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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NG/LOL

[LOL 단편소설] 칼리스타 & 헤카림

by Captain Jack 2018. 11. 18.

 

[LOL 단편소설]

 

 



▶ 칼리스타 - 탄원

 

 

건사의 아내는 잿더미가 되어버린 집 앞에 서 있었다. 여인은 아직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들을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소중한 사람, 아끼던 물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증오만이 온전히 그녀의 것이었다. 그 노여움만이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힘이었다.


명령을 내리고 미소 짓던 놈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당신은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버렸지. 우리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잖아? 그 배신자의 손에 가족을 잃은 이는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그자를 끝까지 따라갈 것이다. 놈의 심장에 칼을 꽂고, 생명이 사그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수많은 병사들이 낮이나 밤이나 그자를 지키고 있지 않은가? 여인은 전사가 아니었다. 그녀의 힘으로는 그자의 졸개들을 돌파하는 것조차 역부족이었다. 예상되는 것은 그저 무의미한 죽음뿐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잔뜩 긴장한 그녀는 가쁜 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검게 그을린 옷장 위에 사람 형상의 인형이 누워 있었다. 막대기와 잔가지들을 어설프게 엮어 만든 조악한 물건이었다. 배신자의 찢어진 망토 조각이 인형을 감싸고 있었다. 죽은 남편이 끝까지 쥐고 있던 조각이었다. 여인은 인형과 함께 세 개의 녹슨 못과 망치 하나를 집어 들고 문지방으로 향했다.


문이 있던 자리에는 문틀만이 남아있었다. 뻥 뚫린 문틀 너머로 달빛이 들판을 비췄다. 텅 빈, 어두운 들판이었다. 여인은 손을 높이 들어 나무 인형을 문틀 위 가로대에 대고 말했다.


“복수의 여신이여, 찾아와 주소서.”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장막 너머의 존재여, 이렇게 호소하나이다. 앞으로 나와 제 억울함을 풀어 주소서.”


망치와 못 하나를 손에 쥐었다.


“배신자의 이름을 한 번 부릅니다.” 그자의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하면서, 첫 번째 못의 뾰족한 끝을 인형의 가슴에 가져다 댔다. 한 번의 망치질로도 충분했다. 못은 가슴을 깊숙이 꿰뚫고 인형을 문틀에 고정했다.


소름이 돋았다. 착각이었을까? 주위가 차가워진 듯한 기분이었다.


“배신자의 이름을 두 번 부릅니다.” 지체없이 두 번째 못을 박아 넣었다. 인형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달빛이 서늘한 들판 위에 검은 형체가 꼿꼿이 서 있었다. 문지방에서 고작 백여 걸음 밖이었다. 여인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못을 집어 들었다.


“배신자의 이름을 세 번 부릅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놈의 얼굴을 떠올렸다. 마지막 못을 박았다.


복수의 화신이 문틀을 가득 채우며 눈앞에 나타났다. 자기도 모르게, 여인은 비틀거리며 옆으로 물러섰다. 자꾸만 숨이 가빠왔다.


다른 세상에서 온 그 존재는 오래된 갑옷을 입고 있었다. 반투명한 피부를 죽음 같은 어스름이 감싸고 있었다. 그 검은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장막처럼 보였다. 마침내 복수의 화신이 자신의 가슴에 박힌 검은 창을 뽑아냈다. 오랜 옛날 그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무기였다.


끼익, 하는 녹슨 금속 마찰음이 밤의 공기 속으로 울려 퍼졌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서 뽑아낸 창을 여인의 발치에 던졌다. 어떤 말도 필요치 않아 보였다. 검사의 아내는 자신에게 복수의 기회가 주어진 것을, 그 대가가 자신의 영혼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화신은 가만히 서 있었다. 차가운 눈빛 속에서 무자비한 분노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에선 어떠한 표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여인이 배신의 창을 집어 드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복수를 맹세합니다.” 여인은 끝이 자신의 심장을 향하도록 창을 거꾸로 들었다. 팔이 떨려왔다. 그녀는 헛구역질이 섞인 목소리로 되뇌었다. “이 피로 맹세합니다. 이 영혼을 걸고 맹세합니다.”


