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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NG/LOL

[LOL 단편소설] 신들의 황혼

by Captain Jack 2018. 12. 12.

  

[LOL 단편소설]

  

   

신들의 황혼

  

 

    



들은 어둠을 틈타 산그늘에 가려진 죽은 도시로 향했다. 전사 천 명에 달하는 신성군단들은 각각 핏빛 토템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을 이끄는 태양의 자손인 초월체의 고대 혈통을 나타내는 토템이었다.


도시와 그곳에 거주했던 시민들의 유골은 이미 사막과 하나가 된 지 오래였다. 모래와 뒤섞인 잿더미와 뼛조각을 구분하는 건 불가능했다. 도시에서 가장 높았던 탑만이 모래 언덕 위에서 자리를 지켰다. 무너진 첨탑은 산 너머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구슬프게 웅웅거렸고, 무너진 주춧돌 위로는 몸통이 부서진 석상의 다리 두 개가 보였다. 그 옆에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은 새 석상의 머리가 모래 속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아주 오래전, 훗날 이 도시가 세워지기도 전, 이 계곡에서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슈리마의 시작이라고 역사에 기록된 사건이었다.


그리고 사건은 그 끝을 향해 흘러갔다.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군단을 이끌고 폐허가 된 도시로 향하고 있는 신성전사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들의 황제가 배신당했을 때 도시의 백성들을 베어 버린 바로 그 신성전사들이었다. 백성들이 죽어가는 동안 이들은 도시를 불태우고, 쓰러지지 않은 비석과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도시의 이름을 모두 지워 버렸다.


그들의 말살 행위에는 헛된 분노 말고 다른 이유는 없었다.


헛되었던 건 이 도시에서 노예로 거두어졌던 아이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고 그 아이의 출생을 기억하는 일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노예 소년은 제국을 무너뜨렸고, 그들의 형제애를 산산이 부숴 버렸다.


그것이 신성전사들로 하여금 네리마제스와 그곳의 백성들을 잿더미로 만들게 한 이유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황금 두루마리도 그 빛을 잃기 마련이다.


우리와 다를 바 없군. 타아나리는 발톱으로 북부의 카즈훈에 새로 건설된 무역항에서 보낸 공물 이름과 수량이 꼼꼼하게 새겨진 목록을 훑어내리며 생각했다.


새로 건설되었다고...?


카즈훈은 인간들이 수백 년 동안 거주해 온 도시였다. 그들의 미개한 언어는 그곳의 이름을 익숙하지 않은, 천한 이름으로 변질시켰다. 대학자에게는 이 두루마리에 담긴 내용이 흥미로울지 몰라도 타아나리에게는 세상이 이치에 맞던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연결 고리에 불과했다.


이 방은 한때 온갖 기록으로 가득했다. 황제에게 바치는 찬사나, 그가 일으킨 전쟁과 그의 기나긴 업적이 기록된 두루마리가 대리석 벽을 따라 쌓여 있었다. 원래는 텅 빈 장소였지만 수백 년 전에 지붕이 무너진 이후로 모래가 이 지하 공간의 대부분을 채웠다.


공기가 바뀐 것을 느낀 타아나리는 두루마리에서 고개를 들었다.


입구에 마이샤가 서 있었다. 입구 크기 때문에 평소보다 작아 보였다. 새카만 털로 뒤덮인 타아나리의 정수리가 천장 대들보에 닿을 정도였지만, 그는 반듯이 서 있을 수 있었다. 타아나리는 자신보다 가냘프고, 심지어 깨질 것처럼 연약해 보이는 마이샤에게서 자신조차 완전히 갖지 못한 깊이를 느꼈다. 추운 북부 지방 인간들의 금빛 머리카락이 그녀의 어깨 위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다. 겉모습은 어려 보였지만 한쪽은 짙은 푸른빛, 다른 쪽은 해질녘의 자줏빛으로 물든 그녀의 두 눈동자에서 나이를 뛰어넘는 지혜가 엿보였다. 사막과 어울리지 않는 화려하고 얇은 비단 옷을 입은 그녀의 허리에는 금색 열쇠 한 개가 달린 가느다란 밧줄이 묶여 있었다. 마이샤는 목에 두른 밝은 분홍빛 스카프 끝에 달린 술을 손가락으로 휘감으며 말했다.


"그들이 도착했어요."


"몇 명이나?"


"신성군단 아홉. 전사 만 명 정도요."


타아나리는 누렇게 변한 송곳니를 혀로 핥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보다 많이 왔군."


마이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모두 와야죠."


타아나리는 말을 이었다. "수백 년 동안 너무 많은 피를 흘렸어. 너무 많은 증오가 싹텄고. 대부분 우리에게 평화가 올 수 있다는 생각조차 용납하지 않을 거야."


마이샤는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전쟁에서 이미 너무나 많은 이들이 죽었어요. 게다가 당신 손에 목숨을 잃은 당신 동족이 공허에 죽은 자보다 많고요."


그녀의 건방진 어조를 질책하려던 타아나리의 말은 혀끝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어쨌든 그녀의 말은 옳았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타아나리가 동족을 불러 모은 이유였을 것이다.


"아지르 황제가 서거하던 순간 태양의 자손들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지." 타아나리는 읽고 있던 고대사 두루마리를 한쪽으로 치우며 말했다. "황제가 없는 상황에서 동족의 야망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원대했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 많은 예지가 있었지만 우리는 그걸 실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상태였어."


"그렇다면 결국 당신들도 필멸자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네요."


예전의 타아나리라면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자를 죽였을 것이다. 수백 년에 걸친 전쟁과 그들이 일으켰던 엄청난 규모의 학살이 그 증거였다.


마이샤가 그의 밑으로 들어왔을 때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필멸자들의 삶은 너무 짧아서 하나가 죽고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운다고 해도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마이샤는 다른 이들보다 더 그의 관심을 끌었다. 반항적이고 건방진 태도 역시 이유 중 하나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녀는 필멸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타아나리와 그의 동족이 더 큰 힘을 손에 넣기 위해 인간성을 버린 이후로 잃어버린 능력이었다.


