이상한 이름으로 불렀다.


일라오이가 어디선가 껍질을 벗긴 망고를 꺼내 들더니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을 벌리고 망고를 요란스럽게 씹으면서 그녀는 대포를 내려다보았다.


“빌지워터 사람이라면 나가카보로스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지. 안 그런가?”


“당연하죠.” 미스 포츈이 대답했다. “어차피 지금 막 그분한테 가는 길인 걸요.”


“나가카보로스님은 바다 밑바닥에 사시는 게 아니야. 아둔한 이방인들이나 그렇게 착각하지. 나가카보로스님은 우리의 삶을 이끄는 모든 것에 깃들어 

계신다.”


“그렇군요. 제가 멍청했네요.”


일라오이는 우둘투둘한 망고 씨를 바다에 뱉더니 구체를 거대한 대포알이라도 되는 양 미스 포츈의 눈앞에서 흔들어 댔다.


“사라, 자넨 멍청하지 않아.” 일라오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누군지,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모르긴 하지만.”


“여기엔 왜 오신 거죠? 그자 때문인가요?”


“하! 눈곱만큼도 아닐세.” 일라오이가 코웃음 쳤다. “나는 오로지 나가카보로스님만을 위해 살아가니까. 고작 사내 하나가 신에 비할 대상이나 되는가?”


“맞는 말씀이시네요. 갱플랭크만 안됐군요.”


일라오이는 입꼬리를 길게 끌어올려 웃었다. 씹고 있던 망고가 그대로 보였다.


“자넨 틀리지 않았어.” 일라오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귀 기울이지 않고 있군. 칼날 장어를 풀어준 셈이야. 녀석의 날카로운 이빨에 물어 뜯기기 전에 목을 짓밟고 물러나야 해. 한 번 물리면 영원히 옴짝달싹 못 하게 될 게야.”


“무슨 뜻이죠?”


“무슨 뜻인지 스스로 알게 되면 나를 찾아오게.” 일라오이는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에는 가운데 부릅뜬 눈처럼 생긴 장식 주변으로 분홍 산호 줄기가 구불구불 퍼져 나오는 모양의 펜던트가 놓여 있었다.


“받게.”


“이게 뭐죠?”


“자네가 길을 잃었을 때 나가카보로스님이 이끌어 주실 게야.”


“그래서 이게 대체 뭐죠?”


“방금 한 말 그대로라네.”


내키진 않았지만 여왕 바다뱀의 사제가 주는 선물을 거절해서 모욕을 주기엔 바라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녀는 펜던트를 받아 들고 모자를 벗었다.


펜던트의 가죽끈을 목에 매는 미스 포츈에게 일라오이가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난 자네가 멍청하지 않다고 보네. 기대를 저버리지 말게.”


“당신이 뭘 기대하든 알게 뭐죠?”


“폭풍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지.” 일라오이는 미스 포츈의 어깨너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그러니 싸울 채비를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녀는 몸을 돌려 번의 시신을 넣은 대포를 발로 찼다. 첨벙 소리와 함께 대포는 물속으로 떨어졌고 거품을 내며 가라앉는 것도 잠시, 수면은 다시 기름 낀 찌꺼기로 덮이기 시작했고 표식만 둥둥 떠다니며 무덤의 주인을 알렸다.


여왕 바다뱀의 사제는 절벽 분화구의 신전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미스 포츈은 바다 저 멀리를 응시했다.


먼바다에서 서서히 폭풍우가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일라오이가 바라보던 곳은 거기가 아니었다.


그녀의 눈은 그림자 군도를 향하고 있었다.


밤에는 그 누구도 빌지워터 만에서 고기를 잡지 않는다.


왜 그런지, 피트는 물론 잘 알고 있었다. 평생을 함께해 온 바다였으니까. 이곳의 물살은 변덕스러웠으며 단번에 배를 두 동강 낼 암초들이 수면 아래 도사리고 있었고, 밑바닥에는 선장이 바다에 제대로 예를 갖추지 않아 난파된 배들의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 게다가 바다에 빠져 죽은 귀신들이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저승길 동무를 만들려 안달이란 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


피트도 물론 잘 알고 있었지만 가족이 굶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갱플랭크와 미스 포츈의 싸움에 얽혀 제레마이아드 선장의 배도 다 타버렸기 때문에 피트는 일자리를 잃었고 식구들 먹일 돈도 한 푼 없는 상태였다.


그는 바위게 사과주 반병을 마시곤 용기를 짜내어 밤바다로 배를 밀었다. 나중에 그 기골 장대한 프렐요드 사내랑 술을 나눠 마실 생각을 하니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그는 사과주를 한 모금 더 들이키고 텁수룩한 턱수염을 잡아당기더니 뱃전으로 사과주를 콸콸 부어 여왕 바다뱀에게 예를 표했다.


