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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NG/LOL

[LOL 단편소설] 카르마 - 날 기억해 줘

by Captain Jack 2020. 1. 6.

 


= LOL 단편소설 =

 

카르마

 

 

 

날 기억해 줘

 

 

 

산비탈을 깎아 만든 수도원을 올려다보며 와타이는 초조한 듯이 손가락에 낀 비취반지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곳은 바로 카르마의 고향인 불변의 제단이었다. 자신이 이곳으로 돌아오게 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불편한 무릎 때문에 여정은 고되기 그지없었다. 와타이는 심호흡을 하고 길을 따라 카르마의 명상실 앞까지 걸어갔다. 입구에는 작은 제단이 세워져 있었다.

입구에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와타이는 무릎이 꺾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여긴 정말 지긋지긋하군.' 와타이는 60년 전 승려들의 부름을 받은 자크리와 함께 왔을 때부터 불변의 제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의 기억은 바닥에 쓰러져 아픈 만큼이나 큰 고통을 안겨 주었다. 와타이는 몸을 일으켰다.

"괜찮나요?"

고개를 들자 키가 훤칠하고 아름다운 여성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비록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어깨 장식과 마치 후광처럼 머리를 감싸고 있는 아이오니아의 쌍둥이 용을 보고 와타이는 그녀가 '카르마'임을 알아차렸다.

"괜찮습니다." 와타이가 무뚝뚝하게 대답한 뒤 덧붙였다.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잘 왔어요, 여행자여." 카르마는 검은 눈을 반짝이며 기쁜 듯이 웃었다. 그리고 와타이의 손을 잡더니 말했다. "가만히 있어 봐요..." 카르마가 다른 쪽 손을 움직이자 일렁이는 초록색 빛이 차갑게 몸을 감쌌다. 와타이는 피부가 따끔거렸다. 카르마는 와타이를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좀 어떤가요?"

와타이는 조심스럽게 다리를 움직였다. 무릎은 멀쩡했다. 하지만 새롭게 환생한 카르마의 능력을 보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와타이는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어설 수 있습니다."

카르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정말 괜찮나요? 표정이—"

"다리는 괜찮습니다 '깨우친 자'여." 와타이가 손을 빼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마법으로 치유할 수 없는 아픔도 있지요."

당황하거나 화를 낼 줄 알았지만, 카르마의 표정은 차분했다.

"맞아요." 카르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와타이를 명상실로 안내했다. "난 슬픔을 치유하지 못해요. 만약 전쟁으로 누군가를 떠나보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죄뿐이죠. 난 수년 동안 이 나라를 돌아다니며 내 결정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고통받은 이들에게 사죄했어요. 녹서스와의 전쟁을... '계속하기로' 했던 내 결정 때문에 말이에요. 하지만..." 카르마는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아니 '아이오니아'가 맞서 싸운 것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와타이와 카르마는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봤다. "또 내가 도울 일은 없나요?" 카르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다.

잠시 후, 마음을 가라앉힌 와타이가 손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 사람이 날 떠난 건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었어요. 이 반지 기억나세요?"

카르마는 비취반지를 보더니 놀란 듯 숨을 삼켰다. "그럼요. 내가 선물... 아니, 그 사람이 선물했죠." 그리고는 눈을 감고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

카르마는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을 불러내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자크리와 함께 지냈던 와타이에게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괜찮으니까 서두르지 마세요."

60년 전, 자크리는 자신의 약혼녀 와타이에게 불변의 제단으로 같이 가 달라고 부탁했다. 평생 마을을 벗어나 본 적 없었던 와타이는 세상 구경을 할 생각에 기뻤다. 그리고 어쩌면 둘이서 함께 여행하면서 평생을 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와타이와 자크리는 두 달간의 여정 끝에 수도원에 도착했다.

'당신 마음에 들 거야.' 자크리가 웃으며 외쳤다. 그 미소는 와타이의 마음속에 아로새겨졌다. '우리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당신 가족이 놀러 오면 나무술사한테 부탁해서 침실을 더 만들 수도 있어. 수도원 바로 밖에 있는 마을에서 같이 살자, 기대되지?'

하지만 두 사람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와타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과 가족을 떠나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자크리는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와타이는 비취반지를 낀 채 혼자서 고향 마을로 돌아갔다. 또다시 수도원으로 돌아가거나 '자신'의 카르마와 재회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마침내 카르마가 손을 내리며 눈을 떴다. 두 눈의 홍채는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자크리가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수많은 목소리와 이야기할 때 내뿜던 빛과 같은 색이었다. 자크리의 전생이었던 그 목소리는 이제 카르마의 것이 되었다. 카르마가 눈을 깜빡이자 빛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와타이?" 카르마는 확신이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기억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억은 정확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와타이는 눈물이 미처 흐르기도 전에 손을 들어 닦아 냈다. "정말 자크리가 당신 안에 있을 줄은... 몰랐어요."

"내 안에 있기도, 또 없기도 해요. 기억은 내 것이 되었지만..." 카르마는 갑자기 주저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와타이는 카르마의 눈을 응시하며 자크리가 자신을 볼 수 있길 바랐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음에 쌓인 후회와 짐을 내려놓고 싶었다. "미안해, 자크리. 당신과 함께 여기서 살았다면, 당신과 함께 고향에 돌아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 아닌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했길 바라. 당신이 혼자 외롭게 지냈을 생각을 하니 괴로워."

와타이는 비취반지를 빼서 카르마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기다란 손가락을 접어 반지를 감쌌다.

"안 돼요." 여러 목소리가 동시에 말했다. 카르마의 눈은 또다시 지나간 영혼들의 빛을 내뿜고 있었다. "자크리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대를 사랑했어요. 이곳에서 그대와 함께 살지 못한 채 카르마가 되었다는 것이 유일한 후회였죠. 하지만 자크리는 혼자가 아니었어요. 아이오니아의 혼이 언제나 함께였으니까요." 카르마는 와타이에게 반지를 건넸다. "자크리는 그대가 반지를 맡아 주길 원해요. 물론 그대가 원한다면 말이죠."

카르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와타이는 반지를 다시 손가락에 끼웠다. 이렇게 하는 편이 옳았다. 자신 역시 또 다른 이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사랑해, 자크리." 와타이는 떨리지만 기쁜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랑해."

카르마가 빛이 사라진 눈으로 와타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해요. 항상 금방 끝나 버려요."

와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목멘 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고마워요."

"고마운 쪽은 나예요, 와타이."

"네?"

"자크리가 정말 오랜만에 입을 열었으니까요. 공격이 시작된 이후 처음이죠. 자크리는... 실망한 듯했어요. 나보다 먼저 카르마가 되었던 자크리의 목소리와 조언을 듣지 못한 채 긴 세월이 흘렀어요." 카르마는 와타이의 손을 덥석 잡더니 말했다. "덕분에 자크리가 돌아왔어요. 고마워요."



자신을 다르하라고 소개한 카르마는 와타이에게 불변의 제단에 며칠 더 머무르기를 권했다. 자크리와 작별한 이와 자크리를 다시 받아들인 이가 만났으니 함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명상실을 나오면서 와타이는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반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충직에 감탄했다. 자크리와 와타이의 서로를 향한 사랑처럼 반지 역시 60년이 지나도록 전혀 변함이 없었다. 와타이가 죽어서 백골이 되더라도 반지는 사랑의 징표로서 그 자리에 남을 터였다.

그리고 카르마를 통해 두 사람은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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