타아나리가 인간이었던 시절은 먼 과거의 일이었다. 필멸자의 기분이라든가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야속함 같은 감정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고대의 마법과 태양 원판의 힘으로 조악한 인간의 몸에서 신적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완전하지 못하고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고 해도 신은 신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전쟁을 거듭하면서 청동 갑옷을 두른 타아나리의 표범 같은 형상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지만, 여전히 위엄있는 모습이었다. 상체의 털은 한때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이었으나 입가와 팔다리에는 군데군데 회색이 섞여 있었다. 그는 최선을 다해 그의 모습을 재구성했었다. 한때 눈빛만으로도 전군을 공포에 떨게 했지만, 지금은 흉터가 난 한쪽 눈에는 금이 간 루비가 대신 자리했고 다른 쪽 호박색으로 길게 뻗은 눈은 절망의 기운만을 풍겼다. 그의 척추는 칼리크 강 전투에서 도끼에 맞은 이후로 휜 상태였다. 너무 강력한 일격이라 그의 불같은 재생력조차도 상처를 완전히 회복시킬 수 없었다.


타아나리는 탁자 위에 놓인 무기를 집어 들었다. 네 개의 날이 달린 명검 '샬리카'였다. 날카로운 날들이 만들어내는 완벽한 균형은 아름다웠지만, 무기에 실린 책임감의 무게는 그 이상이었다. 한숨을 내쉰 그는 어깨 띠에 검을 매곤 절뚝거리며 마이샤에게 다가갔다.


세월의 흐름과 오래전에 입은 상처로 등이 굽었지만, 타아나리는 마이샤보다 훨씬 키가 컸다. 필멸자들이 다른 이름, 더 '어두운' 이름으로 불렀던 태양의 자손들이 벌인 전쟁은 마이샤의 동족에게 지독한 상처를 남겼음에도 그녀는 타아나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가끔, 타아나리는 마이샤가 보내는 연민의 눈길을 느꼈다.


어떤 때는 죄책감이 들게 하는 경멸의 눈길이었다.


마이샤의 작고 매끈한 손이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거대한 타아나리의 주먹을 감쌌다. "당신은 여전히 신성전사예요, 타아나리." 마이샤가 말했다. "그들에게 신성전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면... 그러면 설득할 수 있을 거예요."


"설득하지 못하면?"


그녀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간단하죠. 다 죽이면 되잖아요."


타아나리를 섬기는 생명의 그릇들이 모래에 파묻힌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한때는 여왕이었거나 필멸자들의 왕국을 통치했던 지배자들이었지만, 그가 이끄는 무적의 군대 앞에서는 충성을 바치겠노라고 서약할 수밖에 없었다.


신성전사의 손에 죽는 것보다는 신성전사와 함께 싸우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타아나리가 다가오는 것을 본 투쉬파는 머리를 숙였다. 문신이 새겨진 그녀의 근육질 팔뚝을 비취 고리가 감싸고 있었다. 저항적이지만 동시에 충성스럽기도 한 그녀는 가문의 마지막 자손이었다. 설패는 사막 태생으로, 그녀의 혈통은 아지르의 부왕이 통치하기 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아나리를 본 설패는 긴 창으로 땅을 쿵 찍었다. 머리카락 한 올 없이 밀어 버린 정수리에는 격자 모양의 자국이 나 있었고 선이 교차하는 지점마다 금구슬이 박혀 있었다.


자존심 강하고 건장한 이드리-미는 자루가 긴 도끼를 어깨에 걸머지고 있었다. 양쪽이 대칭을 이루는 도끼날은 대부분의 남자들조차 들어 올리지도 못할 정도로 무거웠다. 이드리-미는 동쪽의 여왕으로, 그녀의 모친과 조모 역시 타아나리를 위해 싸웠다. 그녀의 창백한 피부는 상앗빛을 띠었고, 검은색 긴 머리는 은색 고리로 장식되어 있었다.


타아나리는 세 여전사들 앞에 섰다.


그녀들은 타아나리의 호위무사가 아니었다. 타아나리는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로부터 보호받을 필요가 없었다. 단지 자신의 목숨을 원하는 오만한 전사들을 굴복시키겠다는 그의 뜻을 상징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긴 해도 그녀들은 실제로 타아나리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된 전사였다.


타락한 형제애로 이어진 타아나리의 형제자매들도 각자 생명의 그릇들을 데려왔겠지만, 타아나리의 전사들보다 뛰어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타아나리가 말하는 동안 누구도 그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신성전사와 눈이 마주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나는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생명의 그릇들을 봐 왔지만, 그대들이 내 마지막이 될 것이다." 타아나리가 말했다. 그는 반응을 살폈지만 수년에 걸친 주종 관계는 미약한 감정조차 사라지게 한 듯, 그녀들은 죽은 도시의 폐허에 남겨진 무너진 조각상만큼이나 무표정했다. "너희들의 충성심은 알고 있지만, 동시에 내가 죽길 바라겠지. 자네들의 눈에 비친 집념을 보면 확신할 수 있다. 마이샤가 만든 영약의 힘이 사라지면 날 괴롭히는 악몽처럼 지독한 집념."


투쉬파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빛났던 걸까? 과거의 타아나리였다면 한순간의 흐트러짐만으로도 그녀를 처형했겠지만, 살육에 대한 욕구도 수백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해졌다.


"그럴 만도 하겠지." 타아나리는 말을 이었다. "내 동족이 죽음과 공포 외에 그대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한 세기 전, 태양의 자손들은 끔찍한 대가를 치르고 이 세계를 '지켜'냈지만, 결국 세계를 파멸의 문턱으로 이끌고 말았다. 초월체들의 영광스럽던 나날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고 우리가 벌인 전쟁의 어둠 속에서 빛을 잃었지. 필멸자인 그대들의 덧없는 기억 역시 마찬가지고."


그와 그의 동족이 자초한 일이라는 사실 때문에 타아나리의 마지막 말에는 쓰라림이 배어있었다. 지나친 자만심, 전쟁으로 인한 상처, 고대부터 이어진 불화가 벼려져 만들어 낸 검은 그들에게 부여된 의무의 사슬을 끊어 버렸다.


