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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NG/LOL

[LOL 단편소설] 애니 - 말썽

by Captain Jack 2019. 4. 4.

         

[LOL 단편소설]

        

애니

        

말썽

  


    

 마르신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앞에서는 사람들이 맥주가 가득 담긴 커다란 잔을 부딪치면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그러다 이따금 누군가 큰 소리로 술을 주문하고 동전을 올려놓으면 마르신은 즉시 바를 따라 술잔을 손님 앞으로 밀어 보냈다. 조용하고 신속하게 손님들을 상대하는 마르신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으며, 덕분에 말썽에 휘말리지도 않았다.

선술집에서는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한판 붙을 상대를 찾는 사나운 싸움꾼, 망토를 뒤집어쓰고 비밀스러운 거래를 하다 칼에 맞아 죽는 사람 등, 다양한 일들이 일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선술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마르신은 콧노래를 부르며 바를 향해 걸어오는 소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소녀의 뒤로 선술집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히자 뒤따라 들어온 차가운 겨울바람이 선술집을 휘저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손님들은 소녀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의자에 기어올라 앉은 소녀는 바 너머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마르신은 소녀의 새빨간 머리카락, 손에 꽉 쥐여 있는 누더기 인형, 등에 멘 낡은 가방과 철에 안 맞게 소매가 짧은 드레스를 차례로 훑어보았다.

"주문하겠니?" 마르신이 물었다.

소녀는 의자를 밟고 일어나 인형을 바 위에 올려놓더니 선반에 놓인 병들을 바라보았다. 마르신은 인형을 살펴봤다. 곰 인형이었다. 주인의 사랑을 받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곰 인형이었다. 인형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팔다리는 바늘땀이 보일 정도로 낡았고, 단추를 꿰매 붙인 눈은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우유 한 잔 주실래요?"


마르신은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우유가 담긴 도자기 단지를 가지러 바 한쪽 끝으로 갔다.

"꼬마가 혼자 다니기엔 너무 늦은 시간 아닌가?"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르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썽은 언제나 다른 말썽을 불러왔다. 그는 선반에서 단지를 내리면서 바 쪽을 바라보았다. 애꾸눈의 덩치 큰 남자가 소녀를 옆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 앞에 앉은 소녀의 모습은 마치 커다란 산 앞에 놓인 조약돌 같았다. 근육질 몸에 흉터가 가득한 남자는 허리에 밧줄과 쇠사슬, 갈고리를 달고 등에는 커다란 칼을 메고 있었다. 전형적인 현상금 사냥꾼의 모습이었다.

소녀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미소짓더니 곰 인형을 들어 보이며 밝게 말했다. "저는 혼자가 아니에요. 친구가 있거든요. 그치, 티버?"

현상금 사냥꾼이 큰 소리로 웃었다. "부모님이 걱정하시겠구나."

소녀는 손을 아래로 내리며 시선을 떨궜다. "아닐걸요."

"아니, 걱정하실 거야. 얼마가 들더라도 네가 무사히 집에 돌아오길 바라시겠지." 마르신은 현상금 사냥꾼이 머릿속으로 돈 계산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소녀의 몸값으로 얼마를 받을지 궁리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두 분 다 돌아가셨거든요." 소녀는 다시 의자에 털썩 앉아 곰 인형의 눈을 바라보았다.

현상금 사냥꾼이 다시 입을 떼려고 하자 마르신은 바 위에 잔을 탁 내려놓았다.

"우유 여기 있다." 마르신이 말했다.

소녀는 마르신을 보면서 활짝 웃었다. 조금 전의 침울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감사합니다!"

소녀는 곰 인형을 바 위에 올려놓고 가방에 손을 뻗었다. 마르신은 소녀가 얼마를 내놓더라도 그냥 받을 생각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소녀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지갑을 올려놓았다.

금화 몇 개가 바 위에 나뒹굴었다. 금화 하나가 굴러가자, 마르신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금화를 잡았다. 그는 금화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무게와 질감으로 봤을 때 녹서스 제국에서 발행한 금화 같았다.

"아이코!" 소녀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마르신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못하길 바라면서 금화와 소녀의 지갑을 가방에 다시 넣으려던 찰나—

"너 같은 꼬마가 들고 다니기엔 너무 큰 지갑이구나." 현상금 사냥꾼이 큰 소리로 말했다.