남편이 살아있었다면 내 결정을 반대했을 것이다. 복수에 눈이 멀어 영원한 저주에 영혼을 맡기지 말라고 애원했을 것이다. 커다란 불안감이 그녀를 잠식하는 듯했다. 그러나 화신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칼과 도끼에 난자당해 잔혹하게 쓰러져간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의 눈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죽어서 땅에 널브러진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의 결의는 가슴속에 내려앉은 차가운 돌덩이처럼 단단해졌다. 창을 더 단단히 꼭 쥐었다.


“도와주세요.” 마음을 굳히고 간청했다. “제발 그자를 죽일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창을 자신의 가슴 속 깊이 내리꽂았다.


여인은 두 눈을 부릅뜬 채 털썩 무릎을 꿇었다. 신음과 함께 입이 벌어졌지만 나오는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붉은 피뿐이었다. 화신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녀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생명의 피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바닥에 흐르자, 여인은 그림자가 되어 일어섰다. 물질에서 해방된 자신의 두 손을 놀랍다는 듯 쳐다보았다. 점점 번져가는 핏빛 웅덩이 속에 자신의 몸뚱이가 누워있었다. 그림자의 표정이 가라앉자 그 손에 실체 없는 검이 나타나 쥐어졌다.


그림자로 새로 태어난 여인 앞에 희미한 도깨비불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영혼의 사슬이 보였다. 사슬은 그녀가 소환한 복수의 화신에게 이어져 있었고, 그곳에 선 것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빛나는 갑옷을 입은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전사였다. 자신감이 넘치되 오만함은 찾아볼 수 없는, 타고난 병사이자 타고난 장수였다. 여인이 기꺼이 목숨을 바쳐 따를만한 사령관의 자태였다.


“너의 싸움이 우리의 싸움이다.” 복수의 화신 칼리스타가 엄숙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화신의 분노 뒤에 가려진 공감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배신당한 고통을 아는 자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이제 우린 하나 되어 복수의 길을 걸으리라.”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고, 복수의 화신과 그녀의 그림자는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 헤카림 - 모두 죽으리라

  

 

얼음장 같은 파도가 황량한 바닷가를 때렸다. 해변은 헤카림이 살육한 이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고, 아직 죽이지 않은 인간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후퇴한 뒤였다. 검은 비가 그들을 흠뻑 적셨고, 비통한 먹구름이 섬의 심장부에서 피어올랐다. 헤카림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전투의 함성이었다. 목쉰 목소리로 짜내는 노래의 말뜻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의미만은 분명했다. 정녕 배에 무사히 도착하리라 생각하다니. 나무로 된 방패를 서로 연결하여 한 몸처럼 움직이는 걸 보니 전투력이 아예 없는 자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차피 한갓 인간일 뿐. 헤카림은 공포가 어린 비릿한 살덩이 냄새를 음미했다.


무너져가는 폐허를, 그늘진 안개가 피어오르는 잿빛 모래를 짓밟으며 헤카림은 그들의 주위를 빙 돌았다. 말발굽이 검은 바위에 부딪혀 이는 불꽃 소리는 천둥이 되어 울려 퍼졌고, 그 소리가 듣는 사람들의 용기를 무너뜨렸다. 헤카림은 투구의 벌어진 틈 사이로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만신창이가 된 영혼의 희미한 빛이 몸 주위에서 후광처럼 파르르 깜박거리고 있었다. 헤카림은 그 빛을 갈망하면서도 격렬한 혐오를 느꼈다.


“모두 죽으리라.”


