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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NG/LOL

[LOL 단편소설] 다리우스 - 겨울봉우리로 가는 길

by Captain Jack 2019. 5. 25.

 

[LOL 단편소설]

 

다리우스

 

 


겨울봉우리로 가는 길


 

 

저녁 무렵이 되자 마야의 군화는 눈으로 다 젖고 말았다. 

발을 디딜 때마다 차디찬 물이 스며들어 발이 베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다른 병사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허리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약 24km나 되는 비탈을 내려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대열의 선두에 선 군단병들은 끄떡없는 듯했다. 그들은 아침부터 변함없는 속도로 위풍당당하게 행군했으며, 동시에 전방을 향한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마야는 생각했다. '아마 더 좋은 군화를 신었겠지. 

아무리 트리파르 군단이 강하다고 해도 일반 군화를 신고 저렇게 멀쩡할 순 없어.'

"이봐, 힘들어?" 졸트가 말했다.

졸트는 부대의 유일한 미노타우로스였다. 그는 병사들 중에 가장 몸집이 컸으며, 나이도 가장 많았다. 

졸트는 튼튼한 발굽으로 눈을 헤치며 걸어가고 있었다. 마야는 졸트가 부러웠다. "차라리 발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발이 없으면 행군도 안 시킬 테니까요."

"지난번 겨울 발톱 부족과의 전투에서 어떤 병사는 발이 꽁꽁 얼어 버렸지. 

군화를 신으려는데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더군. 그래서 다리우스 장군께서 '싹둑!' 하고 발을 잘라 버리셨지."

마야는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굽이진 산길 아래로 다리우스가 보였다. 

녹서스의 실력자이자 '무력의 화신'으로 불리는 그의 등에는 거대한 도끼가 빛나고 있었다.

"운 좋은 줄 알아." 졸트가 말했다. "다리우스 장군께선 이 길을 누구보다 잘 아시거든. 

다크윌 황제를 위해 싸울 때 직접 내신 길이지. 

이제 우리가 장군을 도와 이 길을 탈환해야 해." 

졸트의 눈이 분노로 번득였다. "망할 겨울 발톱 부족 놈들!"

다리우스가 낸 산길 양쪽으로 가파른 절벽이 솟아 있었다. 마야는 위쪽을 올려다봤다. 

절벽 꼭대기에 몇몇 병사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정찰병들은 쉬지도 못하나 봐요?"

"뭐라고?"

마야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저기 정찰병들이요."

"무슨 정찰병?" 졸트가 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졸트는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눈사태에 파묻히고 말았다.

양쪽 절벽에서 새하얀 눈이 병사들을 덮쳤고, 길은 순식간에 눈으로 뒤덮였다. 

얼음처럼 딱딱한 눈 더미가 녹서스군 행렬을 차례로 집어삼키며 산길을 타고 내려갔다. 

마야는 몸을 웅크렸지만, 마치 돌진하는 바실리스크와 부딪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극심한 공포를 느끼며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 사방이 깜깜해졌다. 

겨울 발톱 부족의 공격이었다.




'푸슈욱!' 누군가 마야를 눈 더미 속에서 끌어 올렸다. 

"병사들을 꺼내!" 

그는 마치 검이 부딪히는 듯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마야에게 명령했다.

마야는 정신을 차리고 눈을 파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함께 눈을 파내고 있는 '다리우스 장군'을 보았다.

다리우스는 눈 속에 파묻힌 갈라진 발굽을 발견했다. 

"졸트!" 

마야는 소리치며 다리우스를 도와 졸트를 끌어 올렸다.

마야가 위를 올려다보자 멀리 겨울 발톱 부족 전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흩어져 있는 녹서스군 시체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제 후퇴는 없어'라고 마야는 생각했다.

다리우스는 생존자의 숫자를 확인했다. "장교!" 다리우스가 소리치자 트리파르 군단병 두 명이 달려왔다. 

"사상자 수를 파악해서 보고해라. 봉우리 너머에 강이 있으니 그곳에서 방어 태세를 갖춘다." 

다리우스는 가까스로 분노를 삭인 채 적잖이 타격을 입은 병사들을 살폈다. 

"걸을 수 없으면 기어서라도 움직여."




창백한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몸을 숨기자 

겨울 발톱 부족 척후병들은 녹서스군이 있는 얼어붙은 강까지 따라와 미늘 화살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잘 훈련된 트리파르 군단의 속도를 늦출 순 없었다. 

트리파르 군단과 속도를 맞추며 행군하던 마야의 숨은 점점 거칠어졌다.

얼어붙은 강은 폭이 넓고 미끄러워 겨울 발톱 부족이 강을 건너오려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강기슭에 자리 잡은 녹서스군을 공격하려면 가까운 숲을 통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컴컴한 소나무 숲에서는 이따금 화살이 날아들었다. 

다리우스는 강기슭과 나란하게 참호를 두 줄 파도록 지시했다. 

병사들은 방패를 삽처럼 들고 땅을 팠다. 

마야는 똑같이 방패를 들고 참호를 파는 다리우스의 모습을 보았다.

"오늘을 두고두고 기억하라고." 졸트가 말했다. 

"녹서스의 실력자께서 병사들과 함께 참호를 파는 모습을 봤잖아!"

뒤이어 병사들은 외곽 참호에 설치할 말뚝을 만들었다. 

방어선을 순시하던 다리우스가 졸트를 보고 멈춰 섰다. 

"자네는 낯이 익군." 다리우스가 말했다.

"첫 프렐요드 원정에 참전했었습니다, 장군님!" 

졸트는 마야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힘들었다고 이 친구에게 말하던 참이었죠!"

다리우스는 마야를 바라봤다. 

