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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NG/LOL

[LOL 단편소설] 케일 - 정의의 불길 속에서

by Captain Jack 2019. 4. 18.

     

[LOL 단편소설]

 

케일

  


    

정의의 불길 속에서

      


    

빛나는 사원의 계단에 서 있던 애브리스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원의 입구에는 수호자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조각상은 석양을 뒤로한 채 얼굴 부분의 윤곽을 드러냈고, 앞으로 숙인 머리 주위로 빛이 일렁였다. 흰색 돌을 깎아서 만든 수호자의 조각상은 반짝이는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어깨 뒤로는 거대한 날개가 돋아나 있었고, 가슴팍에는 두 자루의 검을 쥐고 있었다. 투구를 쓴 조각상의 얼굴은 표정이 없었지만 근엄했으며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완벽함이 묻어났다. 조각상이 발을 딛고 있는 주춧돌에는 수백 개의 촛불이 놓여 있었다.

애브리스는 자신의 검과 방패를 조각상 아래쪽에 기대 놓았다. 그것들은 조각상이 들고 있는 돌로 만든 검만큼이나 깨끗하고 흠이 없었다. 사람들은 수호자가 데마시아의 고결한 전사들에게 축복을 내렸다고 했다. 애브리스는 조각상 아래에서 묘한 편안함을 느꼈다.

흰색 망토를 걸친 노파가 사원 문을 열고 나왔다.

"자매님, 혹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애브리스가 노파에게 말했다.

노파는 천천히 애브리스에게 다가왔다.

"빛의 사자 수도회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죠. 무슨 일이신가요?" 노파의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다정했다.

"저는... 내일 전장으로 떠납니다." 애브리스는 초조한 듯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제 오른팔은 강합니다. 그리고 데마시아를 위해 싸울 수 있어 자랑스럽죠. 하지만 우리 영토를 침범한 야만인들을 모두 죽여버린다면, 제가 그들보다 나을 게 뭐가 있을까요? 우리도 그들처럼 살육을 저지른다면, 데마시아의 백색 성벽과 눈부시게 찬란한 이념이 무슨 소용인가요?"

"아, 그래요, 아무리 군인이라고 해도 살인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죠. 제가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게요." 그녀는 조각상을 올려다보며 덧붙였다. "제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수호자님을 위해서 촛불을 하나 켜 주시겠어요?"

애브리스는 무릎을 꿇고 조각상 발치에 봉납된 촛불에 초를 갖다 대 불을 붙였다.

노파는 세월로 인해 갈라져 버린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애브리스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생전 자신에게 데마시아의 신화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해 주곤 했다. 애브리스는 할머니의 이야기 중에 어떤 것이 진짜고 어떤 것이 지어낸 이야기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래전, 지금은 바스러져 시간 속으로 사라져버린 땅에 잔혹한 왕이 통치하던 나라가 있었어요. 그 나라의 백성들은 빈곤에 허덕였죠. 대기근이 나라를 휩쓸었을 때, 왕은 백성들을 모두 자신의 성 안뜰로 불러 모았어요. 그곳에서 왕은 기근을 끝내기 위해 옛 법률을 모두 없애겠다고 멋대로 선언했죠. 그리고 금으로 장식된 법전을 바닥에 던지더니 자신이 곧 법이라고 말했어요. 자신이 말로 정하는 모든 규칙과 법령이 곧 법이 될 거라고 말이에요."

"백성들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국왕은 첫 번째 법령을 선포했어요. 사람에 비해 식량이 부족하니 노인들의 먹을 권리를 박탈한다고 말이죠. 그리고 노인들은 꼼짝없이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고 말았어요."

"백성들은 너무 굶주린 나머지 왕의 부당한 처사에도 저항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왕의 친위대는 노인들을 처형하기 위해 줄을 세웠죠."

"첫 번째 사람은 백발의 남성이었어요. 그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오더니 왕에게 애원했어요. '저는 제빵사입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폐하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빵을 굽겠습니다'라고요."

"왕은 이렇게 대답했죠. '그대는 다시 젊어질 수 있는가? 그 나약한 팔다리에 다시 근육을 붙일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고? 그렇다면 살려줄 수 없다.' 왕이 손짓하자 처형인은 제빵사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어요."

"정말 끔찍하군요!" 애브리스가 끼어들었다. "왕이 새로 만든 법에 저항한 사람은 없었나요?"

노파는 미소지었다. "다행히도 왕의 폭정에 저항한 사람이 한 명 있었어요."

"우리가 섬기는 불멸의 수호자께선 수 세기 동안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 세계의 불의가 극에 달하면, 그분이 계신 미지의 세계까지 그 여파가 전달되는 것 같아요. 어쨌든 불멸의 수호자께선 이때 세상에 나타나셨죠. 하늘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눈 부신 빛이 쏟아졌어요. 마치 우주의 모든 별이 한곳에 모인 것처럼 밝은 빛이었죠. 그 빛 속에서 수호자께서 모습을 드러냈어요.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경외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죠. 수호자께선 자신을 보고 얼어붙어 버린 왕 앞에 서서 소리쳤어요."