강철 투구 때문에 말이 잘 들리진 않았다. 하지만 귀에 거슬리는 그 소리는 녹슨 칼날처럼, 교수형으로 죽은 이의 목소리처럼 신경을 긁어댔다. 헤카림은 그들의 공포를 음미했다. 누군가 절망에 굴복해 방패를 내던지고 배로 달려가자 헤카림은 씩 웃었다.


갈고리처럼 휜 날을 낮춰 든 헤카림이 잡초 무성한 폐허로부터 괴성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먼 옛날 돌격할 때 느끼곤 했던 익숙한 전율이 느껴졌다. 은빛 군단의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기억이 어른거렸다.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승리의 기억이었다. 기억은 곧 사그라졌다. 도망치던 남자가 희고 차디찬 파도의 어두운 표면에 도달해 어깨너머로 돌아보며 외쳤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헤카림의 칼이 남자의 몸을 쇄골에서 골반까지 단번에 갈랐다. 천둥 같은 일격이었다.


새카만 칼날이 피에 젖어 파르르 떨렸다. 남자의 시든 영혼은 자유롭게 날아가고자 했지만, 인간에 굶주린 안개가 그를 놓칠 리 없었다. 남자의 모습이 생전의 그를 닮은 어슴푸레한 혼령으로 변하는 것을 헤카림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헤카림이 섬의 힘을 끌어모았다. 피맺힌 파도가 소용돌이치더니 어른거리는 빛으로 엮인 한 무리의 흑기사들이 물에서 일어났다. 오래된 유령 같은 철판 갑옷에 갇힌 이들은 어두운 빛으로 반짝이는 검은 칼들을 빼 들었다. 이전에도 지금도 그를 섬겼으니 헤카림이 알아 마땅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헤카림은 그들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는 해변에 있는 인간들 쪽을 돌아보며 안개를 갈랐다. 그러고는 그제야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본 인간들이 공포에 떠는 것을 마음껏 감상했다.


철갑으로 중무장한 거구의 헤카림. 그의 거대한 몸은 인간과 말이 하나 된 악몽 같은 형태다. 그의 몸을 둘러싼 검은 철판에는 이제는 그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의미의 도안이 새겨져 있다. 투구 뒤에는 고뇌의 불이 이글거렸다. 그 안의 차디찬 영혼은 죽었으면서도 끔찍할 정도로 활력이 가득했다.


번개가 하늘을 어지럽게 갈랐다. 헤카림이 뒷발로 섰다가 칼을 낮추더니 그의 기사들을 이끌고 앞으로 돌격했다. 피범벅된 모래와 뼛조각이 사방에 날렸다. 인간들이 함성을 지르며 방패를 들었으나, 혼령들의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선봉에 선 헤카림이 공격을 개시했다. 벼락 같이 검을 휘둘러 방패로 된 벽에 큰 균열을 냈다. 철갑을 두른 헤카림의 거구 아래 사람들은 짓밟혀 피투성이로 으스러졌다. 헤카림은 칼을 사방으로 휘둘렀고, 그의 칼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목숨이 스러졌다. 유령 기사들도 앞길을 막는 모든 것들을 밟아 뭉갰다. 그야말로 끔찍한 광란이었다. 말발굽으로 후려치고 창으로 찌르고 검으로 베는 유령 기사들 앞에서 산 자들은 속절없이 스러졌다. 뼈가 부러지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죽은 이들의 영혼은 너덜너덜해진 몸을 떠났으나 몰락한 왕의 치명적인 주술에 걸려 이승과 저승 사이에 갇혔다.


죽은 이들의 혼이 헤카림을 둘러쌌다. 바로 자신들을 죽인 헤카림에게 속박된 존재였다. 헤카림은 전투에서 오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탄식하는 혼령들을 무시했다. 이들을 자신의 노예로 삼을 생각조차 없었다. 그런 시시한 괴롭힘은 지옥의 간수 몫으로 남겨도 충분했다.


헤카림에게는 오직 죽이는 행위만이 의미가 있으니까.

 


출처 : 리그 오브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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