"자네는 이번이 첫 출정이군."

"네, 장군님." 마야는 궁금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두려움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그럴 시간이 있으면 적과 맞섰을 때 어떻게 놈들의 목숨을 끊을지 궁리하도록."

마야는 대답할 말이 없어 머뭇거렸다. "아—"

'슈우우욱.' 순간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러 날아온 투창이 참호 벽에 꽂혔다.

마야는 몸을 돌려 숲을 바라봤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아래로 달빛을 받아 번득이는 칼날과 뼈가 보였다.

"전투 준비!" 다리우스가 소리쳤다.

녹서스 병사들이 엄폐물을 찾아 움직이는 순간, 숲에서 투창이 일제히 날아왔다. 

마야의 눈에 한 병사가 휘청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병사의 가슴팍 위로 울퉁불퉁한 창 자루가 솟아나 있었다.

다리우스는 마야와 졸트를 밀치며 지나갔다. 등에 멘 도끼 위로 날아든 화살이 튕겨 나갔다. 

"곧 놈들이 돌격할 거다." 다리우스가 말했다. 

격렬한 흥분에 사로잡힌 그의 눈이 번득였다. "그때 공격한다!"

순간 숲에서 으르렁 소리가 들리더니 다리가 여섯 달린 맹수 형체 여럿이 한꺼번에 뛰쳐나왔다. 

조련된 '거친발톱' 무리가 녹서스군의 목을 노리며 뛰어오른 것이다.

그 뒤를 따라 겨울 발톱 부족 전사들이 돌진해왔다.

트리파르 군단병들이 참호에서 나와 적군을 가로막았다. 

마야는 검을 뽑으며 다리우스를 바라봤다. 

등에 멘 도끼를 내려놓는 그의 모습은 단두대를 연상시켰다. 

마야도 싸울 준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옆에 있던 졸트가 쓰러졌다.

졸트의 어깨에는 투창이 박혀 있었다.

"그냥 가." 졸트가 헐떡이며 말했지만, 마야는 그의 옆을 지켰다. 

순간 겨울 발톱 부족이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졸트가 팔로 공격을 막아내자 마야는 겨울 발톱 부족 전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러나 넘어진 적의 숨통을 끊지 않고 졸트를 향해 돌아섰다.

마야는 졸트를 구할 수 있었다. 반드시 구해야만 했다!

마야는 전투에서 빠져나와 졸트를 이끌고 강가로 향했다. 

녹서스 방어선 뒤 비탈을 타고 빙판 위로 내려갔다. 

순간 졸트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채 숨을 헐떡이자 마야는 졸트와 함께 강을 건너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안 돼!" 마야의 생각을 알아챈 졸트가 말했다. 

"녹서스인은 절대 도망치지 않아!"

마야는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누가 뭐래도 난 녹서스인이에요.' 

그녀는 입을 열고 졸트의 말에 대꾸하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순간 졸트의 눈이 커졌고, 뒤이어 묵직한 손이 마야의 어깨를 잡았다. 

마야는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그 손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적과 맞서라." 다리우스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저는—"

"이건 맞서는 게 아니다." 다리우스가 팔을 휘두르자 마야는 얼음 위로 나가떨어졌다. 

"적에게 등을 보이는 녹서스인에게는 죽음뿐이다."

'그 도끼를 맞고 죽겠지.' 마야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도끼를 들어 올리는 다리우스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죽는구나.'

하지만 도끼는 마야의 목에 닿지 않았다. 대신 빗발치는 화살이 도끼날에 맞고 주위로 떨어졌다. 

다리우스는 다시 도끼를 내리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녹서스인에게 퇴각은 없다. 오직 승리만 있을 뿐. 

우리는 녹서스에 대항한 놈들을 산산조각 낸다."

순간 마야는 '분노'를 느꼈다. 겨울 발톱 부족과 겁에 질려 있던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마야는 졸트를 밀어젖히고 굳어버린 팔다리를 털었다. 

졸트는 바닥에 쓰러지며 신음을 냈지만, 마야는 개의치 않았다. 

다리우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녀는 다리우스와 함께 녹서스군 병사들이 싸우는 광풍 속으로 뛰어들었다.

병사들의 칼날이 번득였다. 

마야 역시 손바닥이 벗겨지고 근육이 찢어질 때까지 검을 휘둘렀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살아남는다. 승리한다. 적을 산산조각 낸다.'

동이 틀 무렵, 겨울 발톱 부족은 패주했다.




강기슭으로 돌아온 다리우스와 마야는 가슴팍에 화살이 박힌 채 죽어 있는 졸트를 발견했다.

마야는 멍하니 졸트를 바라봤다. 

그녀는 전투를 치르는 내내 '어쩌면 몸을 추스르고 싸우고 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졸트는 쓰러진 자리에서 그대로 죽어 있었다.

"구하고 싶었습니다." 마야가 다리우스에게 말했다. 

"졸트는 훌륭한 군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구하고 싶었습니다."

다리우스는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마야가 놀라며 물었다. "예?"

"아직 살아남을 가망이 있는 병사들과 함께 싸웠어야지." 

다리우스가 마야에게 시선을 돌렸다. 

강철같이 차가운 그의 눈빛에 마야는 몸을 떨었다. 

"졸트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자네는 싸울 각오를 했어야지."

"네, 아, 알겠습니다..." 마야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다... 다음부터 주의하겠습니다."

다리우스는 북쪽을 바라봤다. 겨울봉우리 산맥에 여명이 비추고 있었다. 

마야는 산속에 피워놓은 모닥불들을 보았다. 

나무 사이로 연기가 솟아올랐다.

겨울 발톱 부족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리우스가 말했다. 

 

"지금부터다. 다음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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