타아나리는 떨리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순간을 향해 싸워 왔다. 이제 때가 되었고 죽음은 두려워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밤에 살아남는 자들은 자유의 몸으로 새벽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해가 뜨면 각자의 동족에게 돌아가 이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전하도록 해라." 타아나리는 돌아섰다. "마이샤, 준비되었나?"


"모두 원형 경기장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타아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끝내러 가지."


그곳은 원래 원형 경기장으로 설계된 공간이 아니었다. 타아나리의 노예들이 사막에서 과거 네리마제스의 시장터를 발굴했고, 그가 마법으로 뿜어낸 열이 모래를 유리질로 만들었다. 분화구 형태의 유리 경기장은 잿빛과 청록빛, 신비한 무지갯빛을 띠었고 부드러운 달빛이 표면에 내려앉으면 너울거리는 은빛 장막이 반사되었다.


타아나리는 파도가 솟구치는 순간을 얼린 것 같은 곡선 모양의 아치를 통해 입장했다. 긴장감이 공기를 무겁게 했다. 신들이 군단을 불러모을 때 감도는 기운이었다.


만 명의 남녀가 원형 경기장의 층계식 단을 가득 채웠고, 신성전사들의 투사들은 그 아래 늘어섰다. 누구도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 모두 주군의 명령만 떨어지면 학살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타아나리는 그의 동족인 태양의 자손들을 둘러보았다. 한때 절대 깨지지 않는 애정과 의무로 이어져 있던 형제자매들의 유대는 금세 모래처럼 허물어졌다. 상상할 수 없는 미지의 힘이 그들의 육신에 작용하여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방법으로 그들을 몸을 빚어내었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은 아직 필멸자와 다름없지. 놀라울 정도로 나약하기도 하고. 타아나리는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사이팍스는 그를 이해한다는 눈빛을 전했다. 지간투스는 혐오감을 내비쳤고 슈얀은 노골적인 경멸을 보냈다. 칼리크 전투에서 타아나리를 불구로 만든 것은 슈얀의 도끼였다. 거북머리 형상의 신성전사, 슈얀은 타아나리가 절뚝거리며 원형 경기장의 중앙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곤 땅에 침을 뱉었다.


까마귀 깃털을 두른 예언자 쌍둥이 샤바카와 샤바케는 세공된 뼛조각으로 점을 치는 데 몰두하여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발리바는 그녀의 형제가 항상 그랬듯 경멸의 눈빛으로 타아나리를 쏘아보았다. 타아나리는 그 형제가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늑대 세보타루는 이 비밀회담이 빨리 끝나기를 안달하며 왔다 갔다 했다. 그의 신성군단은 먼 북부에 이어 서쪽 바다 건너편의 땅을 파괴했다. 세보타루는 동족 중 가장 먼저 피의 교착 상태를 끝낼 수 있던 자였다.


주레타의 나가네카는 꽈리를 튼 몸에 긴 로브를 걸치고 후드를 눌러쓴 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독에 중독되어 시력을 잃은 생명의 그릇들은 그녀가 친히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을 언제든 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들 중 오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녀의 쉿쉿거리는 속삭임을 들어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에나카이만이 경의를 표했다. 피부에 강렬한 주황색과 검은색 줄무늬를 새로 새긴 그가 앞으로 나왔고, 타아나리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에나카이의 모습에서 세월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의 힘과 긍지, 또렷한 눈동자는 전쟁으로 보낸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었다. 먼 옛날 그들은 함께 황금 계단을 올라 태양 원판 앞에 나란히 섰다. 두 손을 마주 잡자 원판의 작열하는 빛이 그들에게 천계의 힘을 불어넣었다. 에나카이는 이케시아 전투에서 후퇴할 때 부상당한 타아나리를 후송했고, 칼리크의 진창에서 형제로서 함께 싸웠으며 빙하 항구에서는 적으로 만났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운명의 수레바퀴는 몇 번이고 굴러가리라...


에나카이는 타아나리의 손을 감쌌다. "타아나리."


"에나카이."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서로를 부르는 이름에는 평생에 걸친 경험과 기쁨, 상실, 고뇌가 담겨 있었다. 그들은 신이 된 존재였다. 사소한 말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타아나리의 등에 걸린 무기를 본 에나카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입을 열려고 하자 타아나리가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길 바라네." 에나카이는 나직하게 말한 후 원형 경기장 끝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타아나리는 숨을 들이쉬었다. 수년간 이 순간을 준비해 왔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날 수 있었다. 그의 동족들은 신성전사였다. 그에 걸맞게 오만하기 그지없었으며 성질이 급했다.


"형제자매들이여." 마법에 실린 첫 마디가 원형 경기장에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파르네사의 벽 앞에 천 명이 모인 이후로 태양의 자손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건 처음이군."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선명한 기억이 그들의 영혼 속에 있던 과거의 희미한 불씨를 건드린 것이다.


이렇게 시작하면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하듯이 하면 된다...


"내 앞에 권능이 보인다."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단어 하나하나에 힘주어 말했다. "한때 필멸자였던 신들이 보인다. 고귀하고 위대하며 경외스러운 존재들이. 어떤 자들은 우리의 오랜 형제애가 분열됐다고 한다. 그들은 고대의 언어로 우리를 '다르킨'이라 부르고 있지만, 이렇게 모인 걸 보니 그들이 틀린 것 같군."


동족을 향한 찬양에 모두가 젖어 들도록 타아나리는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대부분에게는 별 감흥이 없을 터였다. 고통받는 백성들이 밤낮으로 찬양의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형벌에 처했다.


하지만 나머지의 동조를 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세타카가 신성군단을 이끌고 제국의 권세를 세상 끝까지 떨쳤을 때, 모두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행진했던 때를 기억할 것이다. 나 또한!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영광의 시대이자, 영웅들의 시대였다! 세보타루, 우린 황혼의 용을 타고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을 올랐고, 모든 시간이 하나가 된 그곳에서 우주의 창조를 직접 목격했다."


그는 돌아서서 사이팍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사이팍스, 내 형제여. 우린 동부 해안의 균열에서 쏟아져 나오는 심해의 괴물들에 맞서 함께 싸웠다. 열흘 밤낮을 싸우는 동안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렸지만, 결국 우린 놈들을 물리치고 승리했다!"