"티버가 찾았어요." 소녀가 대답했다.

현상금 사냥꾼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

"길에서 어떤 아저씨가 저를 막아 세웠어요. 그 아저씨가 갖고 있던 지갑인데, 정말 나쁜 아저씨였어요." 소녀는 우유를 홀짝였다. 소녀의 관심은 다시 곰 인형을 향해 있었다.

"저런..." 현상금 사냥꾼은 몸을 기울여 지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소녀는 현상금 사냥꾼을 올려다보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티버가 먹어버렸어요."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현상금 사냥꾼의 웃음소리가 선술집 안에 울려 퍼졌다.

"그랬구먼!" 그는 두꺼운 손을 뻗어 곰 인형의 머리를 잡고 끌어당겼다. "이것 참 무서운 녀석이군!"

"놔줘요! 티버는 잡아당기는 거 싫어한단 말이에요!" 소녀가 곰 인형에 손을 뻗으며 울부짖자 현상금 사냥꾼은 더 크게 웃었다.

마르신은 금화를 손에 쥔 채 돌아서서 걸어갔다. 누구도 마르신이 멀어지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소녀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는 자신이 개입할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녀의 목소리에 마르신은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놓.으.라.고."

선술집을 가로질러 들려오는 소녀의 목소리에서 짜증과 분노가 느껴졌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마르신은 뒤를 돌아보았다. 소녀는 바 위에 서서 현상금 사냥꾼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의 두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리고 선술집은 그야말로 지옥이 되었다.

소녀의 몸에서 빛이 번쩍이며 뜨거운 열기가 솟아 나왔다. 마르신은 두 팔을 들어 올렸지만, 불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고통에 울부짖으며 뒷걸음질 치다 선반에 부딪혔다. 병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마르신은 바 아래로 몸을 숨기며 빨리 도망치지 않았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불길이 치솟는 와중에 사람들의 비명과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뼛속까지 흔드는 정체불명의 포효가 선술집에 울려 퍼졌다. 앞이 거의 보이지 않던 마르신은 주방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기어갔다. 주위로 들리는 사람들의 비명은 점점 커졌다. 그때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의 비명이 멈췄다. 그야말로 듣는 사람의 속을 뒤집어놓는 소리였다.

마르신은 바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평생 갈고닦아 온 생존 본능을 저버린 두 번째 행동이었다.

바 너머로 불길을 등진 채 서 있는 거대한 야수의 형체가 보였다. 두꺼운 힘줄이 야수의 팔다리와 몸통을 마치 바느질로 꿰매놓은 듯 연결하고 있었다. 야수의 몸은 불타고 있었다. 몸에 난 털 위로 불길이 일렁였지만, 야수는 전혀 그을리지 않았다. 마르신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야수는 커다란 발톱이 달린 거대한 발로 피투성이가 된 현상금 사냥꾼을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 앞에 소녀가 서 있었다. 원 모양의 화염이 소녀를 감싸고 있었다.

"티버, 네 말이 맞아. 이 사람도 잡아당기는 걸 싫어하네." 소녀가 말했다.

마르신은 공포에 질린 채 주변을 돌아봤다. 선술집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뒤집어진 의자와 탁자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솟아났다. 연기와 함께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찌르자 마르신은 기침과 함께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야수가 마르신 쪽을 돌아봤다.

마르신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글거리는 곰의 눈을 마주한 마르신은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순간 불길 사이로 큰 웃음이 들려왔다.

"걱정하지 마세요. 티버가 아저씨는 마음에 든대요." 소녀가 야수 옆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마르신은 얼어붙은 채 불타는 선술집 안을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소녀의 모습을 지켜봤다. 소녀의 뒤를 느릿느릿 따라가던 야수는 입구를 막고 있던 문을 뜯어냈다. 소녀가 마지막으로 마르신 쪽을 돌아보자 마르신은 입을 떡 벌렸다. 소녀는 다시 활짝 웃어 보였다.

"아저씨, 우유 잘 마셨어요."

소녀는 그렇게 무너져 내리는 선술집을 뒤로 한 채 눈 내리는 밤 속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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