술기운에 감각이 둔해지고 몸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며 피트는 위험 구역을 알리는 부표와 죽은 새들 너머로 노를 저어 어젯밤 재미를 봤던 곳으로 나아갔다. 제레마이아드 선장은 항상 피트가 물고기 냄새를 맡을 줄 안다고 말했었다. 그는 데드 풀 호의 잔해가 떠내려온 곳에 고기 떼가 모여들 거란 예감이 

들었다.


피트는 노를 배 안으로 끌어당겨 놓고 사과주를 한 모금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모금쯤 남은 병을 바다에 휙 던졌다. 그리곤 지치고 술에 절은 손길로 어떤 시체에서 파낸 애벌레를 바늘에 끼우고 뱃전에 걸린 막대에 실을 매었다.


그는 눈을 감고 배 가장자리로 몸을 구부려 양손을 물속에 담갔다.


“나가카보로스님.” 피트는 여왕 바다뱀을 토착민들이 부르는 대로 부르면 조금이나마 은총을 내려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전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요. 이 불쌍한 어부를 부디 도와주시어 여왕님의 저장고에서 먹을 걸 아주 조금만이라도 나눠주십쇼. 저를 지켜주고 보살펴 주십쇼. 그리고 제가 여왕님의 품속에서 죽는다면 저 아래 망자들과 함께 거두어 주십쇼.”


피트가 눈을 떴다.


창백한 얼굴 하나가 수면 아래에서 일렁이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서는 죽음같이 싸늘한 불빛이 일렁였다.


피트는 비명을 지르며 후다닥 배 안으로 몸을 끌어당겼다. 이내 낚싯줄이 하나씩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배가 빙빙 돌기 시작하더니, 물속에서 아지랑이처럼 안개가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안개는 두꺼워지고 석탄처럼 검은 안개가 바다 저 멀리에서 밀려오면서 빌지워터 절벽에서 나오던 불빛이 모두 

사라졌다.


부표에 매달린 죽은 새들이 귀를 찢을 듯 까악까악 울었고, 그 몸뚱이들이 덜덜 떨면서 부표에 매달린 종이 울려댔다.


검은 안개…


피트는 공포에 사로잡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노를 집어 노 걸이에 끼우려 애를 썼다. 안개는 온 감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차가웠고 안개가 닿을 때마다 

피트의 피부에는 죽음이 스쳐간 자국이 검게 남았다. 그는 무덤가의 냉기가 등골을 타고 오르는 걸 느끼며 흐느꼈다.


“여왕 바다뱀님, 깊은 바다의 어머니, 나가카보로스님.” 그가 흐느끼며 말했다. “제발 저를 집으로 돌려보내 주십쇼. 제발… 이렇게 간청…”


피트는 기도를 끝내지 못했다.


둔중한 파열음과 함께 배 바닥에서 갈고리 달린 쇠사슬들이 솟아올랐다. 갈고리는 피트의 살갗을 파고들었고, 사슬이 그 몸을 결박해 밑으로 강하게 끌어당겨 바닥에 고정해 버렸다. 피가 사방에 홍건했다.


피트가 온몸을 쥐어짜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자 검은 안갯속에서 순수한 악의의 화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메랄드빛으로 타오르는 불꽃 속에 뿔 달린 

해골이 웃고 있는데, 눈구멍 자리에서는 악의에 가득찬 영혼이 피트의 고통을 음미하며 타오르고 있었다.


그 죽음의 악령은 허리춤에 녹슨 열쇠가 매달린 고대의 검은 제의를 걸치고 있었다. 한 손에 꽉 쥔 쇠사슬 끝엔 묘지에서 쓰는 랜턴이 굶주린 괴물처럼 

기괴한 신음 소리를 내며 매달려 있었다.


피트는 아직 식지도 않은 자신의 육체에서 영혼이 떨어져 나가는 감각을 느꼈다. 동시에 랜턴 뚜껑이 그를 향해 지옥문처럼 열렸다. 랜턴 안에 갇힌 채 영원한 고통에 시달리는 영혼들이 질러대는 분노에 찬 비명이 귓전을 때렸다. 피트는 영혼을 붙들려 애썼지만 갈고리가 낫질하듯 바람을 갈랐고, 랜턴이 

닫혔다. 그렇게 피트는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가엾은 영혼…” 피트의 목숨을 거두어간 자가 입을 열었다. 비석에 자갈이 부딪히는 듯 둔탁한 목소리였다. “오늘 밤 이 쓰레쉬의 손에 떨어진 첫 번째 

영혼일 뿐이지.”


검은 안개가 물결처럼 일렁였다. 그 속에 사악한 악령들과 절규하는 망령, 유령 기사의 실루엣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둠이 바다를 가로질러 육지까지 몰려왔다.


이윽고 빌지워터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출처 : 리그 오브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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