사이팍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타아나리는 그 전쟁에 대한 기억이 비늘로 덮인 사이팍스의 피부에 보라색과 검은색, 빨간색의 물결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그때 일은 말하고 싶지 않군." 사이팍스가 여러 개의 눈을 감고 말했다. "슈리마의 황금 전사 칠천 명이 그 붉은 해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살아 돌아온 건 우리 둘뿐이었지."


"그래. 우린 승리를 위해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했지. 육체적으로도,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하지만 얼마나 위대한 싸움이었는가! 필멸자들도 그날의 전투를 기리며 그 해안의 이름을 다시 지었다네."


사이팍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날 본 끔찍한 광경은 모두 잊었나 보군, 타아나리. 계속 영광에 대해 떠들어 보게. 난 듣지 않을 테니. 눈을 감으면 여전히 그날 죽은 이들의 비명이 들리고 심지어 그것들이 그들의 영혼까지 집어삼키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네. 네 찬란했던 과거에 나는 없었어. 내겐 그런 기억이 없어."


"그래, 끔찍한 전투였지. 내가 과거를 미화한다고 볼 수 있겠군." 타아나리가 말했다. "하지만 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알고, 또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라네. 위대한 영웅으로서, 우린 무적의 군대를 앞세워 세계를 평정했고 불멸의 황제에게 지휘를 받아—"


"하지만 아지르는 죽었어." 슈얀이 유리 바닥에 금이 갈 정도로 거대한 장도끼를 내려놓으며 끼어들었다. "황제가 죽고 지도자가 없으니 태양의 자손들이 전쟁을 일으켰지. 먼지와 잿더미 속으로 사라진 그 과거는 이젠 아무 의미가 없어. 그때의 영광을 되새기는 걸로 이 싸움이 끝날 거라 생각했다면 우리 중 가장 미친 신은 네 놈이겠군."


타아나리가 말했다. "과거를 되새기자고 모두 이곳에 부른 것만은 아니야."


"그럼 목적을 말해. 아니면 다시 피를 보든지."


타아나리는 몸을 곧게 세우려 했지만, 뒤틀린 등뼈가 휜 나뭇가지처럼 삐걱거려 주춤했다. 공허의 공포가 할퀴는 듯한 고통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그날 입은 상처 때문이지, 슈얀." 타아나리가 말했다. "전혀 낫질 않더군. 칼리크 전투, 기억하나?"


"물론이지. 불구가 되어 버렸군." 슈얀이 증오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난 위대한 태양 원판의 빛을 받은 순간부터 내가 참전한 모든 전투를 기억하지. 한때 형제자매였던 이들의 배신이나 위대한 업적은 여기 모인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야."


"우리가 한때 이케시아였던 곳에서 함께 전선을 지켰을 때 자네가 내 목숨을 여러 번 구했잖나."


"이미 지나간 일이야." 세보타루가 끼어들었다. 그의 턱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발음이 부정확했다. "과거는 과거에 묻어야 해."


"어째서지?" 타아나리가 벌컥 화를 내며 물었다. "왜 과거를 과거에 묻어 둬야 하지? 우린 슈리마의 초월체가 아닌가! 우린 단순한 화신이 아니라 신이라고! 신! 지금 우리의 현실과 우리가 결정한 미래가 어떻지? 우리 중 누구라도 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만, 다들 하찮은 다툼과 더 이상 아무런 의미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네. 심지어 전쟁의 이유를 아는 자도 거의 없는데도 말이야."


그는 자신도 모르게 격양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지간투스, 폐허가 된 왕국을 재건해 아지르의 유지를 이어야 한다고 했지. 에나카이는 새로운 왕국을 세우려고 했고. 발리바, 너와 네 형제는 모두의 눈에서 증오를 보고 모욕에 대한 복수를 원했지. 그게 사실이든 상상이든."


"아니, 사실이었어." 반박하는 발리바의 매끄럽고 흰 피부에는 보랏빛 핏줄이 비쳤고, 어깨에는 독가시가 돋아 있었다.


타아나리는 그녀를 무시했다. "우린 각자 서로 다른 미래를 생각했다. 하지만 태양의 자손이 가진 힘을 합쳐 신성한 과업을 이루는 대신,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들처럼 서로를 물어뜯고 싸웠지. 그렇다. 세타카는 오래전에 죽었고, 다신 볼 수 없게 됐다. 그래, 황제도 배신당했지. 제국은 폐허가 돼버렸고, 백성들은 겁에 질려 흩어졌다. 슈리마의 재건을 이끌 위대한 지도자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남은 우린 심연을 오랫동안 바라본 나머지 그 공포로 미쳐 자멸해 버린 괴물이 되고 말았어."


"결국 재건 대신 남은 세상을 파괴하며 멸망한 제국의 잔재를 위해 싸웠다. 이대로라면 공동의 목적을 찾긴커녕 모든 것이 멸망하게 될 판이지. 우리 각자는 강력한 존재다. 하지만 함께라면...? 우리가 하지 못할 일은 단언컨대, 아무것도 없다. 우리만 원했다면 천계의 관문을 통해 이 잿빛 세계를 떠나 천상에 새로운 제국을 세울 수도 있었어!"


회한에 찬 타아나리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유례없이 지속된 오랜 전쟁에서 서로를 죽이며, 오히려 미천한 존재들과 다를 바 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


그의 목소리가 다시 커져 원형 경기장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하지만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


타아나리가 어깨 뒤로 손을 뻗어 샬리카를 풀었다. 고대의 무기, 샬리카를 본 이들이 충격에 휩싸여 수군거리는 소리가 원형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다들 기억하고 있겠지." 타아나리가 말을 이었다. "우리 중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세타카의 무기다. 산 너머에서 가져와 슈리마가 탄생한 날에 높이 들어 올려진 검. 언젠가 비를 부르는 자인 시부나스 알라하이르가 지닐 검이기도 하다. 그 손에서 파괴의 무기가 될 수도, 화합의 상징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샬리카를 들어 동족들에게 보였다. 금빛으로 빛나는 칼날은 이 세계가 아닌, 슈리마에서 가장 현명한 자도 이해하지 못한 우주의 힘으로 빚어진 것이었다. 동족들의 얼굴에서 존경심과 경외, 자긍심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중 대부분은 소유욕이었다. 그때 누군가 그를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뻔하군. 당연히 슈얀이지.