"'그 어떤 왕도 법 위에 있을 수는 없다. 네 이름을 말하고 심판을 맞이하라!'"

"그러자 국왕이 대답했어요. '나는 법 위에 있는 게 아니다, 날개 달린 괴물아. '내가' 곧 법이다.' 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친위대 병사들이 전진하기 시작했죠. 병사들은 창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린 채 한 몸처럼 움직였어요. '나로 인해 백성들은 삶의 목적을 갖고, 제 분수를 지키며 살 수 있게 되었다. 백성들은 내게 고마워하고 있다.'"

"그러자 수호자께서 말씀하셨죠. '정의를 구체화한 것이 바로 법이다. 법은 종이 위에 쓰인 진실하고 공정한 심판이지. 법은 사라질 수 없다.'"

"수호자께선 신성한 불꽃으로 타오르는 검을 뽑아 들었어요. 진실과 징벌의 기운이 사방에 가득 찼죠. 그리고 수호자의 날개가 펴지자 불꽃은 더 크게 타올랐어요. 곧이어 날개도 불꽃에 휩싸였죠. 정말 무시무시한 광경이었어요."

"수호자께서 말씀하셨어요. '네가 백성들을 이끈다고 했지? 그럼 네가 가장 먼저 내 심판의 칼날을 받아라.'"

"잔혹한 왕은 수호자의 불타는 검과 날개를 바라봤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웠던 건 그녀의 불타는 눈이었어요. 수호자의 눈동자는 삭일 수 없는 분노로 번쩍이고 있었죠. 왕은 마치 태양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수호자의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한 영광을 마주한 왕은 두려움에 떨며 눈물을 흘렸어요. 그리고 수호자의 발밑에 무릎을 꿇으며 목숨을 구걸했죠."

"'회개하겠습니다.' 왕이 애원했어요. '이제 제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이기적이고 부도덕한 저는 왕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이제부터 법을 지키면서 살겠습니다.'"

"수호자께선 강철 같은 눈빛으로 왕을 바라봤어요. 왕이 말을 마치자 그녀는 크게 숨을 쉬었죠.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이때 수호자의 목소리는 마치 신의 그것과 같았다고 해요."

"수호자께서 왕에게 물었어요. '네가 저지른 불의를 되돌릴 수 있는가? 네가 뱉은 거짓말들을 다시 주워 담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심판을 더럽힌 네 거짓된 법을 없앨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고? 그렇다면 너를 살려줄 수 없다.'"

"수호자께선 왕을 향해 불타는 검을 휘둘렀어요. 왕은 고통에 울부짖으며 자신이 내팽개쳤던 법전 위로 쓰러졌죠."

"법전은 천상의 불꽃을 일으키며 활활 타올랐어요. 이 땅의 죄인을 불태우고 정의로운 자들을 정화하는 신성한 불길이었죠."

"잔혹한 왕이 비명을 지르는 동안 수호자의 불꽃은 왕의 친위대와 측근들, 처형인과 하인들을 모두 불태웠어요. 불꽃은 왕과 그의 사악한 추종자들이 내뱉은 거짓말을 따라 계속 퍼져 나갔죠. 살아남은 자들은 그 영광의 날을 영원토록 기억했고, 잿더미로 변해버린 왕국을 정의와 명예로 재건할 기회를 얻었어요."

"그리고 이 땅에 또 부정한 혼란이 도래하면 수호자께서 다시 하늘에서 내려오실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죠."

노파는 애브리스를 보며 미소지었다.

"우리는 모두 선의와 명예를 바탕으로 행동해야 해요. 왕과 제빵사, 하인과 군인 가릴 것 없이 말이죠.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어요. 마찬가지로 누구도 정의 위에 있을 수 없죠. 우리 남쪽 국경을 침략한 자들은 악의로 가득 차 있어요. 그들에게 법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들은 매 순간 전진하며 우리 땅을 위협하고 있고, 당신은 데마시아의 방패로서 영광스럽고 정의로운 임무를 맡고 있어요. 그리고 수호자께서는 가슴 속에 정의를 품은 이들을 따뜻하게 돌봐주시죠."

"알겠습니다." 애브리스가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바라봤다. 한 번도 전장에서 쓰이지 않은 검이었다. 애브리스는 자신의 마지막 전투까지 정의를 위해 검을 휘두르겠노라고 맹세했다.

"병사여, 확신이 없을 때는 '수호자께선 어떻게 행동하실지'를 생각해요. 수호자님처럼 진실과 진리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분께서 당신의 검을 인도해주실 거예요. 그 검을 피로 물들이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죠."

노파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더니 사원 안으로 돌아갔다.

애브리스는 자신이 켜둔 촛불이 어둠 속에서 깜빡이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주둔지로 복귀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지막으로 조각상을 보려고 몸을 돌린 순간, 그는 수호자 조각상의 투구 안 깊숙한 곳에서 번쩍이는 불꽃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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