슈얀이 도끼를 빙빙 돌렸다. 타아나리는 슈얀의 흑요석 도끼날이 갑옷을 가르고 척추를 산산조각 냈을 때의 고통을 떠올렸다.


"널 해치우고 샬리카를 가져가겠다." 슈얀이 돌출된 입을 크게 벌려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우두머리가 되는 건가?" 그의 어깨 위로 튀어나온 딱딱한 갑각에는 뾰족한 가시와 칼날이 박혀 있었다. 전성기의 타아나리라도 그를 이기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칼리크 전투는 수 세기 전 일이었다. 타아나리는 그 이후 새로운 능력을 터득했다.


"그걸로 싸울 텐가?" 슈얀이 도끼로 샬리카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니." 타아나리가 돌아서 마이샤에게 샬리카를 건넸다.


샬리카는 마이샤가 들기 버거운 무게였지만, 마이샤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타아나리는 그녀의 기분이 금세 또 즐거워진 것을 눈치챘다. 곧 신들의 싸움을 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 듯했다.


슈얀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럼 뭐지? 맨손으로 날 상대하겠다고? 동족들 앞에서 죽고 싶은 게로군."


"그것도 아니야."


"네 이유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 슈얀이 말했다. "칼리크 전투의 승부를 여기서 내도록 하지."


슈얀은 마치 산사태가 몰아치듯 타아나리를 향해 돌격했다. 피할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번개가 우르릉거리며 사정없이 내리치는 것 같았다. 타아나리는 슈얀의 돌격으로 부대 전체가 괴멸되고 거인들이 쓰러지며 요새 입구가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타아나리는 한쪽 무릎을 꿇고 원형 경기장의 유리 바닥에 손바닥을 대었다. 바닥에 마법의 기류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바닥 위의 모든 생명체가 황금빛 힘의 줄기로 연결되었다. 필멸자들은 불에서 튀어 오르는 작은 불똥 같았지만, 신성전사들은 마법의 힘이 소용돌이치는 갓 태어난 태양처럼 보였다.


그는 마이샤가 가르쳐 준 대로 동족의 힘을 흡수했다. 샤바카와 샤바케의 저주가 깃든 예지력을 받아들이자, 몸 안에서 생전 처음 느끼는 감각이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다. 사이팍스가 가진 도마뱀의 민첩함이 쇠약해진 육체 속으로 밀려들었다. 지간투스의 분노와 에나카이의 의로운 정신도 함께였다.


타아나리는 눈을 감았다. 슈얀이 어디에서 공격해 올지 아는 듯 했다.


한쪽으로 몸을 기울이자, 도끼날이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목을 스쳐 지나갔다. 슈얀의 움직임은 마치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타아나리가 재빨리 몸을 돌려 슈얀의 갑각에 달린 구부러진 뿔을 잡아채고 등에 올라타자 슈얀이 분노로 포효했다.


슈얀이 타아나리를 떼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돌렸지만, 잡은 손아귀 힘이 너무 셌다. 타아나리는 예언자 쌍둥이의 무의식적인 능력으로 격렬하게 날뛰는 그의 움직임을 전부 예측할 수 있었다. 슈얀은 도끼를 바꿔 쥐고 어깨 뒤로 휘둘렀다. 마치 격렬한 참회라도 하듯 자기 자신에게 가시 채찍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타아나리는 도끼날이 날아오는 순간 옆으로 몸을 피했고, 도끼날은 슈얀의 갑각을 부순 후 깊은 상처를 입혔다.


분노에 휩싸인 슈얀이 고함을 치며 딱딱한 살에서 도끼날을 뽑아냈다. 상처는 커 보였다. 타아나리는 슈얀의 갑각에 달려 있던 뿔 하나를 잡아 뜯었다. 시미터처럼 휜 상아색 뿔은 끝이 쇠로 감싸져 있었고 바늘처럼 날카로웠다.


슈얀이 원형 경기장 벽에 부딪히자, 그 엄청난 충격에 날카롭게 산산조각 난 유리 파편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필멸자 수십 명이 경기장으로 굴러떨어져 격렬하게 싸우는 신성전사들의 발에 짓밟혔다. 슈얀이 등에 매달린 타아나리를 거칠게 내던졌다. 그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지만, 쥐고 있던 날카로운 뿔을 놓치지 않았다.


슈얀은 몸을 틀어 사형 집행인처럼 도끼를 내려찍었다. 타아나리는 옆으로 잽싸게 피했고, 대신 바닥이 깨지면서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폭발했다. 이때, 슈얀의 울퉁불퉁한 발이 그의 가슴을 짓눌러 바닥에 고정시켰다. 타아나리를 벌레처럼 짓뭉개 버릴 정도의 엄청난 무게였다.


"샬리카는 내 것이다!" 슈얀이 소리쳤다.


질기고 딱딱한 슈얀의 투구 같은 머리는 그의 갑각과 이어져 있었다. 창백하고 두꺼운 목에서는 동맥이 고동쳤다. 또 다른 경쟁자를 없앨 수 있다는 생각에 삭막하고 차가운 검은 눈이 툭 불거져 나왔다. 슈얀은 단언한 대로 이곳에서 칼리크 전투의 승부를 낼 참이었다.


"아니." 타아나리가 금이 간 송곳니 사이로 중얼거렸다. "그럴 일은 없어."


그는 새로 터득한 힘을 폭발시키듯 방출했다. 동족들도 본 적 없는 새로운 힘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무한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저 너머 흉측한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곧 감각이 사라졌지만, 마치 긴 세월이 지난 것만 같았다.


눈을 뜬 그 순간, 슈얀이 호를 그리며 도끼를 내려찍었고 타아나리는 그의 등에 올라타 있었다. 그 뒤로 차원문이 닫히자 방출된 공기가 쾅하고 폭발했다.


타아나리는 뿔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고 슈얀의 눈을 향해 휘둘렀다.


뾰족한 끝이 슈얀에게 꽂혔다. 타아나리의 힘은 그야말로 무지막지했다.


잔인한 마무리였다. 슈얀은 초월체인 그의 육신이 아직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것처럼 그대로 서 있었다. 잠시 후 산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그가 털썩 무릎을 꿇자 타아나리는 그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슈얀의 몸이 타아나리를 향했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조용히 그를 응시했다. 튀어나온 입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았다.


타아나리는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마이샤가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대견한 제자를 보며 자랑스러워하는 스승 같았다.


그 소리에 역겨움이 일었다.


그는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되어도 동족 한 명쯤은 죽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상황이 오길 바란 것은 아니다. 그와 슈얀이 가까이 지낸 적은 없었지만, 이들은 오래전 태양의 축복을 받았을 때 슈리마의 영광을 위해 함께 싸웠고 태양의 힘을 부여받았다.


타아나리는 쓰러진 슈얀 옆에 무릎을 꿇고, 털로 뒤덮인 손을 그의 머리에 얹었다. 용이 창조한 별의 빛이 유리에 반사돼 반짝였다. "미안하다. 형제여." 타아나리는 그렇게 속삭였다.


슈얀의 투사들이 있는 쪽에서 고뇌의 포효가 들려왔다. 그들의 신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기엔 슈얀은 그들에게 많은 미움을 받았고, 그렇다고 복수를 갈망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박탈된 목숨에 대한 고뇌였다. 그들은 양옆으로 살기 서린 칼을 뽑았다.


신성전사들이 자신의 종들을 잘 가르친 것이다.


자신들을 보호해줄 신이 없는 인간은 박멸해야 할 해충에 불과하다고, 신성전사들은 항상 그렇게 가르쳐 왔다.


"잠깐!" 타아나리가 소리쳤다. "투사들은 모두 검을 넣어라!"


그들은 타아나리의 군대가 아니었지만, 타아나리는 태양의 자손이었다. 목소리에 깃든 위엄에 모두가 동작을 멈췄다. 다른 신성전사들은 타아나리가 한 일에 놀라 입을 벌리고 쳐다봤다. 주레타의 나가네카는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와 상체를 숙이고 차가워져 가는 슈얀의 시체를 확인했다. 그의 살에서는 옅은 연기가 올라왔고, 천계의 기운은 운명을 다한 육신을 떠나고 있었다.


그녀는 두건을 젖혔다. 잿빛이 둘러진 몽환적인 여러 개의 눈이 드러났다. 비늘 덮인 입술 뒤로 길고 검은 송곳니가 솟아 있었다. 그녀는 슈얀의 등에 난 상처 위로 몸을 숙이고 죽음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라아스트가 실망하겠어." 그녀는 뱀이 쉭쉭거리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슈얀을 직접 죽이겠다고 다짐했거든." 그녀의 독에 눈이 먼 생명의 그릇들이 뒤에서 서성였다. 나가네카가 큰 소리로 말하자 뭘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탓이다.


다른 이들도 조심스레 앞으로 나왔다. 에나카이와 사이팍스는 새로운 경의의 시선으로 타아나리를 바라봤다. 나머지는 죽은 슈얀을 응시하긴 했지만, 그들 역시 아무리 신성전사라고 해도 믿기 힘든 타아나리의 힘을 목격했다.


샤바카와 샤바케가 죽은 슈얀을 둘러쌌다. 이들의 위축된 날개가 동요로 떨렸다. 그들은 수의를 입은 것처럼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신성전사 모두를 집어삼킨 타락은 이 둘에게서 가장 뚜렷하게 느껴졌다.


너무나 많은 것을 봐온 칠흑 같은 눈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오늘 죽을 거라고 말해 줬는데. 그렇지, 샤바케?"


"우리 말을 안 듣는다니까." 샤바케가 답했다.


그 말에 샤바카가 키득거렸다. "맞아, 맞아. 미친 까마귀들 말은 절대 안 듣지. 우리가 뭘 알겠어? 그저 다 아는 것 뿐인데!"


"이미 알고 있었나?" 지간투스가 물었다.


"그럼, 그럼. 그의 눈에 뿔이 다가오는 걸 봤거든. 그래서 귀띔했는데 웃기만 하더군."


"이젠 안 웃네. 안 그래, 샤바카?"


"그래, 샤바케."


"또 뭘 봤지?" 사이팍스가 물었다.


예언자 쌍둥이는 가까이 모여 속삭이더니 앞뒤로 작은 뼈를 던졌다. 그들의 마음은 이케시아의 대균열을 봉인하는 전투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그 누구도, 아무리 신성전사라도, 심연의 거대 존재들을 응시했을 때 조금이라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샤바케가 눈살을 찌푸렸다. "미래가 너무 촘촘히 엮여 있어..."


샤바카가 덧붙였다. "지금부터 나올 수 있는 결과가 너무 많아. 확신할 수 없어."


샤바케가 말을 이었다. "오늘 모두 죽을 수도 있어. 아니면 일부만 죽거나. 모두 살 수도 있고. 지간투스, 지금 네가 타아나리를 죽이면 모두 살 수 있어."


"살려면 죽여야 해!" 샤바카가 키득거렸다.


"그녀가 원하고 있어. 그녀는 산사태를 일으키는 돌멩이야."


"쉽게 말해!" 지간투스가 소리쳤다. "누가 뭘 원한다고? 돌멩이? 산사태? 대체 누구를 말하는 거야?"


"저 여자!" 샤바카가 타아나리 뒤에 있는 마이샤의 작은 형체를 가리키며 꽥 소리쳤다. "신들의 눈엔 티끌 같은 빛으로 보이겠지."


마이샤는 샬리카를 세게 끌어안았다. 마치 아버지의 검을 움켜쥔 아이 같았다.


세보타루가 으르렁거리며 타아나리의 몸을 끌어올렸다. 늑대인 그의 몸은 호리호리했지만, 괴력을 지녔고, 회색빛 털로 덮인 네 개의 단단한 팔 끝에는 발톱이 달려 있었다. "저게 무슨 소리지?" 세보타루가 으르렁대며 말했다. "저 여자는 누군가?"


타아나리는 뒤틀린 척추가 눌리는 고통에 비명이 나올 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그냥 필멸자일 뿐이네."


"넌 항상 거짓말에 소질이 없었지." 세보타루가 길게 휜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진실을 말하라, 형제여.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목을 물어뜯어 주마."


"내가 샬리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줬어."


세보타루가 고개를 저었다. "이케시아가 멸망한 후 대학자가 세타카와 함께 샬리카를 묻었다. 미천한 필멸자가 그 위치를 알고 있었다고?"


"아니. 대신 날 나서스에게 데려갔지."


슈얀 쪽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타아나리에게 쏠렸다.


"대학자를 봤다고?" 대답을 기대하듯, 발리바의 등에 달린 가시가 흔들거렸다. "그는 폐허가 된 나시라미의 대도서관을 파헤친 모니라를 죽인 후로 종적을 감췄을 텐데."


"만나긴 했지만 예전에 알던 모습이 아니었네. 짊어진 짐에 짓눌려 피폐해져 있더군. 지금은 숨겨진 절벽에 세워진 탑에서 별들의 춤을 보며 살고 있지. 그가 마이샤에게 명령해 날 찾아 탑으로 데려오라고 했네."


"왜 너를?" 나가네카가 쉭쉭거렸다. "왜 하필 우리 중 널 선택한 거야?"


"나도 몰라." 타아나리가 말했다. "그의 관심을 받을 만한 자는 많으니까."


"나서스와 얘기했나?" 에나카이가 물었다.


"그래."


"그랬더니 세타카의 검이 어디 있는지 알려줬다고?"


"응."


"그렇게 쉽게?" 사이팍스가 내뱉었다.


"아니, 그렇게 쉽게는 아니야." 타아나리가 멱살을 잡고 있던 세보타루의 손을 떨쳐 냈다. 그는 마이샤에게 맡긴 샬리카를 되찾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 무기에 깃든 힘은 강력하고 무한했다. "동족들이 전쟁을 벌여 낙원을 불태우고 짐승처럼 서로를 물어뜯고 있다고 전했네. 그 비극을 끝내려면 세타카의 무기가 필요하다고 말했지."


"나서스는 황제가 죽은 순간 우리를 버렸다." 지간투스가 말했다. "왜 이제 와서 우리를 돕겠다는 거지?"


"그가 태양의 자손을 버린 건, 지독한 시기와 비뚤어진 경쟁심이 우리를 좀먹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형제를 잃었다는 기억으로 비탄과 방황에 빠져 이 세계에서 잊힌 길을 따라 떠돌았지. 하지만 항상 고향 땅으로 이끌렸어."


타아나리는 몸속에서 마법의 기류가 일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잠시 숨을 골랐다. 복부에서 날카로운 고통이 올라와 가슴을 찔렀다.


드디어 끝이 다가오는군...


마이샤는 자신이 가르쳐 준 마법을 쓰면 인간의 몸에 불멸의 힘을 잡아 둔 족쇄가 깨져 아무리 초월체라도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생길 거라고 경고했었다. 끝없는 전투와 천 년이라는 시간에 걸친 상처를 버텨낸 힘이었지만, 모든 것이 영원할 수는 없었다.


공포가 엄습하자, 추위와 낯섦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스멀스멀 다가오는 고통과 나약함을 물리쳤다.


"네 말이 맞다, 지간투스. 나서스는 절대 이 전쟁에 가담하지 않겠지. 하지만 그것이 동족의 운명에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네. 별들이 먼 미래를 알려 줬다더군. 모래 속에 묻힌 슈리마가 다시 일어서고, 정당한 지배자가 나타나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을 날이 온다고."


"슈리마가 다시 일어선다고?" 세보타루가 애가 타듯 재촉했다. "언제?"


"우린 살아서 보지 못할 거야." 타아나리가 말했다. "우리 모두 말이지."


샤바케가 그들 사이로 앙상한 몸을 밀어 넣었다. 말라 비틀어진 팔을 허공을 찌른 그녀는 검은 눈을 번뜩거리며 말했다. "오늘 우리 모두 죽거나 일부만 죽을 거야!" 그녀가 새된 소리로 외쳤다.


사이팍스가 그녀를 옆으로 밀치며 말했다. "샬리카도 슈리마의 부활과 관련이 있는 건가?"


"그래. 결과가 좋든 나쁘든." 타아나리가 말했다. "슈리마의 백성을 단결하는 상징이 되겠지. 샬리카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네. 과거를 떠올리고, 다시 그때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같은 깃발 아래에서 함께했을 때처럼 우리가 다시 형제애를 되찾으려 했다면, 모두가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세보타루가 재미있다는 듯 투덜거렸다. "이제야 진짜 속셈을 알겠군. 가장 위대한 전사의 무기를 들고 나서스의 선택까지 받았으니, 지도자로서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모두를 불러 모은 거였어."


타아나리가 털로 뒤덮인 머리를 저었다.


"아니, 난 절대 세타카나 나서스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없어. 그저 이 전쟁을 끝내고 싶었을 뿐이었네. 다 함께 해내길 바랐는데, 헛된 꿈이었던 것 같군."


타아나리는 동족들 곁을 지나 원형 경기장 중앙에 섰다. 여덟 명의 신성전사와 수천 명의 필멸자들이 모두 그를 바라봤다.


온몸으로 퍼지는 고통은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침을 삼키자 목구멍 뒤쪽에서 모래 맛이 느껴졌다. 성길게 뭉친 털이 그의 몸에서 자유로이 휘날렸다. 움직일 때마다 관절에 매서운 고통이 느껴졌다.


타아나리는 몸을 돌려 그들을 향해 말했다.


"무한한 힘으로 우리는 자만해졌고, 누구도 우리를 거스를 수 없다고 믿었다. 결국 우린 세상을 파괴했고, 주인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한때 우린 스스로를 초월체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다르킨?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사명이 무엇이었는지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는 필멸자들이 붙인 치욕스러운 이름이다."


그는 흐릿해지는 눈을 떠 원형 경기장 계단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수천 명을 마주했다. 떨어져 나가는 피부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


"그들은 우릴 증오하지만, 심연의 공포가 다시 떠오르면 우리가 돌아오길 바랄 것이다." 타아나리가 마이샤의 열렬한 시선을 응시하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사라질 것이고, 그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불완전한 신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입에 오르고 내리겠지."


타아나리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원형 경기장의 투명한 바닥에 샬리카를 내리꽂았다. 천지를 강타하는 듯한 소리로 귀가 먹먹해졌다. 그 충격으로 생긴 균열은 멀리 뻗어 나갔다. 맑은 하늘은 막 탄생한 별이 내뿜는 광채로 밝게 타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찬란한 황금빛이 아니었다. 차갑고 불길한 은빛이었다.


"달이 태양의 창조물을 소멸시킬 것이다!" 타아나리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밤하늘에서 하얀 불기둥이 번쩍이며 내리꽂혔다.


불기둥은 샬리카의 날에 떨어져 퍼져나갔다. 신성전사들을 끌어당겼고 그들을 압도했다. 불길은 그들을 태우고 초월체의 신비한 근원까지 도달해 태양의 힘을 집어삼켰다.


샤바카와 샤바케는 그 순간 증발하여 흩날리는 잿빛 깃털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비명은 그들이 짊어진 숙명의 예지력에서 벗어난다는 해방감에 찬 웃음소리였다.


사이팍스는 낚시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빛 속에 갇혀 몸을 비틀었지만, 그의 힘도 우주의 빛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었다. 황소 머리 형상의 지간투스는 도망치려 했지만, 그의 엄청난 속도로도 타아나리가 소환한 달빛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타아나리는 뜨거운 빛을 맞는 와중에도 그들의 최후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형제자매들이었다. 아무리 잔혹한 전쟁이 수백 년간 이어졌다고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존재였다.


에나카이가 빛에 소멸되는 것이 보였다. 신성한 육체가 빛에 녹아들고 있었다. 그는 타아나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눈빛이었다.


타아나리는 자신이 한 짓에 흐느껴 울었다.


빛이 모조리 태워 버렸고 어둠이 몰려왔다. 마지막 힘이 육신을 빠져나가자 그의 몸이 유리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인간들은 신들이 죽어간 영문도 모른 채 비명과 고함을 지르며 싸웠다. 결국 더 많은 피를 흘렸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동족들이 시작한 전쟁을 필멸자들이 이어갈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필멸자들의 전쟁이니 언젠가 끝날 것이다.


타아나리는 행복한 시절을 회상하며 어둠 속에서 헤맸다.


에나카이와 함께 황금 계단을 올라 태양의 힘을 받기 전의 삶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 시절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천계의 힘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자 기억들이 아스러져 갔다.


발소리가 들렸다. 장화를 신은 발이 부서진 유리를 밟는 소리였다. 땀과 썩은 내와 함께 필멸자의 냄새가 났다.


익숙한 냄새였다. 타아나리의 생명의 그릇들이었다.


타아나리는 손을 들어 누군가의 손길을 찾았지만, 아무도 잡지 않았다.


"설패?" 쉰 목소리가 나왔다. "그대인가? 투쉬파? 이드리-미? 도와줘. 아무래도... 아무래도 다시 필멸자가 된 것 같다. 내가... 내가 다시 인간이 된 것 같아..."


"맞아요." 곧 웃음을 터뜨릴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타아나리는 속삭였다. "마이샤, 모두 다 죽었나?"


"아뇨, 나가네카, 발리바, 세보타루는 불길이 닿기 전에 달아났죠. 하지만 꽤 약한 자들이니 딱히 문제가 되진 않을 거에요. 문제라면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은 자들이죠. 함정에 빠뜨리기 훨씬 어려울 테니까."


"안 돼! 모두 끝장내야 해." 타아나리가 쌕쌕거렸다. "상처 입은 신성전사 한 명이라도 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어."


마이샤가 말했다. "절 믿으세요. 오늘 일을 시작으로 당신 동족을 멸하게 될 테니까."


"그럼 해낸 거군. 우리가 평화를 가져온 거야."


그러자 마이샤가 진심으로 웃었다. "평화? 아니, 이 세계에는 평화가 오지 않을 거야. 그럴 리가."


혼란에 빠진 타아나리가 일어서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창 자루가 가슴을 세게 치자 다시 주저앉았다.


"아니, 그대로 있어." 마이샤가 말했다.


"제발 일으켜 줘. 난 이제 인간이라고."


"그랬지.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껏 쌓은 죄가 깨끗하게 사라질까? 그동안 죽여 온 수많은 이들을 생각해 봐. 인간이 됐다고 그들이 흘린 피를 용서받을 수 있을까? 말해 봐, 결국 그 알량한 양심에 찔려 반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참극을 저질렀지?"


"이해가 안 돼." 타아나리가 중얼거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마이샤가 킬킬거렸다. 갑자기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아주 먼 고대의 존재 같기도 했다. 원형 경기장 바닥에 박힌 샬리카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뽑혔다.


"당신은 오래전에 죽을 운명이었어, 타아나리." 마이샤가 말했다. "당신 동족 중에 괜찮은 자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공허와의 전쟁에서 타락하고 말았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도 신기할 정도야. 어쩌면 당신들 존재 자체가 실수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바로잡아 주겠어."


타아나리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황금빛을 내뿜는 샬리카의 기운이 머리 위를 맴도는 것을 느꼈다. 쇠약해진 그의 육신에는 힘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샬리카가 가슴에 닿자 비명을 질렀다.


마이샤가 그의 귀에 속삭였다. "이 무기에 흐르는 힘이 당신들 모두에게 닿았지. 이제 신들의 약점을 이해하게 된 거야. 내가 그 신의 불을 인간들에게 전해 주겠어."


마이샤는 타아나리의 심장을 움켜잡았다. 타아나리는 남은 생명력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숨이 붙어 있었다.


단 몇 초뿐이었지만.


"이드리-미." 그녀가 타아나리의 심장을 넘기며 말했다. "샬리카와 함께 대장장이에게 가져가. 그... 남은 놈들을 처리하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해."


마이샤가 멈칫했다.


"그 놈들을 뭐라고 부르더라?"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 맞다. 그래. 다르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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